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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과 기레기즘(서명준)레닌과 기레기즘
- 언론 자동붕괴를 막을 비판정신이 필요하다
서명준(정책위원, 베를린자유대 언론학 박사)
“도둑, 매춘, 부패한 기자, 부패한 신문. 이것이 우리의 ‘거대 언론’이다”-이것은 혁명 이전의 러시아 제국 당시 언론 상황에 대한 레닌(Lenin)의 일갈이다. 1914년 쓰여진 ‘자본주의와 언론’에서 레닌은 이렇게 진단하면서 “그들은 어디든 연고를 갖고 있다”고 적고 있기도 하다. 정치경제와도 유착되어 있다는, 한때 세계를 뒤흔든 혁명가의 말씀이다.
이미 100년도 더된 해묵은 레닌을 오늘 여기 다시 끄집어내는 까닭은 무엇보다 시장경제가 부정부패와 적폐로 인해 자동붕괴될 것이라는 그의 섬뜩한 전언 때문이다. 이 한물간 공산주의자의 세상은 현실에서 그 끝을 보았지만 오늘 이 땅 대한민국의 거대 언론은 당시 러시아제국 못지않은 적폐와 불명예를 얻고 있다. 그것은 바로 기레기라는 불명예다.
상품광고지로 전락한 거대 언론권력이 ‘기레기’ 낳아
기레기라는 말의 등장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 것 같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그것은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대한민국에서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기자로서의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과 그 사회적 현상을 지칭한다.”고 한다. 위키는 또 “이미 2010년대 초반에 대한민국 네티즌 사이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 집단지성은 기레기 현상을 요즘으로 한정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만, 미디어사회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언론이 민주주의 이념에 충실한 이른바 정론지 개념을 버리고 이탈하기 시작한 시점에 나타난 현상이다. 바로 옐로저널리즘이 등장했던 시점이다. 사회진보와 개혁이라는 이념성을 과감히 버리고 상품광고지로 전락한 거대 언론권력이 등장한 시점이다. 예컨대 이미 지난 70년대 언론의 자본·정치 예속에 반대하다 해직된 선배기자들의 뜨거운 투쟁의 역사는 기레기 언론의 등장을 알리는 빨간 신호등이었던 셈이다.
언론 노동의 성격마저 언론사를 위한 사적 노동으로 전락
언론의 자본 종속성은 언론상품의 성격만을 바꾼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론상품 생산에 필요한 언론노동의 성격마저도 바꿔버린다. 공공저널리즘에 충실하려는 기자 개인의 주관적인 노력은 객관적 상품생산의 법칙 앞에서 맥을 못 춘다. 오늘 기자 노동의 성격은 사적노동의 일부일 뿐이다. 언론사가 그의 노동력을 가져간다는 말씀이다. 이 노동은 더 이상 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추구하는 그 어떤 공적 이념을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 칼보다 무서운 펜을 들고 공공성 또는 공공선을 방어해야 하는 기자 윤리는 그들 노동에서 유리된 화려한 관념의 유희일 뿐이다.
물론 위키 집단지성에도 일리는 있다. 최근 들어 과거를 반성하는 언론인들의 목소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5일 있었던 언론인 기자회견은 대표적인 사례다.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기자연합회, 새언론포럼,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자유언론실천재단, 전국언론노동조합,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대위, 한국PD연합회 등 언론단체들은 이날 “영원히 기레기가 된 우리를 규탄합니다”라며 통렬한 참회와 함께 ‘기레기주의’ 청산에 나섰다. 아울러 “기레기들 무리 속에서도 진상을 밝히고 진실을 추격하기 위해 저널리스트로서, 시민으로서, 인간으로서 분투한 언론인들이 있”음을 알렸다. 나아가 “이들과 함께 우리는 대한민국의 희망 찾기를 끝까지 할 것입니다. 언론자유를 회복하고, 미디어 공공성을 복구하며, 목 잘린 저널리스트들을 되찾아, 이 땅을 희망의 사회로 다시 만들어 놓겠습니다.”라며 믿음직스런 각오를 내비친다.
기자들, ‘과학적 비판’ 정신줄 놓지 말아야
이렇게 언론인 스스로 기레기즘이 판치고 있는 현실을 인정했다. 오늘 저널리즘은 죽었다. 과거의 해법은 실패했다. 그렇다면 이제 정론지를, 공공저널리즘을 복원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여기 기자노동과 윤리의 변증법적 극복이 새로운 해결의 실마리라고 미디어사회학은 가르친다. 독일 중세의 길드와 같은 보호막이 사라진 오늘, 경쟁을 의식하지 않고 기자노동의 사용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다년간 연마한 탁월한 ‘언론노동력’이 민주주의의 재생산을 위한 것이 아닌 언론권력의 재생산 도구로 전락하는 참담한 현실이다. 이에 기자들은 과학적 비판의 정신줄을 놓아서는 안된다. 스스로 적폐를 걷어내 이 사회의 자동붕괴를 막을 수 있겠는가. 레닌의 전언이 틀렸음을 만천하에 증명해보일 수 있겠는가. 기레기 아닌 기자가 이에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