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김영삼 후예들의 도행역시(倒行逆施), 민심은 천심이라 말할 수 있을까?(이용마)
등록 2016.01.1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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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총선 공정선거보도가 불가능한 언론 상황
김영삼 후예들의 도행역시(倒行逆施), 민심은 천심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용마(MBC 해직기자, 민언련 정책위원)

 

 

군사독재 - 정부 비판이 막힌 언론


“최근 정치 현안에 대해 국회에서 발언이 있었다···여기서 한 재야 인사의 식사 문제가 거론됐다.”


1983년 6월 대한민국의 한 신문이 보도한 내용이다. “한 재야 인사의 식사 문제”가 국회에서 거론되었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 이 신문을 읽은 독자들은 과연 이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을까?


여기서 한 재야 인사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고, 식사 문제는 김 전 대통령의 단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김 전 대통령이 1983년 5월 18일 전두환 정권에게 민주화를 위한 5개항을 요구하며 23일 간의 단식투쟁을 시작한 뒤 처음 나온 언론 보도이다. 당시 언론에서는 김영삼이나 김대중 같은 야권 지도자들의 이름을 거명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었다. 하물며 이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정부를 상대로 하는 투쟁을 보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의 단식에 관한 소식은 국내 언론에서는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의 언론정책은 한 마디로 철저한 봉쇄였다. 이들에게 언론, 특히 방송은 국가기관의 하나일 뿐이었다. 오죽하면 문화공보부 산하의 한 ‘국’이라는 의미에서 방송‘국’이라고 불렀겠는가.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오로지 정부와 여당의 선전도구로 철저히 활용되어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기능을 수행했다. 이런 상황이니 야당에 대한 보도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했다. 야권은 천수답 농민의 심정으로 그저 하늘만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단식을 하며 요구한 5개항 중 첫 번째는 민주 인사 석방이나 헌법 개정이 아니라 언론의 자유 보장이었다. 민심의 왜곡을 막아보려는 의지의 소산인 것이다.

 

민간독재 - 정부 비판이 막힌 언론, 데자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언론의 자유는 점차 회복되었다. 정치 관련 보도 역시 차츰 정상을 되찾았다.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여당 일방적인 보도가 아니라 여야 간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김대중 정부 이후 처음으로 청와대를 직접 비판하는 보도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서는 권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대단히 자유로워졌다. 오죽하면 시정잡배들조차 “이게 다 노무현 탓”이라는 말을 읊조렸을까.


하지만 우리 사회 언론의 자유는 아직까지는 권력자가 용인하는 정도만큼만 가능함이 증명되었다.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충분히 공고화되지 못한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 들어 자행된 언론 장악의 결과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사들이 방송사 사장으로 투입되면서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는 철저히 가로막혔다. 대통령 관련 기사는 찬양 일색으로 바뀌었고, 대통령은 다시 비판의 성역이 되었다. 여야 간 50대 50 기계적 균형을 맞추던 정치 관련 뉴스는 교묘하게 변질되었다. 야당에 불리한 기사는 부풀리고 여당에 불리한 기사는 빠지고 있다. 때로는 정부와 여당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사실로 둔갑시키는 짓도 서슴지 않고 있다.


“혼용무도”와 “지록위마”, “도행역시”의 배경에는 해바라기처럼 청와대와 정부, 여당만 바라보며 민심을 왜곡하는 언론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민심은 천심일 수 있을까?

 

김영삼 후예들의 도행역시 - 여전히 정부 비판이 막힌 언론
이제 제20대 총선이 불과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벌써 여러 가지 우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장 큰 우려는 민심을 왜곡하려는 언론의 문제일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올 들어 지난 12일까지 분석한 결과를 보면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은 총선과 관련해 12-14건, 하루 평균 1건 정도 밖에 보도하지 않았다. 그나마 대부분 야당의 분열을 부각하는 보도이다. 이에 비해 TV조선과 채널A 같은 종편의 경우 같은 기간 60여건, 하루 평균 5건 정도의 보도를 쏟아내면서 야당의 분열을 부채질하고 여당을 띄우고 있다. 한 쪽에서는 총선을 유권자들의 머릿속에서 지움으로써 여당에 유리한 구도를 고착화하려고 한다면, 다른 한 쪽에서는 야당을 죽이려는 노골적인 보도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배경에는 역설적이게도 김무성과 서청원 등 자칭 김영삼의 후계자들이 있다. 현재 여당을 대표하는 이들은 이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만족을 하고 있다. 이들이 군사정권 시절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며 언론의 자유를 갈구했던 김영삼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 도행역시의 결말은 오자서의 비참한 최후였음을 알고 있을까.

 

 

* 교수신문이 보도한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에 도행역시(2013),지록위마(2014), 혼용무도(2015)가 선정된 바 있습니다. 도행역시는 ‘거꾸로 가고 거꾸로 행하다’로, 도리를 따르지 않고 무리하게 행하거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