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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규제완화가 능사라고? (양현승)[신문 토달기] 의정부 화재사건 관련 6개 신문 모니터
이래도 규제완화가 능사라고?
양현승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 회원)
1월 10일 오전 경기 의정부 도심에 있는 10층짜리 대봉그린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인접한 건물 여러 채가 피해를 보고, 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아파트는 원룸형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이명박 정부시절 만들어졌다. 당시 소규모 서민주택을 다량으로 공급하기 위해 건물 간 거리와 주차장 설치기준, 각종 안전시설 설치 의무 등을 대폭 완화했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1월 12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부동산시장을 옭아매던 과도한 규제들을 바로 잡은 결과, 지난해 주택거래량이 8년 만에 최대치에 달하는 등 부동산시장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며 “앞으로 정부는 규제혁파, 저렴한 토지공급, 과감한 금융·세제 지원 등을 통해 민간 장기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늘려 주거비 인하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를 통해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발언에서 규제 완화가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관련한 언론 보도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신문모니터위원회는 의정부 화재 사건의 근본 원인과 대응책에 대한 주요 일간지 보도를 모니터 했다.
규제 완화를 지적한 한겨레·경향·한국
한겨레 1월 12일 1면 보도 갈무리
한겨레신문은 총 11건의 보도 중 9건의 기사에서 정부의 규제 완화를 이번 화재사고의 원인으로 꼬집었다. <도시형 생활주택 참사 규제완화가 ‘불씨’였다>(2015.01.12, 1면, 이재욱 기자)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2009년 20~30대 사회 초년생과 신혼부부, 서민 등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공급하겠다며 ‘도시형 생활주택’을 도입하면서, 저가의 주택 공급을 명목으로 각종 안전규제를 완화해준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며 지난 정부를 비판했다. 또 “정부가 도시형 생활주택을 확대하면서 싼 값에 공급을 하려다 보니 주차 면적과 건물간 거리 등 각종 규제를 풀어줘 사고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는 게 일선 공무원들의 지적이다”며 규제 완화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임을 강조했다.
한국일보와 경향신문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일보는 <허술한 법·규제가 화재 피해 키웠다>(2015.01.12)는 사설에서 “현재까지의 정황에 비추어 이번 사고 역시 인재(人災) 성격이 짙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분야에서 섣부른 규제 완화가 얼마나 위험한지도 거듭 확인됐다”고 했다. 또 “안전 고려를 결여한 주택 관련 규제를 총체적으로 점검해 고삐를 죄어야 한다”며 안전시설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일보도 사설 <의정부 아파트 화재 피해 키운 정부의 규제 완화>(2015.01.12)에서 “부동산 정책 성공을 위해 무분별하게 ‘안전 빗장’을 연 것이 결국 화를 키운 셈이다”며 “당국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도시형 생활주택의 안전을 점검하고 안전 시설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규제 완화에 눈 감은 조선·중앙
조선일보 1월 14일 1면 보도 갈무리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이번 사건의 원인이 이명박 정부의 규제 완화 때문이라고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다. 조선은 총 21건의 기사를 내보냈는데, 이중 8건의 기사에서 불법주차로 인한 소방로 문제를 부각하는 ‘불 키우는 불법주차’라는 기획기사를 5차례나 연재했다. 이 기사들은 1면을 두 번이나 장식했다. <‘불 키우는 불법주차<1>’ 전국 1600곳, 불나도 소방車 못들어가>(2015.01.14, 1면, 이송원·엄보운 기자)에서는 “발생 후 5분 ‘진화 골든타임’ 주차된 차에 막혀 대부분 허비”라는 소제목을 달고 불법 주차로 인해 화재가 커져 더 큰 피해를 입은 사례를 소개했다. 나머지 4건의 기사에서도 사례를 소개할 뿐 사고예방이나 규제 완화를 탓하는 지적은 없었다. 또, <소방차 진입 막는 불법 駐車 줄이려면 주차장 의무화해야>(2015.01.13, 사설)에서도 “조그만 불이 대형 참사로 이어진 건 불법 주차된 차들로 진화를 조기에 할 수 없었던 탓이 컸다”며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진입로를 막고 있는 불법 주차를 줄이려면 획기적인 주차장 확보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화재가 났을 때의 대처를 마치 화재를 예방하는 방법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의정부 화재 참사 … 소 잃었어도 외양간은 고치자>(2015.01.12)는 사설에서 “안전은 규제만으로 확보할 수 없다. 지나친 규제는 시장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규제를 줄이는 건 바람직하다”며 “줄어든 규제만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우리 사회 모두의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사건의 원인을 정부의 규제 완화가 아니라 마치 국민 ‘인식’ 탓으로 돌리려 했다.
사고의 본질보다 중요한 개인적인 사연과 미담?
조선일보는 피해자들의 개인적인 사연이나 미담기사를 다섯 차례나 다뤘다. 다른 언론사보다 두세 배 많은 양이다. 일례로 <의정부 화재 동아줄 義人 “3000만원 받을 수 없어요”>(2015.01.16, 1면, 정경화 기자)에서 화재 현장에서 일반인이 10여명의 목숨을 구한 것을 보도했는데, 같은 사건을 총 세 차례나 더 보도했다. 또 12일자 12면에서는 이번 사건에 지면 전체를 할애했는데, 이중 절반이 피해자들 개인 사연과 미담이었다. 정작 보도해야 할 규제 완화 비판 기사는 <도시형생활주택 주차·안전 기준 강화해야>(2015.01.15, 10면, 최현일 열린사이버대학교 교수)의 외부칼럼에서 단 한 차례 언급했을 뿐이다. 즉 다른 언론사에서 규제 완화를 비판하고 사고 예방을 위한 보도에 힘쓸 때, 조선은 불법주차해결 같은 사후 조치와 미담에 집중하며 정부책임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물타기를 하고 있었다.
중앙 총 10건의 보도 중 2건을 개인 사연과 미담에 할애했다. 사설 <의정부 화재 현장 의인들, 시민정신을 보여줬다>(2015.01.16)에서 “의인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안전하고 건강해진다”며 “의인들의 선행이 확산돼 남을 먼저 배려하는 시민의식이 뿌리 내리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규제 완화로 발생한 인재를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해결하겠다는 말이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잘못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물타기를 했다.
규제 강화가 언제나 악(惡)이고, 완화가 언제나 선(善)은 아니다
지난 12일 의정부 화재 사건에 대한 국회 안전행정위 긴급 현안보고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새누리당 의원들과 국민안전처 장관은 이명박 정부 때 건축 안전규제를 완화한 것이 참사의 근본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규제 완화를 역설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각이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규제를 풀어주면서 발생한 대형 참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발생한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나 세월호 참사도 이명박 정부 당시 관련 규제를 완화한 것이 사고의 원인으로 꼽힌다.
규제 완화는 불합리한 규제를 조정해 합리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무차별적인 규제 완화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지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절실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