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부패가 발호할 때 민주주의는 침몰한다(장행훈)[언론포커스] 부패와 민주주의
부패가 발호할 때 민주주의는 침몰한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지금 우리 사회는 부패가 발호하고 있다. 고(故)성완종 회장이 돈을 주었다는 정치인들의 부패 리스트는 한국의 정치부패가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의 전 현직 비서실장 세 사람의 이름이 모두 리스트에 올라 있다. 현직 총리를 비롯해서 도 지사 시장 등 친박 정치 거물들이 망라돼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부끄러운 현주소다. 우리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리는 적신호다. 헌데 국정의 총책을 맡고 있는 대통령은 엉망이 된 나라를 놔둔 채 12일 간의 남미 4개국을 순방하고 있다. 침몰하는 정치의 세월호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 국제투명성 기구가 발표한 2014 부패지수
부패 지수는 국가의 민주주의의 건강상태와 반(反)비례한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e International)가 발표한 2014년도 부패 지수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민주주의 선진국은 대부분 부패지수가 낮은 20위 안에 들어있다. 프랑스가 26위로 처져 있어 눈에 띄는데 그것은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재직 시 프랑스 여성 제일 갑부 베탕쿠르로부터 선거자금 5만 유로를 현금으로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등 정가에 만연된 부패 분위기 탓이라 생각된다.
중국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지만 부패지수가 높다. 그래서 투명성 순위가 100위다. 러시아는 투명성이 중국보다 더 못하다. 136위다. 두 나라 모두 강대국이지만 민주주의 면에서는 후진국이라는 수치(數値)다. 북한은 최하위인 174위. 한국은 43위다.
‘이명박근혜 정권’ 7년간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 26계단 하락
파리에 있는 언론감시단체 <국경 없는 기자>가 발표하는 연례 언론자유 순위도 민주주의 수위를 재는 척도의 하나다. 한국의 언론자유는 노무현 정권 마지막 해인 2007년 31위이었던 것이 이명박 정권 말년인 2011년 42위로 떨어지더니 박근혜 정권 2년째인 2014년에는 57위로 추락했다. ‘이명박근혜 정권’ 7년 동안에 무려 26위나 떨어졌다. 한국의 언론자유가 그 사이 크게 위축됐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침몰해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적은 지역인데도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사무총장 야그란트는 2년 전부터 부패와의 투쟁이 그가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럽 47개국이 가입한 유럽평의회는 각국 대표로 구성된 지역기구로 인권과 언론자유 등 민주주의 증진에 필요한 정책을 연구 채택해서 회원국에 권고하고 비민주적인 정책에는 시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유럽이 다른 지역에 비해 인권과 언론자유에 민감하고 민주주의를 충실히 실천하고 있는 데는 유럽평의회의 역할이 작지 않다는 생각이다.
야그란트 사무총장의 말대로 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 같은 나라들은 청렴국가로 인식되고 있는데도, 국민들은 지금 자기 나라에서 부패가 늘고 있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시민의 거의 4분의3이 ‘공공 분야의 부패’를 각국의 중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부패의 증가로 시민들이 민주체제에 대한 위기의식과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평의회는 지금 그 대책에 고심하고 있다.
대통령 주변까지 만연한 부패…우리의 민주주의는 온전한가?
부패지수가 가장 낮은 유럽이 지금 싹트고 있는 부패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걱정한다면, 대통령 주변에까지 부패의 암이 이전된 우리의 민주주의는 과연 온전한가? 아직 기능하고 있기는 한가?
대의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해서 법률을 만들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할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다. 법률을 제정하는 국회의원 선거가 잘못되거나 국정을 총괄할 대통령 선거에 관권이 개입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는 무효다. 권력이 개입한 선거로 뽑힌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국민의 대표라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정보를 총괄하는 국정원이 대통령 선거에 대대적으로 개입한 것을 항소심이 선거개입이라고 판결했다. 앞으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 봐야겠지만 불법선거의 후유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완구 총리가 21일 마침내 사의를 표했다. 대통령이 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면 총리의 사표가 수리되고 또 한 차례 총리 후보를 찾는 홍역을 치르게 될지 모르겠다. 박근혜 대통령 2년 3개월의 짧은 세월에 한국 정치는 지난 몇 십 년에 겪지 못한 것을 경험했다. 근본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에 대한 무지와 현실을 무시한 고집과 불통이 원인이었지 않나 생각된다.
박대통령으로서도 지난 2년의 경험을 교훈 삼아 이번 기회를 새 출발, 새 도약의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새 출발은 꼭 새것을 찾으라는 것보다 지금까지의 고집이 실패했고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 과거의 과(過)는 더 이상 되풀이 하지 말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데 전념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제2의 유신’의 꿈은 버리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재벌이 아니라 서민 대중을 생각하는 정책을 추진해 보라는 것이다.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도 국민의 마음을 얻게 될 것만은 보장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