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버텨내야 하는 시대’, 수신료 인상 시도도 버텨내자(김유진)
등록 2015.06.0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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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수신료 인상 반대’와 공영방송 바로세우기
‘버텨내야 하는 시대’, 수신료 인상 시도도 버텨내자

 

 

김유진 민언련 전 사무처장

 

 

 

 

수신료 인상 문제가 심상치 않다. 6월 임시국회에서 새누리당이 또 한 번 ‘4000원 인상안’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KBS는 ‘바람잡이’에 열심이다.
1일 KBS 조대현 사장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수신료 현실화”의 절박함을 주장했다. 중국의 도전으로부터 한류를 지키고, 미디어산업의 상생 발전을 위해 더 이상 수신료 인상을 미룰 수 없다고 호소했다. 수신료를 올려주면 평일 오후 9시까지 2TV 광고를 폐지하는 등의 방법으로 광고 수입을 2000억 원 정도 줄이겠다고도 약속했다. 그러나 언론단체들과 야당이 요구하는 정치적 독립성과 공정성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대해서는 어물쩍 넘어갔다. 이날 저녁 KBS 9시 뉴스는 ‘보도’ 형식을 빌려 일방적인 수신료 인상 홍보에 나섰다.
여론은 이번에도 싸늘하다. 수신료 인상에 반대해 온 언론단체들은 일제히 비판 성명을 쏟아냈고, 관련 기사들에 달린 댓글은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수신료 인상-KBS 광고축소’를 통해 일종의 낙수효과를 노리는 매체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조선일보는 “KBS가 광고 전면폐지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데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수신료 인상으로 늘어날 수입이 연간 3900억인데 광고는 고작 2000억을 줄이겠다니! 좀 더 풀라는 차원의 불만이자 압박이다.

 

청와대 보도개입 파문 1년, 자성커녕 “수신료 올려달라”
앞서 수신료 인상 시도가 벌어졌던 2010〜2011년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공영방송’ KBS에 대한 시청자들의 실망과 분노는 더 커졌고, 수신료 인상을 밀어붙이는 KBS와 새누리당이 좀 더 뻔뻔해졌다는 것이다.


2012년 대선의 극심한 박근혜 편향보도,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과 이른바 ‘NLL 대화록 논란’에 대한 왜곡‧편파보도, ‘일베’ 기자 채용 등 그 사이 KBS의 정체성 상실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특히 세월호 참사는 KBS의 망가진 민낯을 완전히 드러냈다. KBS는 국가재난주관방송의 책무는 고사하고 축소보도와 정권비호, 본질 흐리기에 급급했다. 보도국장 김시곤은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들에 비하면 세월호 희생자들은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는 것”이라는 망언으로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 때문에 경질을 당하게 되자 그의 입에서는 놀라운 사실들이 터져 나왔다. 당시 KBS 길환영 사장이 정권의 눈치를 보며 보도의 독립성을 침해해 왔다는 폭로였다. 청와대의 보도개입 의혹들이 잇달아 불거졌고 길환영 사장이 해임되는 선에서 사태가 수습됐다. 이게 꼭 1년 전, 2014년 6월 5일의 일이다.
정치적 독립성이 뿌리째 흔들리는 모습이 들통 났건만, KBS는 어떤 개선 의지도 없이 ‘한류 지킴이’를 자처하며 수신료 인상을 조르고 있다. 그러면서 KBS에 대한 신뢰도가 상당히 높다거나 공정성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는 따위의 주장을 늘어놓는다. 수신료 인상안이 처리될 때까지 KBS의 이런 행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수신료 인상의 문턱에서 주저앉은 새누리당은 좀 더 세게 나올 수 있다. 새누리당은 19대 국회에서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수신료 인상안을 기습 상정한 ‘전력’이 있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과 충격에 빠져있던 2014년 5월 8일의 일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을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지만, 새누리당의 공세에 맞서 원칙을 지켜낼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 우려스럽다. 18대 국회를 돌이켜보면 새누리당이 수신료 인상을 두고 그나마 신경을 쓰는 것은 야당의 반대가 아니라 ‘정권 지지율’이나 ‘물가폭등’ 같은 정치경제적 요인일지 모른다.

 

막무가내 여당 지지부진 야당, 언론단체의 고민
막무가내 정부여당과 지지부진한 야당.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고 있는 언론단체와 시민단체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만약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 없이 새누리당 다수의 힘으로, 혹은 야당의 암묵적 합의로 수신료 인상안이 통과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인상에 대한 비난 여론은 크겠지만 이를 효과적인 저항으로 조직하는 일은 쉽지 않다.


2010∼11년 당시 촛불집회로 결집했던 네티즌들은 수신료를 내지 않는 방법을 조직적으로 공유하고, 텔레비전 수상기를 함께 버리는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것은 2008년 촛불집회의 에너지가 상당부분 남아있던 상황에서 가능했던 일이다.
뿐만 아니라 수신료의 전기요금 통합징수는 납부거부 운동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데 근본적인 제약이 된다. 그렇다고 수신료 징수체계를 바꾸는 운동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2010년에도 징수체계에 대한 위헌소송 등이 제기되었으나 민언련은 현실가능성과 타당성 측면에서 신중한 태도를 취해왔다. KBS를 정상적인 공영방송으로 되돌리는 것이 본질적인 해결책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언소주는 지금 ‘분리징수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징수체계에 대한 입장과는 별개로 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라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결국 6월 임시국회, 나아가 19대 국회가 문을 닫을 때까지 새누리당에 맞서 버텨내는 방법밖에 없다.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이대로는 수신료를 올려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여당을 압박하고 야당을 독려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여당을 비난하고 야당을 질책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 상태에서 수신료마저 올려주고 나면 KBS는 공영방송으로 회복불능의 상태가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