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불편한 진실을 까발려야 하는 기자의 사명이 더욱 중요한 시기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
등록 2017.02.0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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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와 유지태가 주인공으로 나온 ‘봄날은 간다’란 영화가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는 않았지만, 유명한 대사 두 개는 안다. “라면 먹고 갈래요?”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다. 라면 먹고 가라는 그 수줍은 초대를 받고 정말 라면만 먹고 간 순진한 남자도 떠나는 사랑은 안타깝다. 그래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호소한다. 사랑은 정말 변하는 것일까? 변하는 사랑은 처음부터 사랑이 아닌 착각이었을까?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

 

14번째 촛불집회가 지나갔다. 광화문 광장의 텐트는 여전하다.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도 목소리를 키운다. 대한 독립군이 피로써 맹세했던 그 태극기인데, 요즘 태극기 보기가 불편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나는 박정희의 유신정권 시절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며 자랐다.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하라는 그 집단주의가 싫었다. 2007년 미국 성조기에 대한 맹세를 빌어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바뀌었지만 국민의례 때 국기에 대한 맹세를 들으면 아직도 유신시대의 국기하강식이 생각난다. 올림픽이나 국제대회의 시상식에서 태극기가 올라갈 때는 뭉클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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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토요일 태극기 집회에 김문수 전 경기지사, 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 참석해 연설했다. 자랑스럽게 그 사실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나는 김문수 씨에게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묻고 싶었다.

 

김문수의 얼굴, 책

 

김문수 전 지사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다. 내가 MBC노조위원장을 할 때였으니, 27년쯤 전이다. 김문수 씨는 그때 이재오 전 국회의원과 함께 민중당을 할 때였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받은 이야기도 했다. 태도는 맑았고 살아온 길은 치열했다. 노동운동계의 전설이었다. 오래도록 만나며 지내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 뒤 이재오 씨와 같이 한나라당에 입당할 때 주변 동지들에게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로 간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과 경기도지사를 할 때 나는 김문수 씨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능력으로 봐서 그래도 잘 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2월 5일) 탄핵반대집회에서 김문수 씨가 “남녀노소 모든 분의 우국충정이 너무 진지해 눈물이 났다”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보고 그의 페이스북을 찾아봤다. 사실이었다. 태블릿PC로 연설문을 수정했다는 보도도 허위라는 주장에 동조하고 있었다. 김문수는 옛날 내가 알던 김문수가 아니었다. 그가 페이스북에 쓴 글은 표를 구걸하는 정치꾼의 아부에 지나지 않았다. 여당 국회의원 배지와 경기도 지사의 명패를 얻고, 또 무엇을 더 얻으려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게 뭐 그리 중한지 그의 타락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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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살아있는 김문수

 

김문수와 같은 사람들은 어느 분야에나 있다. 정치, 검찰, 군대, 언론, 교육계, 그리고 작은 회사에도 있을 것이다. 목적을 위해 남을 이용하고, 완장과 의전에 집착하고, 호가호위하고 지록위마하고 곡학아세하고, 편을 가르고,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사람들이 있다. 인생의 목표를 잘못 세운 사람들이다. 비정상적인 사회는 그런 사람들이 각 분야의 윗자리에 있는 사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정체를 잘 숨긴다. 얼핏 그 지위에 맞게 점잖고 고상하다. 문제를 지적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불평분자, 골칫거리로 몰아세운다.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은 우아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그들은 고인 물이고 싶어 한다. 흙탕물이 이니까 물결을 일으키지 말라고 한다. 침전물이 쌓여 아래는 썩어가도 자신들이 사는 윗물만 맑은 것처럼 보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이 안정이라고 속인다.

 

물은 흘러야 한다.

 

우리 사회엔 김문수 씨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 멀리는 일제강점기에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뜻 하나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 있고,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고 그 과실을 탐하지 않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투쟁 속에 살아있고, 단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아직 그들이 체제 밖에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시스템은 아직 그들의 뜻을 펼칠 마당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전국의 촛불은 탄핵 넘어 시스템의 변화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아직 더 소란하고 불편해야 한다. 언론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기자라는 직업은 원래 그리 고상한 직업이 아니다. 사람들이 감추고 싶어 하는 불편한 진실을 까발려야 하는 직업이다. 바닥이 썩었으면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가 되어야 하고, 고인 물은 흐르게 물꼬를 터 주어야 하고, 대통령이 틀렸으면 틀렸다고 소문내어야 한다. 오늘 안 되면 내일, 내일 안 되면 그 다음날, 끊임없이 소란을 일으켜야 한다. 그것이 기자의 사명이다. 변하면 안 된다.

 

안성일(전 MBC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