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국민의 방송은 ‘정권의 방송’이 아니다 (최영묵)<언론포커스> 새누리당이 발의한 공운법 개정안의 문제점
국민의 방송은 ‘정권의 방송’이 아니다
최영묵(성공회대 교수)
지난 11월 13일 이현재 의원 등 새누리당 국회의원 155명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공운법 개정안)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했다. 개정안 제출 이유는 공공기관 운영을 혁신하고 재정건전성이 취약한 공공기관 퇴출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다. 현재 공공기관 부채는 523.2조 원으로 국가채무 482.6조 원을 웃돌고 있다고 한다.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공공기관 개혁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공운법 개정 명분과 법 개정안의 내용이 따로 놀고 있다는 점이다. 결정적으로 지난 2007년 공운법을 제정할 때 제외되었던 KBS와 EBS가 공공기관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다. 정부 입맛에 따라 공공기관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공영방송 장악법안이라는 비판이 비등하는 이유다.
언론노조 공운법 개악저지 기자회견. 이현재 의원 사무실앞(2014.12.02)
KBS와 EBS는 공공기관인 듯 공공기관 아닌 공공기관 같은 곳?
새누리당 155인의 국회의원은 공운법 개정을 통해 공공기관을 개혁하겠다고 한다. 개혁을 하려면 우선 ‘개혁대상’이 명확해야 한다. 현행 공운법을 보면 제4조 1항에서 공공기관의 범위를 ‘다른 법률에 따라 직접 설립되고 정부가 출연한 기관’ 등 여섯 범주로 명시하고 있다. 동시에 2항에서는 KBS와 EBS를 비롯하여 세 종류의 기관에 대해서는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공운법 개정안에서는 공공기관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장관은 국가·지방자치단체가 아닌 법인·단체 또는 기관 중에서 정부가 직접 또는 다른 기관과 함께 사실상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는 기관을 제8조에 따른 공공기관혁신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공공기관으로 지정하여야 한다.”(제4조1항). 현행법에서 여섯 범주로 명시하고 있는 공공기관의 의미가 ‘정부가 사실상 지배력을 확보하기 있는 기관’이라는 모호한 말로 둔갑했다. 공영방송 등 공공기관 지정불가 기관 조항(4조2항)은 삭제했다.
공공기관 지정 권한을 기획재정부장관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한 셈이다. 대통령이 구성하는 민간기구 공공기관혁신위원회의 ‘요식절차’는 남겨두었다. 구체적이던 공공기관 개념은 증발했고 행정부의 재량권만 한없이 확대했다. 한마디로 자가당착이다. 개정사유에서 현재 모든 공공기관의 채무를 합하면 523.2조라고 했다. 이미 현행법에 명확한 공공기관 개념이 있고 이를 근거로 총부채를 산정한 것이다. 이 공공기관들의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 법을 개정한다면서 정작 개정안의 공공기관 개념은 모호하다.
공운법에 적용될지 말지는 ‘KBS와 EBS 너희 하기 나름’이라는 메시지
이렇듯 새누리당 공운법개정안을 보면 어디가 공공기관인지 알 수 없고, 공공기관 지정 주체와 절차도 애매하다. 기본 법률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이 개정안이 발효될 경우, ‘공’자가 들어가는 많은 기관은 고강도 개혁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로비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KBS와 EBS의 경우도 ‘너희들 하는 것 봐서’ 공공기관인지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일반적 의미에서 KBS와 EBS는 당연히 공적 성격을 갖는 기관이다. 공운법에서 말하는 공공기관은 기획재정부장관이 인사와 재정을 직접 통제할 수 있고, 그 필요에 따라 통폐합이나 민영화할 수도 있는 기관을 의미한다. 공영방송을 이러한 공공기관에 포함시키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KBS를 비롯한 한국 공영방송은 1987년 이후 ‘관제방송’에서 벗어나 국민의 방송으로 자리매김해 왔기 때문이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은 헌법 제21조와 방송법 제1조와 제4조에서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또한 방송법 46조에서는 KBS의 독립성고 공공성 보장을 위해 최고의결기관으로 이사회를 두도록 하고 있다. 이사는 국회·방송통신위원회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KBS 이사회는 사장추천권과 예산 등을 심의의결권을 갖는다. KBS의 결산은 감사원을 거쳐 국회에서 승인을 받는다. 이 밖에도 KBS는 국회의 국정감사와 결산심사, 외부 전문가집단에 의한 경영평가, 감사원 감사, 시청자위원회 등을 통해 그 공적성격이 유지되는 대표적인 ‘공공영역’이다.
이미 해묵은 카드를 다시 꺼내든 것은 KBS와 EBS 겁박하려는 파시즘적 발상
지난 2006년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할 때에도 공영방송 포함여부가 큰 사회적 논란거리였다. 공영방송이 포함될 수 있는 ‘공운법’ 제정안이 제출되었을 때 언론계와 시민사회는 정권의 성격에 무관하게 이어지는 ‘방송장악기도’에 경악했다. 결국 국회는 두 공영방송에 대한 예외를 인정했고, 그 결과 현행 공운법 제4조 2항이 만들어진 것이다.
마무리하자면 11월 13일 제출한 새누리당의 공운법 개정안은 이중으로 퇴행적이다. 별다른 근거 없이 국회의 권능을 행정부로 넘기려한다는 점이 그 하나다. 1987년 이후 정부방송, 관영방송이 아닌 ‘공공서비스방송’으로 자리매김해온 KBS와 EBS를 무력화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킬 수 있다는 점이 다른 하나다.
이제 와서 다시 두 공영방송을 공운법에 포함시키려는 것은 공영방송을 이중, 삼중으로 장악하고자 하는 파시즘적 발상일 뿐이다. 정부·여당이 진정 공공기관을 개혁하고자 한다면 현행 공운법 제4조는 그대로 두고, 공공기관 개혁의 구체적 절차와 방법을 개정안에 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