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사설을 통해 진단하는 탄핵 정국 이후 개헌 논의
조선, 수구정권 재창출을 위한 정략적 개헌론 주도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 수구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정권 재창출을 위해 10월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된 이후 힘을 잃었던 개헌 논의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수구 보수 세력의 정략적인 개헌론 제기에 일부 족벌신문도 본격적으로 가세하기 시작했다.
조선, 개헌을 지렛대로 ‘야당 갈라치기’·정계개편 적극 유도
수구 보수 세력의 정략적인 개헌론 제기에 가세하면서 개헌을 매개로 한 ‘야당 갈라치기’와 정계개편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신문은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12월 13일 사설 <1987년 후 첫 국회 개헌특위, 나라 바꿀 수 있다>에서 “이것(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은 사람의 문제일 수만은 없다. 대통령의 전횡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상의 결함을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며 현행 헌법의 결함 때문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촉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안철수 전 대표가 개헌을 반대한다면서 그들을 맹비난했다. 15일 사설 <改憲은 시급한 국가 현안이나 정치 수단은 아니다>에서는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측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가 개헌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개헌을 지렛대로 정치권을 ‘친문 대 반문’식 구도로 재편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22일 사설 <3년 임기 정부가 개헌해 국가 틀 바꾸자는 제안>에서도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등이 모두 개헌 논의에 동참했다면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이 개헌을 시급한 국가 현안으로 인식”한다고 강조했다. 23일 사설 <안철수의 2018년 개헌 국민투표 제안도 주목한다> 역시 2018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제안을 추켜세우면서 민주당 주류(친문)의 반대 때문에 당장 개헌이 어렵다면 “대선 주자들이 개헌 시기를 구체적으로 못박아 공약하도록 한 뒤 집권 후 도저히 번복할 수 없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개헌을 지렛대로 정치권을 ‘친문’ 대 ‘반문’, ‘개헌’ 대 ‘호헌’의 구도로 재편하려는 조선일보의 논조는 중앙일보나 동아일보와 비교해 봐도 상당히 노골적이다. 중앙일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개헌을 매개로 정계개편을 시도하려는 사설을 특별히 게재하지는 않았다. 동아일보도 12월 10일 사설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제 국회가 답을 내놓을 때다>에서 “‘불행한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5년 단임제 중심의 87년 체제를 넘어 정치 경제 사회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도약을 도모할 수 있는 개헌 논의도 불가피할 것”이라며 “야당과 일부 대선 주자들이 정권을 다 잡은 것처럼 개헌 논의조차 거부하는 것은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단견이자 국가 개조와 발전을 가로막는 욕심”이라고 지적했을 뿐이다.
한겨레·경향, 정략적 개헌론 비판
반면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정치권과 수구 언론 일각에서 주도하는 정략적인 개헌론을 비판하면서 촛불시위로 드러난 국민들의 개혁 열망을 담아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한겨레신문은 24일 사설 <개헌은 ‘촛불 혁명의 완성’이어야 한다>에서 “개헌이 촛불 사태에서 확인된 우리 사회의 개혁 요구를 희석시키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또 “시간 부족으로 ‘졸속 개헌’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 “주권자인 국민이 참여하는 헌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헌이 정계 개편 등 정치권의 이합집산과 당리당략을 위한 도구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사설 말미에서 한겨레는 “개헌은 ‘촛불 혁명의 완성’이어야 한다. 정치권이 이 명제를 결코 잊지 말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27일 사설 <개헌보다 개혁이 우선이다>에서 “한국 정치가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것은 헌법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헌법의 문제에 앞서 민주주의의 기본 프로세스 자체가 작동하지 않은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개헌의 또 다른 맹점은 정치세력들이 저지른 실책을 한꺼번에 덮어버린다는 것”, “지금 개헌론은 개헌 그 자체보다 개헌을 매개로 자기 정파의 정치적 이득을 챙기는 데 목표가 있다. 현 정치 구도가 대선을 치르기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정치인들이 개헌을 고리로 힘을 모아 상황을 바꾸려는 것”이라며 일부 수구 보수 세력과 수구 언론의 정략적 개헌 시도를 비판했다. 사설 말미에서 경향신문은 현실적으로 당장 개헌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국민들이 요구하는 개혁과제의 조속한 입법화를 촉구했다.
개헌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정략적 개헌 시도 중단하고 개혁입법 나서야
수구 보수 세력과 조선일보는 개헌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폭넓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야당 갈라치기와 정계개편의 도구로 개헌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면모를 보였다. 이렇듯 개헌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행태는 국민들의 빈축을 자초하면서 역설적으로 개헌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진정으로 개헌을 원한다면 정략적인 정계개편의 도구로 개헌을 활용하는 것을 중단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정권 재창출 유불리만을 타산하며 권력구조 개편에만 골몰하지 말고 개헌을 통해 국민소환제, 국민발의제, 국민투표제 등 촛불시위로 표출된 직접민주주의 열망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아울러 연동형 비례대표제 전면 도입을 통한 선거제도 개편, 선거연령 만 18세로 인하, 투표시간 연장, 각종 개혁법안 제·개정 등 개헌을 하지 않고도 실행할 수 있는 개혁과제의 입법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김성원(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