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부패방지법 대상 언론인 포함이 과잉입법인가?(이병남)<시시비비> ‘김영란법’ 좌초하지 않으려면 언론 스스로 입장 밝혀야
부패방지법 대상 언론인 포함이 과잉입법인가?
이병남(민언련 정책위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김영란법’이 2월 임시국회에서 제대로 처리될지 걱정스럽다.
이 법안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 공직자가 한 사람으로부터 연 1회 100만 원, 연간 300만 원을 넘는 금품·향응을 받으면 명목이나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형사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다. 부정한 청탁은 물론이고 편의 제공, 취업, 이권 등도 모두 해당하고, 선출직·임명직 공무원이나 유관기관 임직원 외에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사 직원도 포함된다. 이 법이 시행되면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유로 죄의식 없이 주고받았던 온갖 부정한 일이 모두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분명한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한다.
새누리당의 ‘언론자유 침해’ 문제 제기에 조중동 이구동성으로 “옳소!”
하지만 부패방지법안이 뜬금없는 ‘언론자유 침해’를 이유로 논란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민 법제사법위원장이 밝힌 ‘언론의 취재가 자유롭지 못할 수 있어 언론인은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에 언론사들도 동조하고 있다.
<동아일보>1월 10일 31면 보도 갈무리
동아일보는 사설(1월 10일)에서 “KBS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민간기업인 언론사를 규제 대상에 넣은 것은 공직자 부패 방지라는 법의 방향과 거리가 멀다”며 민간 기업은 대상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사(1월 22일)에서는 “김영란법 적용대상서 언론인 빼야, 2월 국회서 통과”할 수 있다는 이상민 의원의 입장을 강조했다.
중앙일보도 사설(1월 10일)에서 ‘공직자 부정부패를 뿌리 뽑을 김영란법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적용 대상에 공직자 외에 국·공·사립학교와 유치원 종사자, 신문·방송·잡지·인터넷 등 언론기관 종사자를 포함하고 있어 일부에서 과잉입법이라고 지적’한다며 ‘이런 부분은 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다듬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사설(1월 10일)에서 “적용대상을 민간 언론사로까지 확대”했고, “이대로 가면 국민의 거의 절반이 잠재적 수사 대상이 되는 것”으로 “국회는 처벌 대상자를 넓힌 것을 재검토하되 법안은 반드시 이번에 통과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언론은 제외하고 통과시킬 것을 주문하고 있다.
김영란 법 적용대상 언론인 포함에 대해서는 진보신문도 입장 같아
김영란법 적용대상으로 언론인이 포함된 것에 대한 입장은 보수신문과 진보신문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다.
경향신문은 “김영란법 처리는 여·야간 이견이 있는 것”으로 보도하며 법안의 재논의 가능성을 시사한 이원구 원내대표의 ‘언론취재 마음대로 못할 것’, ‘언론인은 대상에서 뺏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도했다.
한겨레는 사설(1월 10일)에서 “‘김영란법’은 가장 강력한 반부패법으로 한국 사회 특유의 병폐에 대한 맞춤처방”으로 일갈했다. 그러나 말미에서 “형사처벌의 대상이 지나치게 넓어지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올 수 있어 정교하게 다듬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한국기자협회도 같은 견해를 밝혔다. 박종률 기자협회장은 “법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언론사별로 자정역량이 있으며 언론의 자유가 훼손될 수도 있다”고 밝힌 것이다.
언론노조, “진정한 언론자유 침해 요소는 정치와 자본권력의 간섭”
이러한 가운데 언론노조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1월 20일)에 출연한 전국언론노조 강성남 위원장은 “김영란법이 언론자유를 위축시키기보다는 언론의 공공성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예상”한다면서 “언론 자유의 심각한 침해 요소는 오히려 정치권력, 자본권력에 의한 간섭이 더 문제”라고 밝혔다. 또한 자사의 윤리강령으로 부정부패, 불법로비를 끊어내기에는 이미 자체의 의지와 능력을 상실한 상태나 다름없다는 강 위원장의 의견은 지금 한국의 언론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국민들 역시 현재 한국의 언론인들이 자사의 윤리강령을 엄격히 준수하며 자정능력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신뢰하지는 않는다. 언론이 너나 할 것 없이 법안 수정을 주장하는 정치인의 입장을 보도하는 것을 보면서 언론의 ‘힘’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제4부’라고 불리는 언론권력 앞에서 정계는 무엇을 택할 것인가? 지금은 정치인이 언론인 눈치를 살피는 꼴이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언론 현실도 안타깝지만, 언론권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치현실도 안타깝다. 이대로 가다가는 2월 국회에서도 김영란법을 통과시키지 못할까 우려된다. 우려가 사실이 된다면 언론이 주범으로 지목될 수도 있다.
보수언론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진보언론의 입장이 애매하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최우선적 가치인 언론의 자유가 엄청나게 침해될 것’이라는 의견에 정말 동의하는가? 한국 사회의 발전과 언론의 역할을 숙고하면서 부정부패방지법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