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문제는 다시 ‘공영방송’이다(김유진)
<시시비비> 2016 총선보도감시연대에 거는 기대
문제는 다시 ‘공영방송’이다
김유진 정책위원
지난 14일 ‘2016총선보도감시연대’(선감연)가 발족했다. 선거보도 감시는 1992년, 그러니까 민언련이 해직언론인단체에서 시민단체로 외연을 넓히면서 ‘수용자운동’ 차원에서 시작됐다. 이후 총선, 대선, 지방선거 때마다 민언련은 언론․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신문과 방송의 선거보도를 모니터해왔다.
20여 년간의 선거보도 감시활동은 적지 않은 성과와 함께 고민거리도 남겼다.
신문 영역에서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수구보수신문들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우이독경’이라는 점이다. 민주화 이후 이들은 새누리당의 뿌리가 되는 정치권력에 자발적으로 유착해 왜곡보도를 일삼았고, 선거 때면 노골적인 편파보도를 쏟아냈다. 최근 선감연이 발표한 보고서를 봐도 수구보수신문들의 편파보도는 지난 20여 년 동안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신문의 선거보도를 감시, 비판하는 일이 무의미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선거보도 자체를 개선하지는 못했지만 유권자들에게 왜곡편파보도를 알렸고, 수구보수신문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 기여했다고 본다.
그러나 격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수구보수정당과 수구보수신문의 유착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고 편파적인 선거보도는 반복될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시민사회가 선거보도 감시로 수구보수신문을 변화시키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선거보도 감시활동이 신문 영역에서 좀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독자들이 ‘신문의 정파성’과 ‘보도의 편파성’을 명확히 구분하고 편파보도에 휘둘리지 않도록 보다 설득력 있는 비판을 내놓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공영방송, ‘기계적 균형’의 추억
방송 영역에서 선거보도 감시활동의 고민은 더 깊어 보인다.
87년 6월 항쟁과 90년대 초까지 이어진 방송민주화 투쟁 이후 방송(특히 공영방송)의 불공정 선거보도는 더디지만 조금씩 개선되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권력의 방송통제가 사실상 사라졌고 방송사에는 노조를 비롯한 내부 비판세력이 굳건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선거보도 감시활동도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시민단체가 내놓는 비판을 방송사 노조는 적극 수용했고 선거보도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규모 거리유세 등을 금지한 선거법 개정으로 방송의 영향력이 더 커진 2004년 총선. 당시 방송보도 감시의 핵심은 편파성 여부가 아니었다. 적어도 ‘기계적 균형’은 방송의 선거보도에서 마지노선 같은 것으로 인식되었다. 민언련은 방송사들을 향해 ‘기계적 균형을 넘어서 달라’고 주문했다. 단순한 동정보도를 지양하라, 정책을 심층보도 하라, 유권자의 정치참여를 이끌어내도록 하라, 양시양비론에 휘둘리지 말라, 색깔론‧지역감정 조장을 비판하라, 신진‧소수‧진보세력을 충분히 보도하라 등등. 방송사들은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비판은 받았지만 기계적 균형과 중립성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언론운동 일부에서는 이 같은 경향을 ‘불가역적’ 흐름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불가역적 흐름’은 딱 2008년 총선까지만 해당됐다. 이명박 정권이 방송장악에 나서면서 모든 것이 거꾸로 흘렀다. 공영방송의 중립성 탓에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패했다고 본 이명박 정권의 비뚤어진 인식은 물불 가리지 않는 장악과 통제로 나타났다. 권력에 충성할 인물을 사장으로 앉혀 방송장악에 저항하는 직원들은 현장에서 쫓아내고 비판 프로그램들을 없애버렸다. 권력에 장악된 KBS와 MBC는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새누리당과 이명박 정권, 박근혜 후보를 위해 발 벗고 뛰었다. 정권에 유리하면 키우고 불리하면 감추었으며, 기계적 균형과 중립성마저 무너졌다. 편파보도를 비판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당했고 수년에 걸친 탄압으로 노조도 힘을 쓰지 못했다.
바꿀 수 있는 게 없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민언련과 언론·시민단체들의 요구는 원점으로 돌아가 있다.
선감연이 제시한 ‘총선보도준칙’ 첫 번째가 객관적인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해 달라, 두 번째가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편파적이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과연 선감연의 요구는 얼마나 받아들여질까? 지금까지 나온 보도를 보면 희망은 없어 보인다. 방송민주화의 성과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권력이 방송을 틀어 쥔 상황에서 선거보도 감시활동은 어떤 현실적인 목표를 세울 것인가.
‘공영방송을 제 자리에 돌려놔야 한다’는 시민적 공감을 최대한 확산시키는 것이 하나의 목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보도 자체로만 보면 종편이 KBS, MBC 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가장 절박한 과제는 공영방송을 제자리로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집단에 가까운 TV조선이나 채널A의 보도행태를 바꾸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뿐더러 공영방송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종편의 악의적 왜곡편파보도는 상당부분 상쇄될 것이기 때문이다.
방송 영역도 당장은 선거보도 감시활동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할 일을 하면서 공영방송을 바꿀 기회를 기다리는 시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