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그래도 MBC를 포기할 수 없다 (안성일)
등록 2015.03.2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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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MBC,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사회의 축소판

그래도 MBC를 포기할 수 없다



안성일(MBC 전 논설위원)


이진숙 씨 


3월 5일 이진숙 씨가 대전 MBC 사장에 취임했습니다. 대전지역의 10여 개 시민단체가 용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진숙 씨는 1986년 MBC 보도국 기자로 입사한 저의 후배입니다. 노조원이기도 했고 1990년 ‘PD수첩사건’으로 해고된 지 2년 7개월 만에 재입사하는 저를 환영하는 글을 노보에 쓰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글에서 이진숙 기자라고 부르지 않고 이진숙 씨라고 부릅니다. 2012년 3월 19일 MBC 기자회가 제명했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이 MBC 기자회의 회원이면서 기자회 제작거부의 대표성을 끊임없이 공격했고, 정치적 의도와 배후가 있다는 날조된 주장을 흘렸”으며, “김재철 사장의 부도덕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법인카드 유용 의혹이 불거지자 기자로서 최소한의 합리적 의심과 상식을 저버리고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김재철 지키기의 최선봉에 섰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때 이진숙 씨는 김재철 사장 아래서 홍보국장이었습니다. 


그 김재철 전 사장은 이진숙 씨가 대전 MBC 사장에 취임한 지 8일 후인 3월 13일 업무상 배임과 감사원법 위반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김재철 전 사장의 법인카드 유용은 2012년 MBC 노조가 170일이나 파업을 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검찰은 새해 하루 전날인 2013년 12월 31일 벌금형 약식기소로 슬그머니 넘어가려 했지만, 법원이 정식재판에 회부했습니다.


조능희 PD 


3월 16일 조능희 PD가 전국언론조조 MBC본부(MBC 노조)의 제11기 위원장에 취임했습니다. 투표한 조합원의 98.2%가 지지했습니다. 1987년 12월 9일에 출범한 MBC노조는 위원장을 경선으로 뽑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만큼 고난이 따르는 자리입니다. 사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결국은 이래선 안 되겠다고 받아들이는 마음 약한 사람이 위원장 단일후보가 되는 것이 전통이 되어버렸습니다. 해고된 뒤 스피커 장인이 된 박성제 전 위원장이 쓴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란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조능희 PD는 1987년에 시사교양 PD로 입사했습니다. 다큐스페셜과 ‘경찰청 사람들’, PD수첩을 만들었습니다. 2012년 170일 파업에 참가했습니다. 파업이 끝난 후 MBC 사람들이 ‘신천교육대’라고 부르던 ‘MBC 아카데미’에서 같은 교육생 신분으로 만난 조능희 PD는 웃는 얼굴이 착한 사람입니다. 노조위원장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견디지 못하고 위원장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MBC에서 사는 법 


2012년부터 3년 사이 이진숙 씨는 MBC 기획조정본부장, 워싱턴지사장, 보도본부장을 거쳐 대전 MBC 사장이 되었습니다. 조능희 PD는 신천교육대와 법원과 한직을 오가다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언론이 국정원 청탁으로 기사 쓰고 선물 챙겼다는 경향신문의 기사를 리트윗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기 때문입니다. 


MBC 사옥에는 ‘飮水思源(음수사원)’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물을 마실 때는 근원을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정수장학회에 내린 휘호라고도 합니다. 좋은 글귀입니다. 그러나 물의 근원이 어디인지에 대해 MBC 구성원 사이에 생각이 갈라집니다. 그래서 사는 방법도 달라집니다. 언론기관으로서의 방송이 가지는 권력을 시청자로부터 위임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물의 근원을 국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방송의 소유구조와 정치권력과의 관계에만 밝은 사람들은 근원을 당대의 권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 언론인으로서의 자기완성을 위해 MBC에 입사했는지, 세속적인 출세의 디딤돌을 만들기 위해 입사했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진숙과 조능희가 그랬던 것처럼, 특히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많은 MBC 구성원들의 가는 길이 갈라졌습니다. 


조능희 PD와 같은 길을 택한 사람들은, 노조의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파업부터 지난해 말까지 해고 8명, 정직 56명, 명령휴직 3명, 대기발령 53명, 교육발령 16명, 부당전보 57명, 모두 193명이 징계를 받았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회사는 부당전보 당한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렸다고 권성민 PD를 해고했습니다. 

이진숙 씨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아직 별다른 피해 없이 살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MBC는 사회의 축소판일 뿐 


▲ 2012년 2월 6일,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MBC노조의 모습 (출처: 미디어스)


2012년 파업과 관련한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1심에서는 모두 노동조합이 승리했습니다. 파업은 정당하고, 해고와 징계는 무효라는 판결이 났고, 회사의 손해배상청구는 기각됐습니다. 그러나 MBC의 상황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파업에 참여했던 기자와 PD, 아나운서들이 아직도 자신의 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전혀 엉뚱한 부서로 가 있거나, 분명한 일을 맡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무지막지한 일이 화려한 상암동 MBC 신사옥 안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1987년 노조 창립 시절보다 못하다는 말이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입니다. 노조가 원고인 해고 및 정직징계 소송의 선고공판은 오는 4월 1일, 파업 관련 업무방해에 대한 선고공판은 4월 2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립니다.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멀고 어려운 길을 갈 때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어야 가던 길을 갈 힘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