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진심어린 사과는 성명이 아니라 진실보도로 보여줘야(정연우)<시시비비> 종편의 세월호 관련 악의적 보도와 채널A 기자의 사과성명
진심어린 사과는 성명이 아니라 진실보도로 보여줘야
정연우(세명대학교 교수)
채널A가 12년 전 집회 사진을 ‘세월호 시위대 경찰 폭행 사진’이라며 거짓으로 방송했다. 이후 15일 채널A 소속 기자들이 회사 측에 ‘해당 프로그램 폐지와 문제된 출연자 영구 퇴출’,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 있는 사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및 시행’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채널A 기자들은 기명 성명을 통해 “정확한 사실 확인을 가장 기본으로 삼아야 하는 보도의 원칙이 지켜지지 못했다”며 “시청률이 뉴스의 질을 대변하게 된 상황에서 그 누구도 상식 이하의 보도를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급하긴 했나보다. 이번 사안은 더 이상 어떠한 변명도 통할 수 없는 지경이라 판단한 모양이다. 하지만 왜일까? 한편으로는 채널A 기자조차 성명을 쓰는 상황이 반가우면서도, 그 성명의 진정성이 와 닿지 않는다. 여론의 비난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얄팍한 속임수라는 의구심이 스멀스멀 나온다. 이들의 성명서에 진정이 담기려면 자신들이 그동안 세월호 집회를 어떻게 보도해왔는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진상규명 목소리 왜곡하고 흠집내기에만 몰두했던 기자들
얼마 전 미국의 볼티모어 시위나 지난해 홍콩 민주화 시위의 보도에서는 시위의 원인, 시위대의 주장과 요구 등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반면 종편의 세월호 집회 보도는 시위대의 폭력과 불법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경찰의 과잉 진압과 대응 등은 아예 보도에서 사라졌다. 특히 TV조선과 채널A, MBN은 세월호 집회 참가자들을 흠집내기에 몰두해왔다. 유가족들의 간곡한 진상규명 요구는 부각시키지 않고 전문시위꾼들이 주도한 집회로 몰아갔다. 배후세력을 들먹이며 반정부세력이 정치적으로 유가족을 이용한다고 규정했다. 정상적인 시민의 모습은 보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 5월 8일 TV조선 <뉴스7> 화면 갈무리
TV조선은 “세월호 시위에서 경찰을 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55살 이모 씨가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집회 참가자들에게 파렴치한 성폭력 이미지까지 덧씌우려는 악의성이 엿보인다. 세월호 집회 참가자의 폭력성을 부각하며 성폭력 전과를 덧붙인 것이다. 시민들을 대표하는 사람도 아닐 뿐 아니라, 집회에 참석한 한 사람에 대해서 지나치게 초점을 전체 집회 참석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려는 속셈이 빤히 보인다.
사실 집회는 자발적인 시민들이 참여한 것이니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시와 명령에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돌출행동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누구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저질러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종편은 이러한 일탈 정보를 모으고 기사화하는데 몰두했다. 평화로운 모습 ,애틋한 추모, 사랑하는 가족을 어이없이 잃은 슬픔과 고통은 외면하였다. 좀 특이한 사실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뉴스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둘러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예인을 비롯하여 유명인이 집회에 참가한 것은 뉴스거리가 되는데도 보도하지 않았다. 경찰이 집회참가자들을 자극하고 물대포와 최루가스를 쏘아대는 장면에는 눈을 감았다.
성찰하지 않는 기자는 악마의 앞잡이가 될 수 있다
취재는 기사에 필요한 재료를 모으는 과정이다. 어떠한 재료를 모아서 현실을 구성하는 것이 집회의 본질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 기자의 기본 자질이다. 거의 쓰레기에 불과한 곁가지 사실들만 수집하여 현실을 보도했다면 애초에 함량부족이다. 통찰력과 사안의 본질을 바라보는 안목이 없다면 스스로 기자를 그만 두어야 마땅하다. 보도본부 간부가 내린 취재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구차한 변명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이는 기자가 아니라 한낱 종편이라는 괴물의 부품으로 전락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종편이 편향적 여론을 부추기고 증오와 독설로 민주주의를 갉아먹고 있다는 우려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집어 삼키는 거대한 독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괴물이다.
채널A 기자들이 성명을 발표했다지만 괴물의 단순한 부품들이 조금 삐걱거린 수준이라고 비아냥거려도 반박하기 어렵다. 자신들은 그래도 조작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정확히 취재하여 사실을 바탕으로 기사를 쓰려고 치열하게 노력했다며 무더기로 매도되는 것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항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들이 모아온 하찮은 정보들이 어떠한 맥락에서 이용되면서 현실을 왜곡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기자가 아니라 단순한 정보 수집가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기자들은 현실에서 어떠한 의미를 구성해내는지에 대한 통찰적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성실하게 사실을 취재하였다하더라도 현실을 왜곡하고 여론을 교란하는데 쓰였다면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한나 아렌트는 2차대전 때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면서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악은 악한 성품을 타고난 사람이 저지르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악은 지극히 모범적인 사람에게서도 얼마든지 저질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가 사회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도대체 성찰할 수 없다면 얼마든지 악마의 앞잡이가 될 수 있다. 자신들이 취재한 기사의 조각들이 거짓과 왜곡보도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회적 흉기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기자의 자격이 없다. 그저 조직의 취재 지시에 따를 뿐 비판적 사유능력이 없는 자들은 이미 기자가 아니다.
채널A 기자들은 성명서에서 “오보 사태로 큰 상처를 받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드린다”했다. 음흉하고 잔인한 악어가 먹잇감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는 몇 줄의 성명이 아니라 진실보도를 통해 이루어짐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