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국방부와 고용노동부, 돈으로 기사를 사다(신태섭)
<언론포커스> 돈 주고 기사 사서 정책 홍보하는 정부.
국방부와 고용노동부, 돈으로 기사를 사다
신태섭 (민언련 전 대표, 동의대 교수)
PR은 공중과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이나 노력을 말한다. 발생 초기인 19세기말에서 2차대전까지 PR은 공중을 기만하는 정보조작이 대세였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조직과 공중 간의 상호이해와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민주적 PR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슬프게도 우리 현실은 퇴행적이다. PR은 상품판매 보조수단 정도로 취급되고 있으며, 심지어 여론 조작과 언론사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일도 일상적이다.
명심하자. 정상적인 PR은 ‘보도할만한 가치가 있는 기사거리를 정확성과 진실성에 입각해(1조) 공공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타락시키는 어떤 행위도 없이, 특히 금전적 제공 없이(4조)’ 언론사에 제공하는 데까지다. (작은 따옴표 부분은 한국PR협회 PR인윤리강령 1조와 4조의 내용이다.)
홍보용 기획기사, 돈 주면 산다?
△ 새정치민주연합 진성준 의원이 폭로한 국방부 주요정책 종합기획홍보 약정서
11월 12일 새정치민주연합 진성준 의원은 종합일간지 중앙일보와 한 홍보대행사 간에 체결된 ‘국방부 주요 정책 종합기획홍보에 관한 약정서’를 폭로했다. 그 약정서는 중앙일보가 2015년 6월 20일부터 12월 31일까지 7차례에 걸쳐 국방부 홍보기사를 보도하고, 그 대가로 1억원을 받는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중앙일보는 약정을 체결한 이후 ‘번호로 남은 9826명, 이름 찾아주는 그들’(6월 24일), ‘메르스 환자 이송 군, 전시계획 따랐다’(8월 3일) ‘지지율 15% 오른 박 대통령, 군복 대신 카키색 재킷’(8월 29일), ‘저비용 고효율 문경 군인체육대회, 국제대회 본보기 됐다’(11월 5일) 등 국방부 홍보 기사를 수차례 내보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중앙일보는 자신을 비롯해 대부분의 언론들이 KF-X사업 기술이전 실패에 따른 질책성 기사를 쏟아내던 상황에서 급격히 논조를 바꿔 국방부를 두둔하는 기사(10월 23일)를 내보내는 ‘소신’을 과시하기도 했다.
한편, 2015년 8월 24일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의원의 폭로에 의하면, 2014년 고용노동부는 한 홍보대행사와 5억원 규모의 홍보대행계약을 체결했다. 그 중 조선일보·중앙일보·문화일보 등 종합일간지 4건, SBS·TVN·채널A 등 방송 3건, 경제지 한국경제 2건, 온라인미디어 머니투데이 2건, 중앙이코노미스트와 제호미상 잡지 2건 등 금액으로 총 1억 8253만원이 정부홍보성 기획기사에 대한 대가로 지출됐다.
그 기사들은 ‘노동 유연성 제고’, ‘호봉제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자의 교섭력을 축소하고 노동자의 총임금을 삭감하는 친재벌적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정부정책에 국민들이 호감을 갖도록 또는 적어도 반대를 줄이도록 고안된 내용들이었다.
언론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끔찍한 범죄
이는 진짜 심각한 문제다. ‘대자본의 사리사욕을 위해 국민을 등치는 개악’을 ‘국민을 위한 개혁’이라고 국민을 기만하는 것도 분통 터질 일이다. 그렇지만, 진짜로 더 심각한 것은 국방부와 고용노동부가 홍보용 기획기사를 돈 주고 샀다는 사실이다. 입맛에 맞는 기사를 내주는 대가로 돈을 주고받는 것은 그것이 광고든 PR이든 협찬이든 형식과 무관하게 언론과 민주주의의 근본을 파괴하는 끔찍한 범죄행위다.
정부는 홍보대행사를 통해 언론사와 당당하게 계약서까지 쓰고, 홍보대행사는 노출률을 광고비로 환산해 큰 성과를 냈다며 홍보 잘 했다는 자화자찬 보고서까지 냈다. 개념이 없는 건지, 윤리와 법을 초월한 건지... 정말 절망적이지 않을 수 없다.
현행법에서 돈 주고 지면을 사서 거기에 광고를 기사형식으로 게재하는 것은 몰상식이자 불법이다. 돈 주고 지면과 홍보성 기사를 함께 사서 게재하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큰 몰상식이자 민주파괴의 불법이다. 이는 정부와 언론이 서로를 매수해 여론을 조작하는 대국민 사기극이자 체제파괴 범죄행위다. 더군다나 국민으로부터 월급을 받는 정부가... 국민을 기만하기 위해... 그것도 세금으로... 정말 용서받지 못할, 그리고 용서해서도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