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개인 디지털 미디어로 무장한 시민들의 저항이 무엇을 이루어냈나
대의 민주주의 위기와 대항 공론장의 출현김호기 교수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촛불집회 현상이 현대적 정치에서 탈현대적 정치로의 변화라는 큰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최근 박근혜 게이트로 일어난 전 국민적 촛불 집회는 단순한 탈현대적 정치 변화로만 해석할 수 없는 깊은 문제를 우리 사회에 던져주었다. 이 문제의 본질에는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와 더불어 사회적 소통의 위기가 있다. 이 소통의 위기는 대의적 소통(재현적 소통, representative communication)의 위기라 할 수 있다. 정치권력과 언론이 주도하는 이 대의적 소통의 위기는 합리적인 공론장의 구축을 가로막고 정치 및 사회적 의사결정을 왜곡시킨다. 그 결과 우리사회 내부에는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심각한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었으며, 급기야는 전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결과를 야기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소통구조가 변화되고 새로운 형태의 공론장이 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의 민주주의의 정치적 의사소통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것은 주권을 가진 시민이 커뮤니케이션의 주체이자 커뮤니케이션 행위의 중심에 서 있음을 말한다. 정치적 의사소통과 정책 결정을 위한 담론적 실천의 중심에 시민이 자리 잡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로 인식한다. 따라서 국민주권은 시민이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에서 ‘결정(decision)’의 주체가 된다는 것 곧, 시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의사결정의 중심축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결정’의 권한을 소수 정치권력에 위임하면서 대의 커뮤니케이션이 작동한다. 대의 민주주의적 절차는 대의 커뮤니케이션이 작동하는 체계라 할 수 있다.
프랑스 정치학자 스페즈(Sfez L.)에 따르면 국가 권력은 상징적 이미지를 생산하고 작동함으로써 기존의 사회적 시스템의 안전을 보장하고, 권력의 통치력을 상승시키며 정당성을 확보해나가면서 대의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한다. 그 과정에서 대중 매체는 중요한 전략적 지점이 되고 있다. 대중 매체는 현실의 시·공간을 재조직화 하여 다양한 사회적 사건들을 시민들에게 전달한다. 그 과정에서 대중 매체에 의해 구성된 정보들이 사회적 실제 상황과 사건을 규정한다. 대중 매체는 인간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매개체로만 머무르지 않고, 정치적 상징들을 조작하고 생산하는 거대한 공장으로 기능한다. 리프만(Lippman W, 1997)은 미국의 사례를 통해 대중 매체들이 어떻게 시민들의 ‘공동 의지’를 표현하는 방식을 만들어 낼 것인가 보다도 정부에 대해 신뢰를 주기 위해서 어떻게 ‘공동 의지’를 제시할 것인가에 대하여 가장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대중 매체에서도 이와 같은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세월호 사건과 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 태도다. 지상파 방송과 종편 등 기존의 대다수 주류 대중 매체들은 지속적으로 정부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 지배계층이 기획한 프레임 속에서 사건을 제한하고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이에 지속적으로 저항하고, 새로운 대안 미디어들을 통해서 진실을 지속적으로 폭로하면서 시민들의 ‘공동 의지’가 권력의 압력을 넘어서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대의 공론장에 대항한 표현 공론장의 출현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새로운 의사소통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만들고 탈 국가적, 탈 제도적 그리고 탈 권력적 공론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시민단체들 그리고 시민 개개인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새로운 공론장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누구나 디지털 멀티미디어와 네트워크를 소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 개개인이 기술적 주체가 되어 현장성, 동시성, 상호성, 수평적 소통을 통해서 사회, 정치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고 왜곡된 대의 민주주의적 권력행위에 저항함으로써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개인 디지털 미디어로 무장한 시민들은 ‘표현 커뮤니케이션(expressive communication)’이라는 새로운 소통 방식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매스미디어에 의한 지배적 소통체계 대항하여 ‘표현 공론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하여 지배권력과 주류언론에 의해 재현되고 선별된 계몽적 상징체계들과 상징적 의미들에 저항하고 이를 파괴하면서 새로운 표현 공론의 장을 열어 놓았다. 이들은 지배적 미디어 체계와 국가가 강요하는 대의적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거부하고 새로운 소통과 집단적 저항을 조직할 수 있는 대안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구축하였다. 박근혜 게이트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개개 시민들이 방송, 인터넷, 모바일, 와이브로 등, 인터페이스 기술을 이용하여 상호 간의 토론, 협업 및 동원의 공론장을 구축하였다. 이들은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텔레그램, 포털 사이트의 토론방 등을 주체적으로 운영하여 개인적 차원뿐 만 아니라 집단적 차원에서 지배적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는 주체로써 자리 잡았다.
결론적으로 시민 간의 인터페이스 기술의 일상화와 전자정보공간의 친숙성은 2016년 한국정치를 구조적으로 바꾸는 역동성을 만들어냈다. 박근혜 게이트로 불리는 비정상적 권력 행위와 부정에 대한 시민 개개인의 분노를 하나로 모으고 시민의 ‘공동 의지’로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내는 저변에는 바로 시민 개개인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협업하고 동원할 수 있도록 하는 ‘표현 공론장’이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촛불집회에서 인터페이스를 이용했던 시민 주체들은 ‘5any(anytime, anywhere, anything, anynetwork, anydevice)’의 능력으로 문자, 음성, 영상 등의 다중적 표현 방식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표현하였다. 이처럼, 광화문의 시민들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서 대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항한 ‘표현 커뮤니케이션’ 시대를 열어놓았다.
박태순(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