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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의 표결문화로는 방송의 공정성과 다양성 보장 못해(이완기)
등록 2015.10.07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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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토론이 무용지물 된 표결 만능의 사회

승자독식의 표결문화로는 방송의 공정성과 다양성 보장 못해

 

 

이완기 상임대표

 

 

  2012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은 152석, 야당은 민주통합당(127석)과 통합진보당(13석)을 합쳐 140석을 얻었다. 여당은 단독으로 과반의 의석을, 야당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46%의 견제 의석을 확보한 것이다. 이어진 12월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51%를 득표해 48%를 득표한 문재인 후보를 3%포인트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그러나 2012년의 총선과 대선 결과는 의석 비율이나 득표율 차이를 넘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치적 힘의 균형을 깨뜨렸다. 야당의 46% 의석은 아무런 견제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으며 문재인 후보가 획득한 48%의 득표율도 큰 정치적 의미를 갖지 못했다. 실질적으로 느끼는 여야의 정치적 힘의 비례는 ‘100:0’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결과가 됐다. 그야말로 ‘The Winner takes all’이라는 노래 제목처럼 승자독식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러한 승자독식의 정치 환경은 인사에서 큰 문제를 야기했다. 박근혜 정권은, 내각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기관이나 공기업의 자리에 정권의 지근거리에 있거나 정권의 색깔에 맞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낙하산 투하하듯 마구잡이 인사를 남발했다. 적재적소 따위의 인사원칙도, 검증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박근혜 정권에서는 ‘인사 참사’라고 할 정도로 역대 정권에서 보기 힘든 비리 인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사청문회에서 능력과 비전과 전문성 등을 검증하는 일은 먼 나라 일이었다. 야당은 부동산 투기, 세금탈루, 논문표절, 병역비리, 위장전입, 전관예우 등 온갖 불법과 비리와 부조리로 얼룩진 인사들에 대한 자격 시비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정권 2년 반의 임기 중에 총리 후보로 지명된 사람만 6명이고 그 중 3명은 총리자리에 오르지도 못하고 낙마했다. 3명의 총리도 도덕적으로 낙마 총리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고 그 중 1명은 임기 70여 일만에 사퇴했다.

 

승자독식논리…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의 기초 보장 안해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치적, 이념적으로 균형을 이루어야 할 방송 분야에도 똑같은 승자독식의 논리가 적용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여론을 수렴하고 조율하며 공공성과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방송의 역할과 의무를 고려할 때, 방송 분야는 무엇보다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의를 통해 운영될 수 있도록 균형 있는 인적 구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분야 역시 엄청난 비대칭 비율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컨대 각 기구의 여야 구성비를 보면 방송통신위원회는 3:2,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6:3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영방송 KBS와 MBC의 사장 선임권과 방송의 공적 책임 의무를 지고 있는 KBS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는 여야 각각 7:4, 6:3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2012년 선거결과에 따른 지지율 대비 측면에서도 지나치게 불균형한 구성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인적 구성의 비대칭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이처럼 큰 차이는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균형은 정치와 이념을 초월해 상식과 합리를 기반으로 한 성숙한 토론문화에서 조금이나마 상쇄될 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은 그런 사회로 진입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명박근혜 정권 7년 반의 세월 동안 군부독재 시절의 진영문화가 더 깊이 뿌리를 내렸고, 성숙된 토론문화를 기대하기는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아졌다. 상식과 합리로 생산적 결론을 도출하기는커녕 적과 아군의 전선만 있을 뿐, 토론문화가 꽃필 공간은 없다. 오직 숫자 놀음의 표결문화와 다수의 횡포만 남아 있을 뿐이다.

 

수의 우위를 내세워 타당한 제안도 무시하기 일쑤
  지난 8월 KBS이사회와 방문진의 이사 추천 과정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보여준 다수의 횡포는 그 좋은 예다. 상식적으로 ‘최소한의 인선 기준과 원칙’을 요구했던 야당 추천 위원들의 문제 제기는 매우 타당한 제안이며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사안이었지만 결국 3:2로 묵살됐다.
  방심위의 각종 프로그램 심의 결과 또한 6:3 구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명예훼손 관련 심의규정 개정과 관련해 지난 9월24일에 있었던 방심위 전체회의에서는 방청석의 발언을 강압적으로 제지하는 등 권위적이고 경직된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이 사안과 관련해 박효종 방심위 위원장은 ‘상위법과의 부조화’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지만, 결국 수의 우위를 내세워 개정을 강행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KBS이사회와 방문진의 국정감사에서도 이인호 이사장과 고영주 이사장은 대화가 안 될 정도로 극단의 정치․이념적 편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인사들이 이끄는 이사회에서 상식과 합리에 따른 토론문화를 유도하기는 불가능하며 결국 토론은 표결로 가기 위한 명분축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토론이 무용지물 된 표결만능의 사회가 된 것이다.
  문화와 풍토가 조성되어 있지 않은 천박한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KBS이사회와 방문진의 구성비를 여야 동수로 하자는 주장과 주요 의사결정의 경우에 특별다수제로 하자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