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복수 공영미디어렙 제도로 전환하여 궁극적 해결해야(김서중)
등록 2015.08.2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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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SBS 늑약과 MBN 불법광고영업으로 증명된 민영미디어렙의 폐해
복수 공영미디어렙 제도로 전환하여 궁극적 해결해야

 

김서중(정책위원장,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전국에는 많은 지역 방송들이 존재한다. 혹자는 땅덩어리도 크지 않고, 모든 것이 수도권 집중 즉 수도권 바라기로 살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지역 방송이 굳이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려 바로 그런 현실 때문에 지역 언론, 지역 방송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
중앙집권적 권위주의를 지향했던 이승만, 박정희 정권이 지방자치제도를 폐지하면서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통하는 즉 서울 공화국이 되어 버렸다. 이런 기형적인 현실은 생존 조건의 박탈을 경험한 지역 주민들의 삶은 물론 성공 신화의 덫에 포획돼 떠나지 못하는 수도권 주민들의 삶조차 피폐하게 만들었다. 1995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십 년 만에 지방자치제를 복원해 20년이 지났다. 나름의 성과도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공공성을 위한 지역 민방의 재정 지원제도 악용돼서야
올바른 지자제의 정착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 중의 하나는 지역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비판 감시에서 활성화에 이르기까지 혈관과 같은 구실을 하는 건강한 지역 언론의 존재다. 사실 지역 방송들이 재정적으로 자립성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물론 지역 민방의 도입 시점에는 황금알을 낳을 것이라 착각하기도 했지만 지금 지역 방송들은 재정적으로 매우 어렵다. 그래서 지역 민방이 안정되게 지역 언론으로서 기능하도록 광고매출 최소 보장을 제도화 하였다.
그런데 지역방송의 안정적 운영을 보장하려는 제도를 무기로 외려 지역 민방의 편성권을 침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독립성과 지역성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민방의 존재 이유가 부정당한 것이다. SBS와 SBS의 광고영업을 대행하는 미디어크리에이트가 지역민방과 맺은 협약 <2012년 SBS 네트워크 합의서>, <편성 및 네트워크시간대에 관한 협약>, <보도에 관한 협약> 등에 따르면 지역 민방의 프라임 시간대에 SBS 프로그램 85% 이상을 편성하고, SBS 뉴스는 8시 25분까지 편성하도록 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협약일까?

 

 

협약이 아니라 늑약수준의 계약
지역 민방이 프라임 타임 대라고 하는 밤 9시부터 12시 사이에 SBS 프로그램을 85% 이상 수중계하고 나면 최대 27분이 남는다. 정상적인 편성이라면 이 시간을 이용해 별도의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SBS 프로그램으로 채우라는 뜻이다. 더군다나 이 시간대 SBS 프로그램들의 방송 시간이 한 시간 전후인 것을 고려하면 15%라도 이용하기 위해서는 SBS 프로그램을 도중에 자르고 편성해야 한다. 그게 가능하지 않음은 삼척동자도 이해할 수 있다. 뉴스 역시 SBS에게 25분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그래도 이것은 협약이니 상호 양해한 것이라고 해명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 조항은 미디어크리에이트가 지역 민방의 광고매출 평균의 90% 이상 보장해주는 것과 맞물려 있다. 이것이 과연 협약일까 늑약일까.
사실 우리는 지역 민방을 통해 수도권 지역 민방인 SBS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혹자는 지역 민방이 SBS 자회사나 지국이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SBS와 각 지역의 민방은 엄연한 별개의 방송사다. 따라서 지역 민방은 필요에 의해서 SBS의 방송을 구매해서 편성하는 관계이고 SBS의 띠 편성을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지역 민방이 SBS의 지국으로 변질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실체가 이번 협약이 공개되면서 드러난 것이다.

 

지역 민방의 편성권 침해는 방송법 위반
지금 드러난 사항은 방송법 위반이다. 방송법은 1조에서 방송의 독립성과 공적 책임을 강조하고 4조에서 다시 확인하고 있다. 전술한 지역 민방의 존재 이유의 근거가 되는 조항이다. 지역 방송이 지역 정치 경제 문화의 혈관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으로 필요에 따라 지역 관련 프로그램을 편성해야 할 권한 즉 편성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SBS와 미디어크리에이트 그리고 지역 민방 등이 맺은 협약은 이 권한을 본질적으로 침해한 것이다.
이런 방송법 위반이 있다는 사실은 최근 처음 나온 지적이 아니다. 2012년 방송사 노조들이 이미 지적한 것이다. 또 최민희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방송통신위원회에 질의한 사항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는 편성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확인이 되면 법률 위반 여부와 행정조치를 고려하겠다고 응답하였다. 그 동안 방송통신위원회가 조사하였는데 무능하여 밝히지 못했는지 아니면 지금처럼 증거가 나오기를 연목구어처럼 기다리기만 하였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제 증거가 나왔으니 방송통신위원회가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만 한다.

 

복수 공영미디어렙 제도로 전환하여 궁극적 해결을
하지만 이 사안은 단발성 사안이 아니다. 방송광고판매대행(미디어렙)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당시 이미 예비 됐던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지상파의 방송광고 판매대행을 독점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 제한이라고 판결 하였다. 지상파 방송의 공공성과 이를 떠받치는 재원 확보의 수단의 공공성을 무시한 판결이었다. 하지만 헌재 판결을 뒤엎을 수 없다면 미디어렙을 다수로 하더라도 공공성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적절한 지적이 있었다. 즉 제2 공영 미디어렙을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SBS 미디어렙인 민영 미디어렙을 도입했다.
방송 공공성을 위해 광고 직접 판매를 막고 미디어렙 제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공공성에 있다. 방송사와 광고주의 광고 직거래를 통한 유착을 막고자 함이다. 종편들의 광고 영업에 대한 다양한 의혹, 그리고 최근 드러난 MBN의 광고와 프로그램의 거래가 그러한 우려를 입증하고 있다. 방송사가 대주주인 자사 미디어렙이 공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디어렙이 방송사와 광고주의 유착을 막기 위해서는 방송사나 광고주에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올바른 해법은, 단기적으로 방통위가 법에 따라 그리고 약속에 따라 관련자들을 징계하고 법을 어긴 미디어크리에이트의 재허가를 취소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방송사의 영업부서 역할 밖에 못하고 자사 미디어렙 제도를 폐기하고 애초 시민사회가 제시했던 복수 공영 미디어렙 제도로 전환해야 한다. 이번 사태의 처리는 방통위가 방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방송의 독립성, 공공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