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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사피습 사건과 국보법에 마비된 언론 (고승우)
등록 2015.03.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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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언론 흥분하면 제4부의 위상 흔들려 

미 대사피습 사건과 국보법에 마비된 언론 


고승우(민언련 이사장)



언론이 흥분하면 제4부의 위상이 흔들린다. 아무리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사건, 사고라 해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냉정하게 차분한 자세로 보도해야 한다. 언론의 사회적 책무 핵심은 정확한 사실관계의 전달과 논평이다.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려면 절대 흥분해서는 안 된다. 보도 윤리에 맞게 보도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채널A 뉴스 3월 10일 보도 갈무리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는 어떠했나? 사건 발생 후 수일 동안 대부분의 언론은 한미 정부 발표와 수사기관 수사 속보 등을 쏟아냈다. 사건의 성격에 대해 종북세력 또는 종북주의자 개인의 소행이냐, 극단적인 민족주의자의 소행이냐는 식의 의혹 제기와 함께 가해자의 명예훼손 가능성이 있는 주장까지 마구 쏟아져 나왔다. 


KBS1 뉴스광장 3월 10일 보도 갈무리


그러면 이른바 진보, 보수 언론들의 관련 보도는 얼마나 차이가 있었을까? 전체 언론 사이트에 대한 검색을 해보면 거의 엇비슷한 기사들로 채워져 있다. 이는 수년 전부터 북한 관련 보도에 있어 진보와 보수언론이 대동소이한 것을 보면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언론 전체를 자가 검열하게 만드는 국가보안법


혹시 이 사건이 너무 충격적이라서 비슷한 기사들만 나왔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다른 요인 탓이다. 그것은 보도 기사의 행간에 숨어서 언론 전체에 가공할 영향을 미치고 있는 초강력 요인이다.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우리 사회는 국보법에 잘 길들여져 있어 언론 보도도 거기에 저촉되는 기사를 생산하지 않는다. 패가망신하는 꼴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승만이 도입한 국보법은 언론인 대부분이 행하는 자기 검열 형식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국보법은 북한을 표적으로 한 법으로 그 순기능적 측면이 강조되지만, 역기능도 심각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북한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규제한다는 것이다. 이 법은 북과 관련해 사상의 자유, 상상의 자유를 억제하면서 북한이 포함된 한반도 미래학의 전개까지 가로막고 있다. 


언론이 언론다울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자유로운 사고의 틀 속에서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추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언론은 국제 사회에서 낯을 들기 어려운 수치를 면키 어렵다. 


정부·여당의 종북몰이와 이를 중계방송하는 대다수 언론


다시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의 보도를 살피면, 이 사건은 국내외에 큰 충격을 주었고 그 여진이 강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전망이다. 이 사건을 보는 열린 상상력에 의한 시각은 다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종북 세력의 한미동맹 파괴적 테러범죄’라는 시각에서부터 북한이 안중근 의사를 거론한 것과 같은 시각 등일 수 있다. 북한의 그런 시각은 국보법에 저촉되니 당연히 검토 대상에서 빼놓고 살펴도, 각도가 차이가 나는 다양한 보도들이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정부, 여당, 수사기관 등은 종북, 반미, 테러 범죄로 단정 짓는 공식발표를 양산하고 있고 언론 대부분은 이를 중계방송하듯 전달하고 있다. 사건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결론은 벌써 나온 꼴이다. 수사기관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가해자에게 국보법을 적용하려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사건 발생과 직결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는 수사 대상에서 제외해 친박 대표를 배려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외국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미국 대사가 입원 중인 병원으로 달려가 위문하는 등 한국 정부는 최대한 미국에 대해 자세를 낮췄고 언론은 이를 액면 그대로 보도했다. 자국 대사가 피습당한 미국은 차라리 차분하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다. 미국 정부는 이 사건과 관련한 공식 발표에서 가급적 중립적인 단어만을 사용하고 침소봉대 등을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건강한 소통 문화 파괴하는 악법, 방치해서는 안돼


외국 대사가 피습당하는 식의 충격적인 사건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건 발생의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 심층적으로 대처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정치나 언론이 할 일이다. 그러나 그런 자기 성찰적 보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번 미 대사 피습 사건은 정치권에서 종북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언론은 ‘기계적 균형보도’라는 틀 속에서 중계만 하고 있다. 매카시즘 폐해에 눈을 감은 언론의 모습이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등을 제기하는 것은 북한 동조, 국보법 위반으로 몰아가는 냉전 논리만이 춤을 춘다. 이런 갈등을 격화시키는, 소모적 현상의 뿌리는 국보법이다. 이 악법은 우리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건강한 소통 문화를 파괴하고 있다. 언론, 정부는 이를 더는 방치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