언론포커스(~2023)_
가짜 뉴스보다 더 위험한 건 여론 왜곡하는 나쁜 뉴스
‘진짜’ 가짜 뉴스에 대한 오해와 환상먼저 나쁜 뉴스와 가짜 뉴스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가짜 뉴스는 뉴스가 아니면서 뉴스인 척하는 거짓 정보를 말한다. 그러니까 가짜 뉴스는 좋고 나쁘고를 떠나 아예 뉴스가 아닌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쁜 뉴스를 가짜 뉴스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CNN 기자의 질문에 “You are fake news(당신들은 가짜 뉴스야)”라고 윽박지른 것처럼 (내가 보기에) 나쁜 뉴스를 가짜 뉴스라고 매도하기 시작하면 논점이 흐트러진다.
△ CNN 기자의 질문에 가짜 뉴스라며 윽박지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한국에서의 가짜 뉴스는 미국과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힐러리에게 투표하지 말라고 선언했다”는 등의 거짓 정보가 페이스북을 타고 확산됐는데 알고 보니 뉴스 사이트처럼 위장한 사이트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에서 가짜 뉴스 사이트가 발견된 바 없다. 가짜 뉴스라고 논란이 된 여러 사례들은 늘 있었던 유언비어거나 진짜 뉴스의 잘못된 보도거나 ‘내가 보기에’ 나쁜 뉴스를 가짜 뉴스로 비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쁜 뉴스가 가짜 뉴스인가?
가짜 뉴스라는 말이 남용되고 있지만 진짜 뉴스를 흉내 내서라기보다는 뉴스인 것과 뉴스가 아닌 것의 경계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고 본질이다. 누군가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준 기사 요약처럼 보이는 텍스트는 그게 진짜 기사인지 악의적으로 만든 거짓 정보인지 알 방법이 없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언론이 늘 진실을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진짜 고급 정보가 따로 있다고 믿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다들 경험하지 않나. 페이스북에서 뉴스를 볼 때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코멘트와 기사 제목만 보고 열어보지도 않은 채 기사를 공유하곤 한다. 그게 어느 언론사의 기사인지, 애초에 언론 보도인지 커뮤니티 게시판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뉴스가 파편화되고 뉴스의 브랜드가 해체되고 있다. 기사의 한 문단이나 코멘트 한 줄이 출처도 없이 떠다니다 보면 맥락을 잃고 왜곡되기 쉽다. 뉴스인 것과 뉴스가 아닌 것을 구분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불편한 진실일 수 있지만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술잔을 바로 받아 마시지 않았다. 퇴주잔을 받아 두 번 돌리고 난 다음 묘소에 뿌렸고 다시 음복잔을 주니 받아 마신 것이다. 정석대로 했고 나름 완벽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커뮤니티 게시판에 떠돌았던 이른바 ‘움짤’만 보면 반 전 총장이 퇴주잔을 받자마자 ‘원샷’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간 부분을 잘라내고 붙인 ‘악마의 편집’이었다. “허걱, 저걸 왜 마셔?”하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 반기문 '퇴주잔 논란'에 대해 '가짜 뉴스'였음을 밝힌 한국일보 유투브 영상.
악의적 목적이었을 수도 있고 그냥 재미였을 수도 있지만 이 13초짜리 ‘움짤’은 엄청난 속도로 확산됐고 한때 유력 대선 주자였던 반 전 총장의 낙마에 상당한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이 ‘움짤’은 가짜 뉴스인가? 이 ‘움짤’을 인용하면서 트래픽 장사를 했던 수많은 언론 보도가 가짜 뉴스인가? 엄밀하게 말하면 둘 다 가짜 뉴스라고 할 수는 없다. 가짜 뉴스의 개념 규정부터 다시 해야 할 판이다.
찌라시가 더 솔깃한데?
트럼프가 “여성 대통령은 안 된다, 한국을 보라”고 말했다는 언론 보도는 가짜 뉴스라기보다는 명백히 오보였다. 출처는 “트럼프가 이런 말을 하면 이기지 않을까”라는 한 페이스북 글이었다. 그나마 좀 규모가 있는 YTN 보도였기 때문에 상당수 사람들이 속아 넘어갔다. 흔히 오해하지만 가짜 뉴스는 주류 언론의 외부가 아니라 주류 언론의 공백, 그리고 주류 언론의 한계와 주류 언론에 대한 불신을 파고든다.
“문재인이 치매에 걸렸다”는 출처 불명의 카카오톡 찌라시는 가짜 뉴스인가? “JTBC의 태블릿 PC는 조작됐다”는 박사모 카페 게시물은 가짜 뉴스인가? 뉴스처럼 보이기 위해 속임수를 썼다면 명백히 가짜 뉴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찌라시들은 굳이 뉴스처럼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류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에 기대어 ‘이것은 찌라시지만 이것이 진짜 뉴스야’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보인다. 찍어누른다고 사라질 종류의 의혹이 아니다.
△ 트럼프가 “여성 대통령은 안 된다, 한국을 보라”고 말했다는 오보의 진원지 페이스북 글.
찌라시도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을 수 있고 진짜 뉴스도 거짓을 말할 때가 있다. 결국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문제다. 친박 집회에서 뿌려졌던 노컷일베나 프리덤뉴스 같은 신문을 가짜 뉴스의 사례로 꼽지만 이들은 버젓이 신문의 형태를 하고 있고 정식으로 등록된 매체들이다. “태블릿 PC는 조작됐다”는 주장은 말 그대로 주장일 뿐 보기에 따라 악의적인 나쁜 뉴스라고 볼 수도 있지만 형식만으로 가짜 뉴스라고 할 수는 없고 이를 막을 방법도 없다.
평판의 시장 이외의 해법은 없다.
반기문 퇴주잔 논란에서 보듯 이제는 유언비어가 뉴스로 살아나고 카톡 찌라시가 주류 언론 못지않은 신뢰를 갖는 시대가 됐다. 카톡으로 떠도는 몇 줄의 글이 진짜 뉴스를 요약한 것인지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만든 뉴스 비슷한 가짜 정보인지 판별하기 어려울 뿐더러 이제는 찌라시와 주류 언론이 같은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결국 독자들이 판별하겠지만 독자들 역시 뉴스 전체를 불신하는 시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그런 시대가 됐다.
오히려 가짜 뉴스는 언제나 있었고 시대의 변화와 플랫폼의 확장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술자리 뒷담화를 통제하기 어려운 것처럼 가짜 뉴스는 평판의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멸하게 돼 있다. 가짜 뉴스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믿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걸 찍어 누르거나 처벌한다고 해서 여론이 정화되는 건 아니다. 원래 여론은 시끌시끌하고 온갖 잡음을 동반하면서도 결국 진실에 수렴하기 마련이다.
가짜 뉴스를 수집해서 리스트업하자는 제안도 있었고 기사마다 빨간색 파란색 신호등을 붙이자는 등의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모두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것은 뉴스가 아니다”, 아무리 강조하거나 비난해도 이런 음성적인 정보를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다. 진실은 칼로 자르듯 명쾌하지 않을 때가 많고 원래 수많은 의혹과 논쟁을 낳을 수밖에 없고 마지막까지 모두를 설득할 수 없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상당수 사람들이 JTBC밖에 믿을 게 없다거나 다른 언론은 모두 뭔가를 숨기거나 왜곡하고 있다고 믿는 현상도 매우 위험하다. 그 반대편에서는 또 다른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다. 네이버나 다음 등 주류 콘텐츠 플랫폼이 무색무취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면서 독자들을 정치 혐오로 내모는 현실도 바람직하지 않다. 역설적으로 ‘진짜’ 진짜 뉴스에 대한 갈망이 검증되지 않은 가짜 뉴스에 대한 수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짜 뉴스도 진화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실제 뉴스의 형식을 갖춘 거짓 정보를 가짜 뉴스라고 불렀다면 이제는 뉴스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뉴스의 형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뉴스가 소비되는 방식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퍼뜨릴 수 있게 됐다. 가짜 뉴스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지만 최근 진행된 여러 논의는 호들갑이 지나치거나 변죽을 울리는 엉터리 해법을 늘어놓고 있을 뿐이다.
사실 가짜 뉴스보다 더 위험한 건 여론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나쁜 뉴스다.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가 공존하고 좋은 뉴스가 나쁜 뉴스를 밀어내는 게 평판의 시장이 작동하는 원리다. 진짜 뉴스가 제 역할을 할 때 비로소 가짜 뉴스가 힘을 잃는다. 신뢰의 위기의 시대, 진짜 뉴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가짜 뉴스에 맞서는 근본 대안이라고 본다. 원론적이지만 공론장의 회복과 평판 시장의 작동, 그 이외의 해법은 있을 수 없다.
이정환(미디어오늘 대표)
*언론포커스는?
언론포커스는 고정 언론칼럼으로 매주 회원들을 찾아갑니다. 언론계 이슈를 다루면서 현실진단과 더불어 언론 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언론포커스'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고승우(민언련 이사장), 김동민(단국대 외래교수), 김서중(성공회대 교수), 김은규(우석대 교수), 김평호(단국대 교수), 박석운(민언련 공동대표), 박태순(언론소비자주권행동 공동대표), 신태섭(동의대 교수), 안성일(MBC 전 논설위원), 이용성(한서대 교수), 이완기(민언련 상임대표), 이정환(미디어오늘 대표), 정연구(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정연우(세명대 교수), 최진봉(성공회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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