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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는 없고 조롱만 남은 개그 프로그램 (박진만)
등록 2015.03.1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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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으로] | tvN <코미디빅리그>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를 보고 웃으라고?

풍자는 없고 조롱만 남은 개그 프로그램 



박진만(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회원) 


다른 장르의 프로그램을 비평하는 잣대를 코미디 프로그램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웃음을 주는 것이 최고의 목적인 개그를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로 지적하는 것은 자칫 “개그를 다큐로 본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코미디에 무한한 면죄부를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를 확대, 재생산하고 그러한 가치를 공고히 한다’는 알튀세의 미디어론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방송미디어가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비중은 막대하며, 코미디 프로그램 또한 수많은 사람이 즐겨보고 영향을 받는 방송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면성을 가진 코미디 프로그램을 비평하는데 어떤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이런 수월찮음을 빙자하여, ‘정치적으로 올바르지(politically correct)’ 못한 많은 발언과 장면들이 단지 코미디라는 이유만으로 비평의 칼날을 피해 ‘용인’된 부분도 많았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기가 까다로움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삐딱해져 있는 대한민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바로 서 건강한 웃음과 위안을 줄 수 있도록 그들이 ‘웃자고 한 말에’ 좀 ‘정색하고’ 덤벼들어 보았다. 


코미디가 약자에 대한 조롱과 비하일 때, 그것은 폭력성 띄어 

약자에 대한 조롱이나 비하가 코미디의 소재로 사용되는 순간, 그것은 더는 코미디일 수 없고 가혹한 폭력의 도구로 변질된다. 지금도 코미디로 둔갑한 폭력은 수없이 자행되고 있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만연함을 지적하려고 한다. 여성담론이 비교적 활발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코미디 프로그램은 여전히 여성을 대상화하는 플롯을 만들어내고 있고, 여성 코미디언의 외모에 대한 소재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다. 코미디 소재로서의 여성은 늘 타자화되고 대상화되고 희화화되었으며, 그 방식은 늘 선정적이고 자극적이었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대한민국 현대사회에서 공유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비추고 이를 공고히 하고 있는지, tvN <코미디 빅리그>의 ‘10년째 연애 중’, ‘오춘기’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폭력적인 외모비교 ‘10년째 연애 중’ 



tvN <코미디 빅리그>의 ‘10년째 연애 중’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는 것처럼 10년째 연애 중인 커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10년 전 여자친구(김진아 분)와 코너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변해도 너무 변해버린” 10년 후 여자친구(이국주 분)가 교차되어 나오는 것이 기본 구성이다. 이 코너는 재미를 위해 두 여성의 외모와 성격 차이를 부각한다. 그리고 ‘10년 후 여자친구’가 먹는 것에 열광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강조함으로써 관객의 웃음을 유도한다. 기본적인 이야기 구성에서부터 여성의 외모 비하를 전제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야기가 단순히 외모의 차이를 부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모를 기준으로 ‘우등’과 ‘열등’이라는 이항대립 구도가 설정되고, 코너 안에서 ‘외모 열등’의 항에 놓인 여성은 성격, 말투, 식습관 또한 한꺼번에 ‘열등한’ 항에 속하게 된다. 외모가 ‘열등한’ 인물은 지나치게 과장된 몸짓을 보이고, 거칠고 투박한 언어를 사용하며, 비정상적인 식습관을 가지는 등 외모와는 관련 없는 요소마저 모두 우스꽝스럽게 표현이 된다. 한마디로, 그 여성이 가진 모든 것이 웃음의 소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극 중 ‘남자친구’는 음식을 좋아하는 ‘10년 후 여자친구’에게 “쿵푸 팬더냐?”, “돼지냐?”라고 말하는 등 외모비하성 언어폭력을 가한다. (2015년 1월 11일) ‘10년 후 여자 친구’가 남자친구에게 업어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을 설정하고 ‘남자친구’는 과장된 말투로 “무서워”라고 반응한다. 이 과정에서 이국주의 업어달라는 말은 누가 봐도 어이없는 비정상적인 요구로 규정되고, 이를 통해 웃음이 유발된다(2015년 1월 25일). 또, ‘10년 전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10년 후 여자친구’를 노골적인 비교 대상으로 삼아 “그럼 내가 이렇게 뚱뚱보 돼지가 돼도 예뻐?”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2015년 2월 15일). 극 중에서 출연자 중 어느 하나도 이러한 조롱과 희화화에 대하여 대응하거나 반론을 펼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도는 극이 종료될 때까지 유지된다. 따라서 폭력적으로 외모를 비교하는 태도는 ‘정당한’ 것임을 ‘피해자’마저 수용하는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오춘기’, 성희롱적 관음증은 결코 웃음거리가 아니다 



‘10년째 연애중’이 여성의 외모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 코너라면, ‘오춘기’는 여성의 몸이 노골적으로 대상화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오춘기’는 <코미디 빅리그> 홈페이지에 게재된 코너 설명에 표현 그대로 “남자의 아직 끝나지 않은 사춘기”를 소재로 한 코너다. 친구의 집에 놀러 온 남학생(황제성 분)이 친구의 누나(장도연 분)를 성적인 시선으로 접근하면서 벌어지는 상황극이다. 모든 장면이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의 신체 부위를 노골적으로 관찰하거나,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것, 혹은 여성의 가슴 크기를 비교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령 2015년 2월 22일 방송분에서는 짧은 바지를 입고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바늘을 찾고 있는 누나(장도연 분)의 엉덩이를 남동생 친구(황제성 분)가 노골적으로 가까이 다가가 엉덩이를 관찰하는 장면이 방송된다. 누나(장도연 분)의 친구(이은지 분)가 달라붙는 상의를 입고 등장하자 또 다른 누나(이세영 분)의 가슴을 남동생 친구(황제성 분)가 노골적으로 응시하는가 하면, 이세영과 장도연의 가슴 크기를 비교하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2015년 2월 15일 방송에서는 병원에 입원한 친구 누나(장도연 분)의 병문안을 온 남동생 친구(황재성 분)가 간호사(이은지 분)가 호흡법을 가르쳐 주는 모습을 보고 이때 부각되는 가슴에 놀라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고 간호사가 친구 누나(장도연 분)를 청진기로 진찰하기 위해 앞을 보라고 하는데, 왜 등으로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자 “장도연 씨는 (앞, 뒤가 같아서) 그럴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하며 노골적으로 가슴 크기가 작다고 놀리며 이를 웃음거리로 삼는다. 게다가 방송 후반부에는 장도연이 속옷을 탈의하고 엑스레이 촬영을 하러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모습을 구경하며 좋아하는 황제성의 모습까지 등장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실생활에서 벌어졌을 경우 여성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만한 상황들이다. ‘오춘기’에는 이런 성추행, 성희롱적인 상황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이 그저 ‘남동생 친구’의 행동을 여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포장하고 있다. 남성 출연자가 여성의 신체 부위를 노골적으로 보거나 만질 때마다 아련한 느낌의 배경음악이 나온다. 만약 제작진이 이 코너의 웃음코드를 남성의 비정상적이고 황당한 행동이라고 판단했다면, 남성이 여성의 몸을 노골적으로 바라볼 때 나오는 음악은 더 장난스럽거나 재미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때 나오는 음악은 다소 끈적끈적하여 ‘남동생 친구’의 행동이 성추행이 아니라 단순히 이성에 대한 호기심의 표현일 뿐이라고 변명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성적 호기심과 성희롱‧성추행이 구분되지 않고 오히려 문제가 있는 상황을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시도만이 돋보여서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코미디의 진정한 가치는 억압에 의해 누적된 대중들의 저항의식 발현 

전통적 코미디 이론에 따르면, 코미디가 가진 진정한 가치는 사회, 도덕, 종교적인 속박과 구속에서 벗어나 해방과 자유를 만끽하기 위한 풍자와 해학, 익살, 조소에 있다. 억압으로 누적된 대중들의 저항의식이 발현된 것이 초기 코미디의 형태였던 것이다. 조롱과 희화화가 웃음을 유발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그 대상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민중을 억압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방송계에서 이러한 의미의 ‘진정한 코미디’는 사라지고 있다. 자기검열의 바람이 희극계에도 영락없이 불어 닥친 탓일까, 현재 방영되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경향을 살펴보면 골계와 해학의 미덕은 상실되었고 자극적인 슬랩스틱이나 가장 공격하기 쉬운 약자를 소재로 삼는 콘텐츠만이 난무하고 있다. 우리 코미디는 그동안 발언권이 없고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대상을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조폭이나 좀도둑, 재소자 등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오랫동안 우스꽝스러운 소재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그 소재가 여성으로 옮겨간 것처럼 보인다. 조폭과 여성은 같은 범주로 묶일 수 없지만, ‘놀리기 쉽고’ 발언권이 약하다는 측면에서는 같다. 


오늘날 전파를 타고 있는 대한민국 코미디는 말 그대로 조롱하기 쉬운 대상들만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 대상은 사회적 약자이거나, 권력자라고 하더라도 이미 여론재판으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물어뜯긴 자에 한정되어 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현상은 소재와 구성의 편협함으로 귀결되었다. 우리는 웃음을 편식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편식의 원인이 억압된 사회 속에서 자기 검열을 생존전략으로 삼은 문화계의 태도에 있는지, 혹은 만만한 대상만을 소재로 고르는 코미디 제작자들의 태만에 있는지는 더 따져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