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언론, 여론조사를 가장한 여론조작의 위험 간과하지 말아야(유용민)
등록 2016.04.0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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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총선 여론조사 보도와 언론의 책임
언론, 여론조사를 가장한 여론조작의 위험 간과하지 말아야

 

 

유용민(연세대 언론학 박사과정)

 

  2016년 총선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거보도도 과열되고 있다. 언론의 여론조사 보도도 예외는 아니다. 신문, 방송 그리고 인터넷에서 여론조사 보도가 이만큼 난무하는 선거도 없었던 것 같다. 정확한 선거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유권자의 판단을 돕고 여론 형성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활발한 여론조사 보도가 꼭 나쁜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후보자 자질과 전문성, 정당 정책과 비전,  유권자 여론을 다루는 선거보도는 실종된 반면, 거대 정당 간의 순위경쟁만 부각하는 언론의 선거보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왜곡된 여론조사 결과가 언론에 의해 걸러지지 않고 보도될 경우, 여론조사를 가장한 여론조작의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균형과 품질은 뒷전, 인포그래픽와 카드뉴스로 포장하기에 급급한 여론조사 보도
  지난 4월 6일 총선보도감시연대가 발표한 선거보도모니터 자료만 보더라도, 여론조사 보도의 문제점은 여실히 드러난다. 동일 선거구에서 비슷한 시기에 실시한 조사에서 오차범위를 뛰어넘는 상반된 결과가 속출하고 있는데도 아무런 여과 없이 전달하기 바쁜 중계보도, 통계와 수치로 객관화된 조사결과를 정당과 후보자에 따라 편파적으로 해석하는 보도, 전체 조사 결과 중에서 특정 정당의 선거 전략에 부합하는 정보만 부각시키는 보도 등이 이번 선거 여론조사 보도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확인된다. 신문과 인터넷 매체들의 보도 행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특히 논란이 되는 이슈 중 하나인 동일 지역에 대한 조사결과가 업체마다 천차만별로 나오는 상황부터 살펴보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조사업체들의 급조된 엉터리 조사, 조사 왜곡과 조작, 여론조사 기법의 한계 탓으로만 돌리기 어렵다. 과학적인 통계기법을 활용한 조사기법이 충실하게 반영됐다 해도 유권자들의 표심이 시시각각 요동치거나 특정 유권자들이 조사에 체계적으로 누락된다면, 선거 판세와 민심의 추이를 대변하는 여론조사의 쓸모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여론조사가 선거보도의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 무섭게 이를 퍼 나르기 바쁘다.


  유선전화 이탈 인구 증가, 국민들의 피로누적과 응답회피, 낮은 응답률 등의 현실적 요인들은 여론조사로 인해 야기되는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은 여론조사를 적절히 활용하되, 유권자들에게 그 문제점을 충분히 설명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러나 언론은 여론조사 보도의 균형과 품질에 주의를 기울이기보다 연일 쏟아지는 조사결과를 인포그래픽으로 포장하고, 카드뉴스에 옮겨 담는 데만 심혈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여론조사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언론 또한 여론조사의 문제점과 그 원인을 다루기 시작한 점은 다행이다. 그렇다고 여론조사 중계에 과도하게 매몰된 선거보도의 잘못된 행태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한겨레신문은 7일 사설 <부정확한 여론조사 홍수, 제도개선 시급하다>에서 여론조사가 선거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지적하였으며, 중앙일보는 6일 사설 <유권자 판단 흐리는 여론조사 정비 필요하다>에서 “선거 여론조사와 관련된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제목만 보면, 언론보다는 여론조사가 제일 큰 문제라는 것처럼 비춰진다. 두 사설의 진의가 혼탁해진 여론조사 지형이 선거에 미치는 부정적인 측면을 공론화 하는 데 있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언론의 책임은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 같단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 책임이 이들 몇몇 언론에 한정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중앙일보 사설은 “엉터리 여론조사 결과가 유권자 표심을 출렁이게 하고 선거 판도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유권자를 현혹한 책임은 언론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민주적 의사결정의 참고자료일 뿐
  지금도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여론조사 보도가 나오고 있다. 대표 사례로 전국 언론사들이 실시한 여론조사 510건을 분석한 문화일보 7일 <총선 D-6 요동치는 민심: 접전지 1주일새 10%P나 늘어…> 기사를 보면,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내로 판별된 지역들을 ‘경합’이니 ‘경합우세’니 하는 수식을 붙여가며 구별하고 있다. 놀랍게도, 문화일보는 이 기사가 전문조사기관과의 협업으로 작성됐다고 밝히고 있다. 조사업체의 정체도 궁금하지만, 오차 범위 내 격차에 대해 별의별 수식어를 붙이며 판세분석에 열 올리는 언론도 한심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 <문화일보> 4월 7일 기사 판세 지도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민주적 의사결정의 참고자료일 뿐이다. 선거가 민주주의를 위한 시험이라면, 불량 참고서로 공부한 학생의 성적이 좋을 리 없다. 선거여론조사 보도에서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은 참고서가 제대로 된 것인지 꼼꼼히 점검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지만, 지금은 참고서 팔아먹기 바쁜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