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일 역사학자들도 뿔났다(김수정)
등록 2015.06.0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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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일본의 과거사 왜곡 비판

일 역사학자들도 뿔났다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지난 25일 일본의 역사학연구회 등 16개 역사학 연구․교육 관련 단체가 일본 정부를 향해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한 왜곡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일본의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역사학연구회, 일본사연구회를 비롯한 4개 단체가 모두 참여했고, 중복자를 포함해 3800명이 참여했다. 




이번 성명에서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일본군이 ‘위안부’의 강제동원에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그간 많은 사료와 연구에 의해 실증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위안소 운영에서) 성매매 계약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배후에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구조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관한 정치․사회적 배경을 무시하는 것은 문제의 전체 모습에서 눈을 돌리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위안부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들을 부인하는 정치인들의 발언이 거세지고 정치적 우경화가 심해지는 일본의 상황에서, 역사학자들의 이런 ‘양심’ 발언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다. 성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실로부터 눈을 돌리는 무책임한 태도를 일부 정치가나 미디어가 계속 보인다면, 그것은 일본이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다”고 끝맺고 있다. 


‘요시다 증언’ 보다 ‘강제동원’ 여부가 문제의 본질

잠시 시간을 되돌려 보자. 2014년 10월 15일. 일본 역사학연구회는 ‘정부 수뇌와 일부 매스미디어에 따른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부당한 견해를 비판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일본 언론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이번 성명을 이끈 4개 역사학 단체들의 합의를 이끌어가는 단초가 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성명에서 위안부 문제의 지적은 정치인과 언론을 향하고 있다. 

두 달 전인 8월에는 <아사히신문>이 내린 일부 기사 취소 사건, 일명 ‘요시다 증언 관련 오보사건’이 있었다. 1982년 <아사히신문>은 1942년부터 3년간 일본 야마구치현 노무보국회 동원부장으로 일했던 고 요시다 세이지 씨 인터뷰에서 “일본군이 제주도에서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 연행했다”는 내용을 게재한 바 있다. <아사히신문>은 “제주도에서 여성을 사냥하듯 잡아들여 위안부로 보냈다”는 식의 증언은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32년 만에 요시다 세이지 관련 기사를 오보로 인정한다며 일부 기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때부터 아베 총리를 포함한 일본 정치권과 극우 단체들은 <아사히신문> 때리기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극우 성향 인사들과 단체들이 <아사히신문>을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제기했다. 학자 정치인 등 8700여명은 <아사히신문>이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는 잘못된 인식을 국제사회에 퍼뜨려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1인당 1만엔(10만원 상당)의 위자료와 사죄 광고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을 바로잡는 모임> 회원 400여명도 같은 소송을 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가해의 진실과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무시되고 이후 일본 언론에서는 위안부 관련 기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군 위안소에 끌려온 여성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성적 행위를 강요당했다는 사실에 있다. 감언이나 강압 등으로 위안부를 모집한 사례가 많고 일본군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진 군 시설이었음으로 명백하게 여성의 인권을 침해한 주체는 일본군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한일 언론의 과거사 공동 의제화 시급

아베 총리는 <아사히신문>이 ‘요시다 증언’ 관련 오보를 인정한 것을 거론하며 “일본이 국가적으로 성노예를 삼았다는 근거 없는 중상이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상당 부분 <아사히신문>의 오보 탓이라고 주장했다. 그릇된 역사인식의 문제를 바로 잡는 일이 시급하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간 핵심적인 외교 쟁점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는 아베 일본 총리의 위안부 망언을 신속하게 제대로 바로잡아야 함에도 ‘전략적 외교’의 필요로 방치해왔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 역시 이 같은 비판에서 비켜갈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은 자국의 정치적 입장을 눈치 보며 의제화가 필요한 보도임에도 주저하거나 무시를 하는 방식으로 의제 설정의 비대칭을 당연시해왔다. 이러한 사태가 서로의 문제의식에 대한 차이를 무시하게 만들고 실제적인 논의의 계기조차 날려버리는 결과를 낳았음은 불 보듯 뻔하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사과와 진지한 반성이 이번 성명을 계기로 꾸준하게 논의될 수 있어야 한다. 이 논의의 핵심은 한일 언론의 공동 의제화와 진실보도의 규명, 과거사 해결에 대한 토론의 장을 함께 여는 방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베 총리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일본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극복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세계인들이 진정으로 일본을 명예롭다 생각할 것임을 깨닫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