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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불법 대선자금 의혹은 어디로?(이병남)<시시비비> 불법 정치자금의 실마리 ‘성완종 리스트’
박근혜 불법 대선자금 의혹은 어디로?
이병남(민언련 정책위원, 언론학 박사)
△ 4월 11일자 조선일보 1면 갈무리
성완종 리스트
경남기업 자원개발 사업비리 수사를 받던 성완종 전 회장이 생을 마감하며 남긴 메모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 홍문종 의원, 홍준표 경남 도지사, 이완구 총리,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등 8명의 이름과 그중 6명에게 전달한 돈의 액수가 적혀있다.
이 리스트를 계기로 자원개발 사업의 부실과 친이계의 부당한 개입에 맞춰져있던 초점이 박근혜 정권의 불법 정치자금 논란으로 전환되었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박근혜 대통령의 불법 대선자금이 분명하다. 성완종 전 회장은 2006년 당시 김기춘 의원(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당시 박근혜 의원 독일 방문경비로 10만 달러를 건넸고,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에는 허태열 박근혜 대선후보캠프 직능총괄본부장(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경선자금으로 7억 원을 건넸다고 폭로했다. 2012년 대선에는 홍문종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조직총괄본부장(현 국회의원)에게 대선자금 명목으로 2억 원을 건넸다는 증언도 했다.
정경유착 근거 지우려는 정언유착
모두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과 조중동은 로비와 불법 정치자금으로 연결된 정경유착의 실마리를 풀기도 전에 정언유착으로 여론 몰이, 본질을 왜곡하려 하고 있다.
검찰 수사와 보수언론의 초점은 이완구 총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금품수수 여부를 가리는데 주로 맞춰지고, 노무현 정부 인사 등 야권으로 수사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야당책임’ 논란으로 옮겨갔다.
‘성완종 리스트’ 관련 보도를 분석한 민언련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겨레와 경향은 박근혜 대통령 불법 대선자금 관련 보도가 야당 책임론보다 많다. 그러나 조선일보를 비롯한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불법 대선자금보다 야당책임론을 더 많이 보도했다.
특히 이완구 총리 관련 보도 프레임은 대선자금에 비해 훨씬 자주 나타나 조선일보는 15배, 중앙일보는 9배, 동아일보는 8배의 보도 건수를 보였다. 조중동이 이처럼 이완구 총리의 문제를 집요하게 보도한 것은 불법 대선자금과는 연관성이 없는 이 총리의 정치자금 수수를 부각시켜 박 대통령 불법 대선자금이라는 핵심적 맥락을 덮어보려는 태도로 보인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의 전모는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새누리당 불법 경선자금 의혹이 실체화되었고 자세한 금품 전달 정황과 배경이 이미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불법 정치자금 수사촉구 vs 여야 쌍방 책임론으로 물타기
새누리당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보도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여야 쌍방책임론을 주장하며 ‘성완종 리스트’를 여야공방이 예상되는 사안으로 몰고 갔다.
조선일보는 “성 전 회장의 인맥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 것 같다”는 소문과 함께 “현재의 야권도 여권을 공격하기는 편치가 않다”(4. 11)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성 전 회장이 “노 정부의 핵심 인사들에게 로비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야당은 박근혜 정부에 요구한 철저한 수사라는 잣대를 자신들에게도 적용해야 한다”(4. 13)고 주장했다.
게다가 조선일보는 구체적 증거가 제시된 수사대상임에도 불구하고 홍문종 의원과 유정복 인천시장이 2012년 대선 당시 각각 맡았던 조직총괄본부과 직능총괄본부는 “특성상 돈이 많이 필요한 곳”(4. 13)이라고 설명하며 이들을 감싸고 있다.
불법 정치자금의 증거가 분명하게 드러났지만 제대로 된 수사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만한 결론을 이끌어 낼 지는 미지수다. 수사의 대상이 이미 권력을 쥐고 있고 정권의 시녀와 다름없는 검찰이 과연 어디까지 진실을 파헤칠 수 있을지 역시 의심스럽기만 하다. 더구나 분명한 증거를 쥐고 있는 언론 매체가 있는 반면 진실 규명 흠집 내기에 여념 없는 언론 매체도 있으니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국민의 눈을 흐리게 할까 우려스럽다.
어쨌든 박근혜 정권의 불법 정치자금 실마리는 잡혔다.
진실을 밝히고자 한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언론이 제 역할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