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보수’를 더 이상 ‘보수’라 부르지 말아야 하는 이유

가짜뉴스보다 더 심각한 가짜이름, ‘보수’
등록 2017.02.2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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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의 공세, 그래도 진짜는 가려진다

 

지금 전 세계는 가짜 뉴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의 대선이 진행되는 동안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CNN 등 주요 언론사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언급한 ‘가짜 뉴스’란 말을 통해 한국의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된 이 현상이 한국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사를 비난하기 위하여 트럼프가 지목한 보도는 사실상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뉴스는 가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가짜 뉴스란 미국의 이번 대선 기간 동안 100만 건 가까이 조회가 될 정도로 널리 유통된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한다’와 같은 거짓 뉴스이다. 그런데 이런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더 많았다는 통계가 나왔는가 하면 가짜 뉴스가 대선에 실제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좀 더 복잡한 양상으로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존재가 의심스러운 언론사가 만든 가짜 뉴스를 몇몇 정치인이 진짜 뉴스라고 대중 집회 등에서 큰 소리로 인용해 신뢰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퍼 나르기 통로인 SNS가 가장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돼 가짜 뉴스는 지금 한국에서 일파만파로 퍼져가고 있다. JTBC의 태블릿PC 조작설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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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가 심각해지자 경찰청장이 나서 가짜 뉴스를 처벌할 방침을 천명했는가 하면 한국언론학회 같은 학자 집단과 국회의원도 각각 세미나와 토론회를 열어 가짜 뉴스의 폐해와 법적 해결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가짜 뉴스란 지금까지 언론보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오보나 부정확한 뉴스와는 다른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다. 전자가 실수라면 후자는 고의다.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이익을 돌릴 목적으로 처음부터 대중을 속이고자 기획된 보도가 가짜 뉴스다. 99%의 사실에 1%의 거짓을 넣어 속이는가 하면 국내 사람들이 쉽게 확인할 수 없는 외국 언론기관이나 학자의 이름을 들먹이는 등의 수법이 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가짜 뉴스는 의지만 있다면 바로 잡을 수 있다. 문제 제기가 있을 경우, 해당 사실을 확인하고 한국의 형법이 정하고 있는 바처럼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파악하여 그렇지 않을 경우 오류에 대해 책임을 물리면 된다. 

 

확인도 수정도 어려운 가짜 이름, 보수

 

교정이 가능한 가짜 뉴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짜 이름이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보이는 가짜 이름은 ‘보수’다. 

 

보수의 사전적 의미는 ‘기존 질서를 지키고 유지함’이다. 그런데 이런 이름이 기존 질서를 깨고 무시하는 세력에 붙여지고 있다. 최근 다양한 언론사에서 생각 없이 보수라고 불러대는 탄핵반대 세력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현행법 질서를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하고 짓밟고 있다. 국민의 80%에 달하는 대통령 탄핵지지 여론을 받들어 국회의원 2/3를 넘는 수가 합법적인 절차를 걸쳐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원천무효라며 헌법재판소를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계엄령을 발동하라’나 ‘군대가 나서라’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내란을 선동하는가 하면 지난 19일 춘천 집회에서는 탄핵찬성 집회 참가자들과 취재기자에게 폭행과 폭언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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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21조가 보장하는 언론·출판, 집회·결사의 자유를 부정하는 반헌법적 행동을 한 이들 집단에 대해 ‘보수 집회’와 같은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 그저 ‘탄핵 반대 집회’ 정도로 불러야 옳다. 그리고 이런 집회와 관련하여 ‘보수의 결집’과 같은 단어를 붙여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진짜 뉴스를 생산한다고 자부하는 언론이 이런 용어를 부주의하게 사용한다면 자신의 의도와 달리 가짜 뉴스 생산에 기여하게 된다.

 

가짜 뉴스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보수란 말의 사용에 매우 신중해야 하겠지만, 더 큰 이유는 보수라는 명칭을 받아 마땅한 건강한 정치세력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질서를 무시하는가 하면 돈을 받고 동원된 가짜 집회의 혐의가 있는 집단에게 보수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면 정작 제대로 된 보수는 이름이 없어 논의구조에서 배제되기 십상이다. 

 

‘가짜 이름’에서 벗어나라

 

가짜 이름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짜 뉴스와 달리 뒤에 사실관계에 맞게 수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다. 한번 잘못된 이름이 통용되면 그 이름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대화를 위해 할 수 없이 그 이름을 다시 사용해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현상에 대한 부적절한 인식은 부지불식간에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다. ‘태극기 집회’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상징하는 ‘태극기’를 마치 특정 집단의 전유물처럼 보이게 하는 호칭을 써서는 안 된다. 가짜 뉴스를 근절하기 위해서도, 가짜 이름의 통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진짜 언론사의 사실과 진실을 향한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정연구(민언련 이사 /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