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언론, 재벌 총수 특별 사면의 문제점 짚고 책임 있게 평가해야(이병남)
<시시비비> 재벌 총수 사면에 대한 언론보도 문제점
언론, 재벌 총수 특별 사면의 문제점 짚고 책임 있게 평가해야
이병남(민언련 정책위원, 언론학박사)
범죄자 사면에 대통령의 ‘통 큰’ 결단이 필요한가?
이번 광복절 특사에 기업인이 얼마나 포함될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벌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인 사면·석방’을 요구하고 나흘 만에 박근혜 대통령이 ‘8·15 사면’ 필요성을 공식 언급한 것이다. ‘경제인 사면복권 제한’이라는 자신의 대선공약을 뒤집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고심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대기업 지배주주, 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한 사면권 행사 제한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올해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업인 가석방에 대해서는 입장 변화는 없다. 기업이라고 해서 특혜를 받는 것도 안되겠지만 기업인이라서 역차별을 받아서도 안된다"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7월 16일에는 새누리당 지도부와 회동결과, 새누리당의 의견을 받아들여 광복 70주년 특별사면 대상에 경제인을 포함해서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인 공약을 위반하면서까지 재벌총수에 대한 특별사면을 하는 것은 권력을 남용하는 것과 다름없다.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면서 특별한 원칙 없이 면죄부를 주는 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위축된 경제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기업 총수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이러한 기업인 사면이 투자와 일자리로 연결된다는 논리가 허구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 이혜훈 의원은 기업총수의 사면이 있었던 2008년과 2009년에 경제성장이 오히려 하락했고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부와 재계 입장 받아쓰기에 급급한 언론
이런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벌 총수의 특별사면 이슈를 보도하는 몇몇 언론은 정부와 재계의 입장을 받아쓰기에 여념이 없다.
조선일보(7월 16일)는 “최근 기업인들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법원의 '엄벌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며 “2012년을 기점으로 법원이 기업인들에게 중형을 선고해왔는데, 이전에 풀려난 사람들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선 '사면 카드'가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논리를 펴고 있다.
또 조선일보는 재벌 총수와 경제인 특별사면'에 대해 반대가 54%라는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내용을 보도하면서도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8.15 특사에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되거나 피선거권이 박탈된 정치인을 포함하는 것에 79%가 반대한다며, 재계에 비해 정치권에 대한 불신 정도가 더욱 강하다고 강조했다. 정치인 사면보다는 경제인 사면에 대한 반대 여론이 적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경제인 사면의 정당성을 억지로 부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TV조선(7월 13일, 14일, 23일, 24일) 역시 ‘8.15 특사’에 재벌총수가 포함될 것인가를 강조하며 “국가발전과 국민대통합을 이루기 위해 사면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는 박대통령의 말을 인용했다. 사면 대상을 보도하면서 최태원 회장이 “재벌 회장으로서는 최장기 옥중생활을 하며 이미 형기의 3분의 2를 채웠”다며 경제살리기를 위해 총수의 사면이 필요하다고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 TV조선 > 7월 23일 보도 화면 갈무리
반면 한겨레(7월 14일)는 경영 범죄에 대한 형량이 지나치게 낮은 것이 현실이라며 “박근혜 정부 들어 두 번째로 단행되는 이번 특별사면도 특혜 시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법조계의 우려를 보도했다.
JTBC(7월15일, 7월 23일)는 범죄자의 사면을 결정하는 ‘사면심사위원회’가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어졌지만 회의록을 살펴보면 거수기 역할만 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대기업 총수를 특별 사면하는 것이 국가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학계의 이견이 있다고 보도했다.
언제까지 재벌 총수 일가의 비윤리적 행위로 인한 손실을 사회가 치러야 하는가
부정행위를 일삼는 재벌총수일가를 대하는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너그럽다. 과거 국가경제 발전에 직접 기여한 바가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현재의 경영구조와 소유구조를 볼 때 재벌 오너의 순기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소수지배구조의 폐해를 없애는 개선이 필요하다. 게다가 총수일가의 경영권 유지를 위한 사익편취와 편법 증여·상속, 탈세, 횡령, 주가조작 등의 비윤리적 행위의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다. 이렇게 부작용만 남아있는 재벌의 관행으로 발생하는 손실에 우리 사회가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언론은 분명하게 밝히고 이의제기를 해야 한다.
언론은 특별사면으로 총수들의 복귀가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 부풀리기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실제 국가 경제를 이끄는 데 도움이 되는지 책임 있게 평가해야 한다. 또한 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의 사면이 국민대통합에 기여한다고 본다면 먼저 사회정의 차원에서 국민을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