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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사원도 YTN을 보지 않는다”니 무슨 말인가? (김수정)
등록 2015.03.0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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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모처럼 나온 YTN 사원의 자성의 목소리

“YTN 사원도 YTN을 보지 않는다”니 무슨 말인가?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언론사 안에서 대자보를 보는 경우가 있다. 뜻을 같이하는 몇 명의 사원들이 공동으로 이름을 내걸고 사측에게 가끔은 선배나 후배들에게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의견을 적어서 복도에 내건다. 요즘에는 웹자보 형태로 전체 사원에게 이메일을 발송하기도 한다. 


신문이나 방송이라고 해서 독자나 시청자들은 아주 일관된 내용을 매일 보는 것 같겠지만, 알고 보면,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기 전에 무수한 의견이 토론과 경쟁을 거쳐야 한다. 이를 게이트키핑이라고 하고, 이러한 과정은 아주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고 선택되기 때문에 언론사와 같은 조직 안에서는 한쪽 영향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다. 




지난 5일 YTN 사원 100여 명이 2시간 30분여 분간 자신들의 언론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전문이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기자협회보>, <미디어스> 등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자사보도에 대해 쓴소리들이 많이 나왔던 것 같다. 


민감한 것은 보도조차 하지 않는 비겁함이 보인다는 YTN 


YTN 젊은 사원들의 모임이 주최한 <소통 한마당> 행사에서 YTN 정치부 A 기자는 “드러내놓고 편향된 보도를 한다기보다 민감한 것을 피해가고 싶어 하는 비겁함이 보인다”고 했다. 10년 차 B 기자는 정부가 발표한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시민들의 이야기는 기사로 쓰지 말라는 지시를 들었고, 무엇보다 “거대한 권력과 맞물리는 순간 시민들이 궁금해 하는 뉴스를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말했다. 


YTN은 2014년 국내 언론학자들이 뽑은 가장 공정한 미디어, 가장 유용한 미디어, 가장 신뢰받는 미디어에서 각각 1위, 2위, 3위를 기록했다. 다수 학자의 의견이니 그렇다 치자. 딱히 YTN이 구설수에 오를 일이 많지 않았던 탓인지도 모른다. JTBC가 각각 2위, 1위, 1위를 한 결과를 보면 여론과 인기의 영향을 무시하기 어려웠던 것 같기는 하다. 이렇게 말하면 더 쓰라린 해석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상위 순위지만 종편 채널과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뒤로 쳐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올 법하다.


언론사 내부에서 시끄럽고 민감한 이슈에 대해 몸 사리는 보도를 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점에 대해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언론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응원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슈를 선점하지 못하고 일관성 없이 내려지는 취재보도 지시에 대해 볼멘소리를 냈다는 것만으로도 아직 그들에게 기대할 것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장이 누구냐에 따라 보도 내용이 달라진다면?


물론 사장 선임을 앞두고 사원 모임을 가진 것이기도 해서 전략적인 해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부에서 기자와 사원들이 자신들의 언론상품을 냉정하게 평가하려 하고, 이를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갖추고 있다는 모습 자체는 약간의 기대를 품게 한다. 


YTN은 2008년 대통령 후보 캠프 출신의 사장 임명을 반대하며 투쟁을 벌였다. 당시 6명의 기자가 해직됐다. 그중 절반만 해고 무효로 돌아왔다. 아직 완전히 아물지 못한 상처처럼 기억에 남는다. 조준희(전 IBK 기업은행장) 사장 내정자에게 YTN의 현실은 경영지표와 시청률 집계표의 숫자로만 보여서는 안될 이유이기도 하다. 


‘언론사 사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보도내용이 달라진다면 그게 어디 믿을만한 언론사겠느냐?’ 하겠지만 그 안에서 취재를 하고 보도물을 만드는 사원들이 체감하고 느끼는 정도는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훨씬 크고 강력하다. 자기검열의 방식은 기자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기도 전에 체득되는 경우도 많아서 더 그렇다. 사장이 바뀌고 나서 취재부 절반을 신입과 새로 채용한 경력직 기자로 물갈이하는 믿지 못할 경우도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언론사 내부의 건강한 자율성을 기대한다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포기하려는 사람은 확실히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자유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그것들이 실제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위험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다. 더구나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올바른 정치가 언론과 출판의 논쟁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아니라고? 우매한 소리를 한다고 묵살하고 싶겠지만 어디 그런가? 이미 한구석에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스멀스멀 밀려오는 ‘그런가’라는 의심의 무기력함을 없다고는 못하겠다. 


“민주주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투표에 참여하는가가 아니라, 투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주어져 있는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어떤 책에서 접한적 있다. 민주주의는 자율성을 가진 언론 노동자에게서 시작된다. 외부의 권력을 눈치 보지 않고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만큼이나 내부에서 건강한 자율성을 지켜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사장의 역할을 생각해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