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정부 비판하는 방송국 자체를 없애버리겠다?(최진봉)[언론포커스] 방송평가규칙 개정의 속셈
정부 비판하는 방송국 자체를 없애버리겠다?
최진봉(정책위원, 성공회대 교수)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지난 4월 발표한 ‘2015 언론자유 보고서’에서 대한민국을 ‘부분적 언론 자유국’으로 분류하면서 그 이유를 정부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이 탄압받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국제기구의 평가는 현재 대한민국의 언론 및 표현의 자유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특혜로 탄생한 종편의 등장과 공영방송사에 대한 현 정부의 통제로 우리 사회의 언론 지형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전락한 언론지형…정도 더 심해져
그런데 최근 들어 박근혜 정부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조치를 강화하기 위해 법률이나 규칙의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여당과 문화체육관광부는 인터넷 포털을 겁박하고 소규모 인터넷 언론사들을 퇴출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신문법시행령 개정안을 추진했다. 현재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대통령의 재가만을 남겨놓고 있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언론중재법 개정을 통해 언론중재의 범위를 언론사에서 인터넷 댓글과 펌글, 그리고 소셜미디어에 게시된 글 까지 중재‧조정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본인이 아닌 제3자가 명예훼손 침해에 대한 심의요청을 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그야말로 박근혜 정부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으로 국민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유로이 논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할 온라인 공론장을 축소시키려는 시도를 통해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방통위, 공정성·객관성 심의 벌점 강화 행정예고…의도가 무엇인가?
이러한 언론과 표현의 자유 침해 활동의 일환으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방심위의 공정성과 객관성 심의 결과에 대한 벌점을 현재의 2배로 강화하는 개정안을 행정예고 했다. 방통위는 지난 10월 23일 방송심의 규정 중 ‘공정성’과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등을 위반한 경우 방송사 재승인・재허가 평가 시 감점을 2배로 강화하는 내용의 ‘방송평가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안’을 행정예고 했다. 개정안은 운영・내용・편성 등 방송 평가 3개 영역 중, 운영 영역의 평가 비중을 축소하고, 내용 및 편성 영역의 평가 비중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내용 영역인 ‘방송심의 관련 제 규정 준수 여부 평가’의 감점수준을 1.5배 강화하고, 방송심의 규정 중 ‘공정성’, ‘객관성’, ‘재난 등에 대한 방송’과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위반의 경우 감점수준을 2배로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방통위의 방송평가규칙 개정은 필요 이상으로 일방적이고 급박하게 추진하고 있어 그 의도에 대해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방송평가규칙 개정은 방송평가 규칙을 심의하고 제안하는 방통위 내 심의기구인 방송평가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직권으로 상정되었다. 오는 11월 말 방통위에서 방송 공정성 평가와 관련해 발주한 연구과제 결과가 나오기 전이다. 게다가 방송평가위원회에서도 반대의견이 압도적이었고, 야당 방통위원 2인이 퇴장한 상태에서 통과되었다.
만연한 표적심의 놔둔 채 강행되면 방송사 길들이기 될 것
방송평가규칙 개정안은 일면 막말・편파 방송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권력기관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를 차단하고, 오는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대비해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적 보도와 프로그램 제작을 위축시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 2014년 7월 1일, 민언련과 언론노조 등 언론단체들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앞에서
'표적심의'. '정치심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실제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서 공정성과 형평성 조항으로 인해 법정제재를 받은 방송 프로그램들은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기사들이나 정부정책의 문제점을 다루었던 프로그램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제작했던 방송사가 방심위의 법정제재에 반발해 법원에 법정제재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에서 모두 6건이 처분취소 결정을 받았다. 이러한 결과는 방심위의 형평성과 객관성 관련 심의가 정치적인 표적심의로 진행되어 왔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방심위 위원은 여당 추천 6명과 야당 추천 3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수시로 표적심의, 정치심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에 따라 각각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공정성과 형평성 위반에 대한 감점 비율을 2배로 올리겠다는 방통위의 시도는 정부기관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사에 대해 재갈을 물리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방송평가규칙 개정안이 시행되어 공정성과 형평성 심의로 법정제재를 받게 되면 방송사들은 3년마다 받는 재승인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방송평가가 방송사 재승인 심사에서 40%라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송사들 입장에서 방송평가규칙 개정은 프로그램 제작과정에서 분명 현실적인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방송사들은 프로그램 제작과정에서 방심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형평성과 공정성 심의 감점 비율을 2배로 올리는 이번 방송평가규칙 개정안은 방송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가 아니라 방송사 길들이기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공정성과 형평성 부분의 감점 비율을 높여 방송사의 정부 비판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방통위는 언론의 견제와 비판기능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이번 방송평가규칙 개정 시도를 중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