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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후, 언론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다(엄주웅)
등록 2015.04.2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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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세월호 1주기, '기레기'는 반성했나

세월호 이후, 언론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엄주웅(전 방통심의위원)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은 한 주일 동안  주요 신문과 방송들은 ‘세월호 1년’을 다루는 특집 보도를 내보냈다. 감당하기조차 힘들었던 대사건의 흐름을 돌이켜보고 희생자 가족을 비롯한 관련 피해자들의 근황, 사회 각계의 추모 분위기를 전달했다. 기자가 직접 여객선을 타보고 안전 점검 실태를 취재하는가 하면, 국가를 안전한 나라로 개조하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을 조목조목 점검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이 내린 결론은 “우리는 한 발도 내딛지 못하고”(한국일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중앙일보) “안전한 나라로 탈바꿈 못한 채”(조선일보)로, “참사는 현재진행형”(경향)이라는 것이다. 맞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응을 놓고 대립과 갈등을 겪는 이들조차도 대개 동의할 것이다.


반성한다던 언론의 진정성은 어디에

  그런데 이들 주요 언론에서 세월호와 관련된 ‘또다른 참사’에 관해 일언반구도 없다는 점이 놀랍다. 바로 ‘기레기’라는 오명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당시 보도에 대한 반성은 한국일보와 한겨레의 사설에서 짧게 언급한 것 밖에 없었다. 초장부터 ‘전원구조’라는 초대형 오보를 내고 ‘사상최대의 수색작전’이라는 받아쓰기식 허위보도를 거쳐,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구조 책임을 추궁하는 심층보도는 외면하고, 유병언 일가 추적에 선정적으로 몰두하며, 아무데나 카메라를 들이대며 피해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일 말이다. 

  물론 지면과 화면 밖에서는 반성이 없지 않았다. 불신의 충격에 트라우마를 겪은 기자들은  재난보도준칙을 다시 만들고 지침을 작성했다. 조금은 달라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후 이어진 다른 재난 보도에서 세월호 참사 때와 같은 호들갑과 몰지각은 별로 눈에 띠지 않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사실 주류 언론은 세월호 참사를 적어도 작년 11월 실종자 수색중단과 ‘세월호 특별법’ 국회통과 이후 거의 잊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법 시행령 입안 논의와 과정을 따져보기보다는 ‘세금도둑’이니 ‘예산낭비’니 하는 정치권의 일방적인 논란을 중계하는 데 충실했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시행령(안)을 폐기하라며 유가족들이 다시 거리로 나오자 정부가 때맞춰 내놓은 배·보상금 액수에 초점을 맞추고 천안함, 대구지하철 참사와 비교한 자료를 그대로 받아썼다. 마치 유가족들이 금액에 불만이 있어 싸우는 듯 왜곡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언론 보도행태 여전해

  유가족들의 요구가 배·보상에 있지 않음이 분명해진 이후에도 조선일보는 4월 17일 단원고 학생 2명의 유족이 배상금을 받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이르면 이달 말부터 평균 8억 2천만 원을 받는다고 또 보도했다. 15일자에는 ‘학생과 일반인 둘로 나뉜 희생자 가족들이 특별법과 배·보상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며 유가족 내 대립구도를 강조했다. 요구의 맥락과 배경을 설명하는 ‘왜?’는 빠뜨린 채 갈등을 부각해 가족협의회에 ‘흠집 내기’를 유도하는 듯했다. 이들 강경한 유가족들은 추모행사에 대통령 참석도 거부해 “대한민국과 등지겠다는 건가”(조선 17일 사설)라는 힐난을 받는다. 


△ 4월 17일자 조선일보 사설 갈무리

 

 여기서도 ‘그들이 왜 그랬을까’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나라와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거부한 유족들은 대한민국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과 등을 지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단다. 무척 단순한 논리도 놀랍지만, 꽤 오래전 씨랜드 참사로 아이를 잃고 실제 먼 나라로 떠나버린 어떤 어머니가 생각난다. 정말 누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등지는가 말이다.


  이처럼 본질보다는 대립과 갈등 구도를 형성하는 보도 태도는 급기야 세월호 추모 집회에서의 시위 보도로 이어진다. “시위꾼 집결장이 된 세월호 추모행사 때문에 도심이 밤늦게까지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동아)고 쓰고 “추모 집회에 대거 몰려든 좌파·이적단체들이 폭력시위를 이끌었다”(조선)며 색깔론이 다시 등장한다. 차벽에 의한 경찰의 원천 봉쇄가 타당한 것인지, 유족들을 고립시켜 연행하고 최루액을 쏘아댄 것은 과잉대응이 아닌지 따져보지 않는다. 경찰 수십여 명이 부상했으면 시위 참가자는 또 얼마나 다쳤을지 알아보지 않고 경찰의 서슬 푸른  엄중대처 방침을 받아 적는다. 시위의 와중에서 한 참가자가 태극기를 불태운 일은 아마도 이들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될 기세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또다시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상황으로 전개되기까지 언론은 무엇을 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세월호 언론참사’는 결코 ‘재난보도준칙’ 정도로 예방될 일이 아니다. 세월호 비극을 취재한 기자들이 서로 물었다. 다시 같은 사고가 터진다면 이번에는 ‘기레기’ 소리를 안 들을 수 있을까. “겪었던 사람들은 좀 다르게 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몇 년이 지나 사람이 바뀌고 그러면) 결국은 똑같은 식으로 보도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언론 구조고 환경”(4월 15일 SBS 오디오 취재파일)이란다.


  그래서 세월호 이후 언론은 별로 바뀐 것 없고 참사는 역시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