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우리도 그들처럼(서명준)
등록 2015.11.1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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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독일 정당의 뚜렷한 미디어 정책
우리도 그들처럼

 

서명준(언론학 박사, 민언련 정책위원)

 

 

시장(市場)이 곧 토론의 장이던 시절이 있었다. 시장에 모인 사람들은 직접 대면하면서 의견과 정보를 교환했다. 여론은 시장에서 형성되었다. 고대국가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시장의 여론 기능을 오늘의 ‘시장경제’에서는 미디어가 대신한다. 미디어는 여론을 형성하는 독자적인 ‘체계’가 되었다. 미디어와 함께 여론을 먹고 사는 체계로는 정당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인터넷이 보편매체이자 주도적인 ‘체계’가 되고 있는 오늘, 미디어에 대한 정당들의 인식은 현실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 정당, 언론 분야에 대한 목표나 실천 방안 없어
예컨대 지난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공약집에는 언론 분야에 대한 공약을 찾아보기 어렵다. 새정치민주연합 전신인 민주통합당의 경우, 약 15페이지에 걸쳐 미디어민주주의의 회복과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공약을 비교적 자세히 담고 있어 고무적이다. MB정부에서 자행됐던 언론 자유를 회복하고 방송독립을 위한 소유지분 제한, 방통위 재편 등 다양한 입법조치를 명기했다. 신문산업 활성화 방안과 지역언론, 나아가 클린 인터넷 환경에 대한 내용도 있다.


지난 18대 대선 당시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언론정책은 종합적인 정책방안이나 해결책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특히 디지털 시대 방송정책의 방향이나 스마트 미디어 시대 방송시장의 대응 등에 대한 비전이나 공약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양대 진영의 캠프에서는 미디어융합 시대에 대한 목표나 실천방안을 볼 수 없었다. 방송철학과 정책의 부재였다.

 

독일, 정당 별 언론 정책과 목표 뚜렷
독일의 경우 이보다는 사정이 좀더 나은 편이다. 독일의 정당들은 뚜렷한 미디어 정책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정보보호와 아울러 시민의 미디어능력을 개선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미디어 이용 주체에 대한 관심이 크다.

 

먼저, 우파 집권정당인 기민당(CDU)은 정보보호를 위한 규제정책에 집중한다. 투명한 디지털 사회를 추구한다. 물론 여기에는 바이오여권과 새로운 감시 기술의 도입과 같은 다소 논쟁적인 내용도 있다. 중도좌파인 사민당(SPD)은 시민의 인터넷 참여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입장이다. 지적재산권 보호도 이 사민주의자들의 단골 테마다. 이를 위해 저작권 소유자에게 매월 일정액이 지불되도록 하는 이른바 문화요금제 도입을 주장한다. 우파 기민당과의 연립정권에 참여했던 자민당(FDP)의 자유주의자들은 완전히 자유로운 형태의 ‘인터넷 공화국’을 추구한다. 이들은 검열 절대불가라는 원칙을 굽히지 않는다. 최근 지지를 받고 있는 좌파당(DIE LINKE)은 디지털사회에서도 지적노동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하고 복제권도 일단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녹색당(DIE GRUENE)의 경우 정보투명성, 정보자유, 정보공유 등 ‘인터넷의 자유’를 정책 목표로 표방했다. 여기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정당은 최근 강력한 중소정당으로 급부상한 해적당(PIRATENPARTEI)의 출현이다.

 

독일 해적당은 인터넷에서 정당정책과 관련된 과정들이 공개되고 활발한 온라인 논쟁 끝에 탄생한 신생정당이다. 이 정당은 정보통신기술 발달에 힘입어 정보사회 이슈를 제기하면서 관심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탈물질주의적 가치 변화를 정확히 읽어내고 시민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도모한 점이 창당의 본질적인 힘이다. 전통적인 거대정당이 간과하는 특정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이에 정당 프로그램을 집중하며 수평적인 네트워크와 소셜 거버넌스를 시도하여 새로운 정치세력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지방의회선거에서 잇달아 성공하면서 독일 정당 체계 내에서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정당, 미디어 현실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야
오늘 일상에 미세하게 침투해 있는 인터넷은 지난 20여년 간 인터넷 석기시대를 거쳐 전근대를 마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시맨틱웹이 ‘인터넷 산업혁명’의 시대를 열게 된다. 이 디지털 산업혁명 시대의 기계와 콘베이어 벨트는 바로 어플리케이션이다. 앱은 현대사회가 생산해내는 대량의 데이터를 ‘의미’에 따라 맥락화하고 있다. 바로 이런 미디어 현실의 변화양상을 정당들은 읽어내고 여기에 미디어정책을 집중시켜야 한다.


웹3.0의 시대와 함께 새로운 정치참여의 가능성도 열리고 있다. 시민지성은 차별화된 정보를 자신의 이념에 맞춰 맥락화시키고 있다. 고도의 전문 인력이 정보를 일방적으로 가공하여 제공하던 방식은 옛말이 되어가고, 웹 3.0이라는 ‘민주주의 기계’가 등장하고 있다. 이것이 정말 미디어의 미래라면-온디맨드 미디어체계가 온디맨드 정치참여 공간을 창출한다면-정당들은 이런 디지털 혁명의 계기를 놓치지 말아야하지 않겠는가. 여론 시장은 이미 소셜 공간으로 이전되고 있다.  


* 편집자주. 웹 3.0은, 일방적 정보전달(웹 1.0), 사용자 참여(웹 2.0)를 넘어 개인화, 지능화된 웹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개인이 중심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추론하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활용될 전망입니다. 웹 3.0의 핵심 기술은 시맨틱 웹 기술로 컴퓨터가 정보 자원의 뜻을 이해하고, 논리적인 추론까지 할 수 있는 차세대 지능형 웹 기술입니다. 즉 사람의 마음을 컴퓨터가 이해하여, 선거결과 등을 미리 예측하거나 법원의 판결을 미리 알 수 있을 정도로 인공지능이 진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