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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의 적들은 누구인가(엄주웅)
등록 2015.10.2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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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관련 신문 보도 분석

자유민주주의의 적들은 누구인가

 

엄주웅 (정책위원·전 방송통신심의위원)

 

 
정부와 여당이 한동안 물밑에서 만지작거리던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대놓고 밝힌 10월 6일 이후 우리나라 주요 일간지들은 관련 기사와 사설을 쏟아냈다. 사설을 통해 본 이들 신문의 반응은 국정화 자체에 대해 대부분 비판적이었다. 한겨레, 경향 같은 진보적 매체는 물론이고 “포기하는 게 옳다”(한국일보 10일), “강행 말고 합리적 대안 찾으라”(세계일보, 13일)는 중도성향의 신문, 나아가 친정부 성향의 보수언론들조차도 뜨악해 했다.


겉으론 반대...그러나 국정화를 은근히 부추겼던 조중동
  이들에 따르면 국정화 전환은 “진단과 처방이 잘못된 일”(동아일보 9일)이며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중앙일보 9일). 또한 그 반대 이유도 진보적 매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 문제”(조선일보 9일) “국격 훼손”(중앙), “정권의 역사 개입”(동아) 등등 대개가 현시대의 상식 수준에서 비롯될 만한 지적이었다. 그리고 대안으로 내세운 ‘교과서 검정 강화’도 납득할 만했다.
  그러면서도 현행 검정 교과서들이 죄다 좌편향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정부여당과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 원인이 교과서 집필진들에게 있는 것처럼 넌지시 비치기도 한다. “현행 검인정 교과서들이 대한민국에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북한에는 관대하게 기술함으로써 편향성 논란을 자초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중앙 15일)고 한 대목은 이태 전 교학사 교과서 파동 때 “오죽하면 ‘국정 전환’ 얘기까지 나올까”(조선 2013년 11월 7일치 사설)라며, “차라리 국정교과서로 회귀하든지”(중앙 2013년 10월 18일 서소문포럼) “차제에 국정교과서로의 전환 등 근본적 대안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동아 2013년 11월1일치 사설)고 한 주장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때부터 이들 신문은 교과서 국정화를 은근히 부추긴 게 아닌가 싶다.

 

왜곡‧과장 보도로 “좌편향 교과서”라고 선동
  국정화 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현행 교과서의 문제를 계속 부각시키기도 했다. 정부여당쪽의 선동적 주장을 그대로 전달할 뿐 그에 대한 진실 규명은커녕 반론도 제대로 소개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좌편향된 교과서 때문이라고 강변한 중앙일보의 15일자 사설은 그 실례로써 “대부분의 교과서에는 항일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를 제외시켰고” 어떤 교과서에는 “북한 관련 기술에 독재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오지만 남한과 관련해서는 24번 등장한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는 교육부의 홍보자료를 옮긴 것으로 사실과 달랐다.
  세 신문은 10월 15일 교과서보다도 좌편향 교사들이 더 심각한 문제라며 “박정희 일찍 죽였으면...”이라는 자극적 제목을 붙여 이른바 “선동 편향 수업 사례”를 함께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한홍구 교수의 현대사 강연 동영상에서 극히 일부를 거두절미해 사실을 왜곡한 선동적 보도였다. 한 달 전 한 우익 단체가 운영하는 신고센터에 접수된 내용을 당사자의 반론도 없이 그대로 옮겨, 지금 시기에 터뜨린 것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비쳤다. 조선일보는 20일 한 발 더 나아가 한홍구 교수가 생전 부친의 속을 썩였다는 엉뚱한 기사를 관련 지면에 게재했다. ‘마녀사냥’을 위해 가족관계까지 끌어대는 품격 없는 보도도 문제려니와 이게 교과서 국정화 논쟁과 과연 무슨 관계가 있는지 얼토당토해 보인다.
  겉으로는 국정화를 반대하는 듯하던 이들 신문의 태도는 정부여당의 의지가 점점 더 확고한 것으로 드러나며 국정화를 공식발표하자 어조가 바뀌어간다. 당초 국정화 반대의 논거도 “후폭풍” “졸속, 촉박한 일정에 따른 부실 우려”, “소통 부족”등 원론적이 아니라 현실론으로 옮겨간다.
  그리하여 뜬금없는 교과서 국정화 시도로 논란을 일으킨 쪽에게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에게 더욱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고 권하고(조선 13~14일, 동아 14일) “국정화하겠다고 방침을 정한 이상”(조선 9일) “이왕 발행하기로 결정한 만큼”(중앙 13일) 제대로 만들라고 주문하기에 이른다.

 

말장난에 불과한 ‘제대로 된 국정 교과서’
  ‘제대로 된 교과서’란 뭘까?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최고의 필진으로 모셔(중앙 13,15일)   정권이 바뀌어도 끄떡없고 고쳐 쓰겠다는 말이 나올 여지가 없는 교과서”(조선 8일, 중앙 16일)이다. 글쎄… 역사를 전공한 대다수의 교수, 교사와 연구자들이 국정교과서를 반대하고 집필 등의 참여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는 마당에 가당키나 한 일일까? 그래서 시간을 더 두잔다. 정권 임기 내에 완성하겠다는 집착을 버리라고도 충고한다(조선 13일).
  교과서에서 차지하는 근현대사 비중을 더 축소하라고도 한다. 야당이 현대사 비중을 과감히 축소하는 대신 검정제를 유지하자는 식의 건설적인 제안을 한다면 합의가 가능할 것 같단다(동아 22일). 얼마나 줄여야 할까? 중앙일보는 현행 50%에서 40%로 줄이기로 한 교육부방침보다 더 나아가 30내지 20%까지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15일). 변화하는 동북아 정세에서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할 판에 이런 게 제대로 된 교과서일까? “이념논쟁을 회피하기 꼼수”이며 “역사문제는 다소의 논쟁이 있더라도 정면돌파하는 것이 정도”라는 지적(한국일보 5월 13일 사설)을 들어보라.
  게다가 아무리 시간을 들여 잘 만든 교과서라도 ‘국정’임엔 틀림없다. 그러면 당초 이들이 제기했던 ‘국격’은 어떻게 되나? 또 이건 ‘과거회귀’가 아닌가? 혹시 “백투더퓨쳐”일까. 답을 들어보자. 국정은 어디까지나 한시적이며 이를 넘어 검인정과 자유발행 체제로 가는 것은 필연“(중앙 15일)이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아닌가? 17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비슷한 말을 했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면서 얼마 지속되지도 않을 교과서 국정화를 왜 하냐는 비판을 이들에게도 똑같이 들려주고 싶다.

 

권력자의 논리, 힘의 논리를 대변하는 조중동
  언론의 기대와는 달리 청와대 여야회동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의지가 매우 확고한 것으로 드러나자 보수언론은 이제 방향을 돌린다.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중앙 8일), “옳지 않다”(동아 8일)던 처음의 단언은 사라지고 이제 정쟁을 부각하고 양비론을 펼칠 자신들의 고유영토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반대하는 국민들은 어쩌면 좋을까? 그분들은 조선일보 16일 사설을 보시면 되겠다. “정부가 교과서를 단일화하겠다고 밀어붙이면 막을 방법은 없지만 국민이 국정화에 찬반 의사 표시를 할 길이 영영 막힌 건 아니니” 실망하지 말라. 집필진 구성, 초안 공개 등등 계기마다 의견 표시할 수 있단다. 정부와 여당이 계속 무리하게 추진하면 내년 4월 총선에서 심판하면 된단다. 계획대로 2017년 국정교과서가 교실에 배포되더라도 그해 말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 아니냐고도 한다. 맘에 안 들면 정권을 바꾸란 소리니 이게 권력자의 논리, 힘의 논리가 아니면 뭘까?    

 


  온라인 SBS 취재파일은 16일 <국정화 추진세력에 대한 수학적 귀류법에 의한 분석>이라며 교과서 국정화는 좌-우나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즉 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의 문제라고 했다.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친정부 보수신문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최소한 ‘자유민주주의의 적’들의 동조자가 아닐까? 그래서 그들을 보수가 아니라 수구-극우라고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