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종편을 보는 어르신들, 뭐가 그리 좋을까?(조민혁)
등록 2014.12.10 14:06
조회 1397



종편을 보는 어르신들, 뭐가 그리 좋을까? 

<알바에서 만난 어르신들에게 종편에 대해  묻다>



조민혁 방송모니터위원회 위원장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는 방송 사업을 하기엔 역량이 많이 부족했고, 결정적으로 신문 기업이 방송사를 동시에 운영하면 우리 사회 여론을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여론 독과점 현상'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신문사가 방송사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면서 황당하게도 채널을 4개나 승인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방송이 태어난 것이다. 




▲  종편 4사 로고
ⓒ 종편4사

종합편성채널(아래 종편) 4곳(TV조선, JTBC, 채널A, MBN)은 개국 초기, 소수점 이하 시청률을 기록하며 '애국가 시청률'이라는 놀림의 대상이 됐다. 언론계 종사자와 언론학자, 시민단체들은 모두 종편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예측을 내놓았다.


그런 종편이 12월 1일로 개국 3년이 되었다. 과연 지금 종편의 상황은 어떨까. 일단 월간 평균 시청률은 1%대를 넘어섰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식당, 병원, 공공기관, 터미널, 기차역, 미용실, 이발관 등에 걸려 있는 벽걸이 TV에선 종편 화면을 자주 볼 수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구내식당에서는 MBN을 고정채널로 설정한 듯하다. 개국 초기의 비관적인 시청률에 비해 지금은 방송계에서 나름 자신의 입지를 마련한 듯한 느낌이 든다. 


닐슨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종편의 합계 시청률은 지난해 3월 이미 4%를 넘었고 같은 해 7월부터는 4개 채널 모두 평균 1% 이상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타나났다. 종편 시청률은 특히 노년층에서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1일 <한겨레>가 1월부터 10월까지 TNmS의 '성별·연령대별 종편 4사 평균 시청률(유료매체 가입 가구 기준)'을 분석해 보도한 것에 따르면 20대는 0.1%(남)·0.15(여), 30대는 0.1%(남)·0.275%(여)에 머문 반면, 60대 이상은 0.95%(남)·0.875%(여)로 1%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편 애청자가 돼버린 노년층, 그 이유는...


나는 50대 이상 노년층이 종편을 많이 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뉴스채널인 줄 알고 보는 것인지,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알바로 일하는 곳에 자주 드나드는 50대 이상 어르신들에게 종편을 봤는지, 본다면 왜 보는지, 어떤 점이 좋고 아쉬운지 등을 물었다. 


어르신들에게 물은 결과 가장 많이 나온 공통적인 답은 '<조선일보>가 만든 방송이니 믿고 본다'는 것이었다. 어르신들은 말했다. 


"<조선일보>는 발행부수 1위 대한민국의 대표 언론이다." 

"<조선일보>는 집권여당 아침회의의 안건보고서나 다름없는 신문이다." 


한 마디로 어르신들 사이에선 <조선일보>의 권위가 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안보를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종편을 시청해야 한다는 강한 의견을 피력한 분도 있었다. 


"아직도 남한에 간첩들이 많이 있다. 어느새 우리 사회가 위험을 잊고 안보불감증에 빠져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신문을 보지 않아서 이런 문제를 전혀 모르고 있다. 이러니 종편의 역할이 중요하다. 요즘 KBS도 이런 걸 제대로 방송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종편 뉴스만 본다." 


할아버지는 종편이 지속적으로 안보 위협을 이야기하며 국민들의 불안감을 조성해야만, 북한군이 남한을 함부로 넘보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행자들이 연극배우처럼 열심히 한다."


어떤 어르신은 "종편 아나운서나 진행자들은 아주 알기 쉽게 이야기 해주더라"라고 말했다. 종편 진행자는 사회문제나 이슈를 소개하며 분노, 비아냥거림, 격한 공감 등의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뉴스쇼판' 앵커 김윤덕과 엄성섭의 쇼맨십은 압권이다. 시청자들은 해당 사안에 대해 스스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진행자들은 감정적인 진행을 통해 시청자들이 이슈에 대해 판단해야할 수고를 덜어준다. 


그런데 이런 극적인 진행이 어르신들에겐 그 사안을 쉽게 전달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심지어 종편 뉴스를 보는 이유가 <TV조선>이나 <채널A>의 뉴스 진행자들이 속 시원하게 크게 말하고 비판도 서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노인층은 시사토크 프로그램 출연자에 대해서도 강한 신뢰를 보였다. 변호사, 전직 국회의원, 경찰 등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특정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진 덕분에 사람들이 시사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건강과 생활 정보가 많아서 좋아"


더불어 어르신들은 종편의 인포테인먼트(정보전달과 오락의 결합) 프로그램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인포테인먼트란 MBN <황금알>, MBN <천기누설>, JTBC <닥터의 승부>, TV조선 <속사정> 등 건강, 생활 지식을 소재로 전문가들을 그러모아 만든 프로그램을 뜻한다. 


한 할머니는 매일 밤마다 이런 토크프로그램을 본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이 같은 프로그램들이 아주 유익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재치 있는 전문가 패널들의 입담과 더불어 각종 건강상식과 생활지식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였다. 이들 프로그램이 말하는 속설과 출연진들의 사견을 왜 신뢰하시는지 물었더니 "믿을 만하니까 TV에 나왔겠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런 답변들이 의외라고 여겨진 이유는 이날 만난 어르신들 중엔 정치적으로 보수성향을 지니지 않은 분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 할아버지는 JTBC <썰전>을 즐겨보신다면서, "<썰전> 같은 프로그램은 종편에서만 하잖아"라며 "이런 프로그램이 많아야 사람들이 시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밝혔다. 


한 어르신은 종편의 프로그램들이 "뭐든지 쉽게 알려주는 것 같아서 좋다"며 "자막도 크고 소리도 큰 것 같다, 뭔가 우리를 위한 방송 같다"라고 말했다. 또한 "시어머니랑 며느리들 나와서 하는 이야기가 우리들 사는 것과 똑같아서 재미있다"는 시청평을 말한 분도 있었다. 


의외인 것은 종편을 즐겨보신다는 모든 어르신들이 정작 특정 프로그램을 찾아서 시청하는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채널을 종편으로 맞춰서 수시로 보시는 것이지, 특정 프로그램을 기억하고 찾아보지는 않는 듯했다. 종편에 너무 광고가 많고, 특히 "보험광고와 대출 광고로 도배를 해서 짜증스럽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래서 어르신들에게 종편이 '종합방송채널'이라서 지상파 방송국처럼 드라마와 좋은 다큐멘터리, 쇼 프로그램 등등을 모두 골고루 틀어줘야 하는 방송사임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또한 종편이 돈이 많이 드는 프로그램들은 제작하지 않고,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시사토크 프로그램, 건강생활정보 토크 프로그램 등을 주로 만들어 전체 방영시간을 채우고 있다는 것도 알려줬다. 그런 뒤 어르신들에게 이렇게 '떼토크' 프로그램의 제작비가 훨씬 싸다는 점을 알고 있는지 물었만, "그런 건 모른다", "상관없다", "유익한 프로그램을 싸게 만드니까 좋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젊은층이 본 종편... "종편 보다 분노 게이지 상승"


그렇다면 젊은층들은 종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비교적 젊은층에 속하는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회원들은 종편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의 출연진과 방송 내용에 대해 매우 큰 불신을 갖고 있었다. 


"방송모니터위원회는 종편을 모니터할 일이 잦은데, 지나치게 공격적인 시사토크프로그램 진행자와 출연자의 발언 때문에 '분노 게이지'가 올라간다. 모니터가 끝나고 나면 한숨을 쉬거나 답답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사 떼토크'는 TV조선과 채널A에서 많이 방영하고 있는데, 해당 프로그램 출연진들은 두 방송사 겹치기 출연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 본 '짜증스러운 사람'을 저기에서 또 보게 되는 불상사도 생긴다. '시사 토크프로그램' 출연진들은 친정부ㆍ여당 성향의 '평론가' 혹은 변호사 등 소위 '사'자가 들어간 직업군이기는 하지만, 그들을 해당분야 '전문가'로 칭하기엔 애매모호한 지점이 너무 많다. 전문성과 상관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출연진이 주장하는 내용은 그동안 <조선> <동아>가 생산·확장시키던 '종북 프레임'을 반복하는 것일 뿐이어서 천편일률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한 분과원은 이렇게 말했다. 


"종편 '시사 토크프로그램' 에서 누군가가 대통령이나 정부정책을 비판할 경우, 출연진은 이 사람을 '남남 갈등을 조장하는 종북 인사·세력'으로 낙인찍는다. 이어 해당 인사·세력 뒤에는 '김정은'과 '북한 노동당' 등 '거대 악'이 존재하고, 이들이 한국의 안보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논리를 반복한다." 


분과원들은 "해당 프로그램 출연진의 논리에선 대통령의 행보나 특정 정책에 대한 분석적 비판은 찾아볼 수 없었고, 왜 대통령과 정부정책을 비판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근거도 불분명했다"고 평했다.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종편은 정부·여당 옹호 등 지배논리 확대·재생산을 위해 태어난 채널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수많은 특혜를 누려왔다. 방통위는 '행정지도'라는 형태로 종편에게 지상파 방송사들과 인접한 황금채널을 연번으로 배정해줬고, 의무전송 채널로 지정해줬다. 또한 중간광고를 허용해줬으며, 미디어랩을 거치지 않고 광고를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해줬다. 종편은 이처럼 수많은 경제·시스템적 특혜를 받아왔음에도 '드라마'와 '예능'을 배제한 채 '시사·인포 떼토크' 프로그램만을 방송하고 있다. 


종편에 대한 노년층과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회원들의 상반된 평가를 들으며 나는 새삼 '조중동 방송국' 종편에 대한 어르신들의 '무한신뢰 및 사랑'을 유지·이용하기 위한 종편의 행태가 영악스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