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문창극이 낙마했는데 왜 이 나라를 떠나지 않는 겁니까? (박석운)[시시비비] KBS 이사장 이인호는 답하라
문창극이 낙마했는데 왜 이 나라를 떠나지 않는 겁니까?
박석운(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 KBS<뉴스9> 'KBS 이사회, 신임 이사장으로 이인호 선출(9/5)' 보도화면 갈무리
이사장 되자마자 프로그램에 대한 ‘간섭’ 의지 드러내
이인호 신임 KBS이사장의 돌출적 언행이 갖가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그가 이사장으로 선출된 직후 개최된 최초의 이사회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방송은 독립성 공공성을 보장해야 되기 때문에 이사들은 프로그램에 대해서 논평도 비평도 해서는 안된다하는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라고 밝혔다. 물론 그가 "편성과 보도는… 사장에게 위임된 권한이고 이사회가 거기에 직접 관여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이른바 면피성 발언을 덧붙였지만, 프로그램에 대해서 논평과 비평을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런데 이사장의 프로그램에 대한 논평과 비평이 사장과 부사장을 통해 KBS 내부에 전달될 때, 그것은 바로 편성과 보도에 대한 이사장의 ‘간섭’으로 작용되게 될 것임은 너무나 뻔하다. 이는 “방송사업자는… 방송편성책임자의 자율적인 방송편성을 보장하여야 한다(방송법 제4조제3항).”는 실정법 규정에도 역행하는 태도라 아니할 수 없다.
이인호의 문제는 조부 아닌 본인의 친일 역사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조부가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된 친일파라고 비난하지만, 필자는 연좌제 논리로 이인호 이사장을 비판할 생각이 없다. 그 보다는 조부의 친일행각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그런 식으로 친일을 단죄하면 일제시대 중산층은 다 친일파”라고 감싸는 그의 아전인수식 역사인식이 진짜 큰 문제라고 본다. 조상의 잘못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고 자신의 가족이니까 무조건 감싸기만 하는 것은 객관성과 역사정의를 기본적 가치로 삼는 역사학자의 기본적 덕목도 내팽개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간 이인호 이사장이 보인 KBS에 대한 비뚤어진 비난 전력을 살펴보면, 과연 그가 KBS 이사장으로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그는 지난 2008년 9월 8일 동아일보에 실린 ‘KBS의 이승만 왜곡’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KBS의 <한국사傳> ‘이승만 2부작’(2008년 8월 방송)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긍정적인 측면은 묵살하고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키는", "거대한 역사왜곡을 감행"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이승만 2부작’은 "독립투사" 청년 이승만의 감옥생활과 일제 말 미국의 단파 라디오방송을 통한 "전설"적이고 "영웅"적인 독립운동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많은 시청자들이 "이승만 미화방송"이 아닌가라고 질타하기도 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이승만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포함시킨 그 KBS프로그램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을 묵살했다"며 적극적인 사실왜곡과 극히 편향된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또 "식민지배와 민족분단이 하나님 뜻"이라고 말한 바 있는 문창극 전 총리후보에 대해 이인호 이사장은 지난 6월19일 TV조선의 <시사기획 판>에 출연해서 (문 후보의) "강연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서, "KBS가 국민의 방송으로 제발 그 방송(강연) 전체를 방영해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그 사람(문 후보)을 반민족이라 하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다”, “비이성적 사람, 양심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는 망언을 퍼부었다. 특히 그는 문 후보가 “낙마한다면… 저는 솔직하게 이 나라를 떠날 때라고 강하게 느낄 것”이라고 소신을 피력하기도 했다.
KBS 이사장으로서 '잘못된' 발언들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비록 그가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주 핀란드 대사나 주 러시아대사를 지냈고 또 서울대 명예교수 직에 있는 지식인이라 할지라도, 자연인 이인호 씨가 어떤 역사관과 어떤 소신을 갖고 있는지는 사실 크게 관심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국가기간방송 KBS의 이사장이 되는 순간 그에 합당한 합리적 이성을 갖추고 있는지, 또 양심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지 여부는 사회적·공적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KBS의 문창극 후보 검증 보도는 민언련에서 선정한 ‘이달의 좋은 방송보도’, 방송기자연합회와 방송학회가 수여하는 ‘이달의 방송기자상’, 전현직 중견 방송기자들의 단체인 방송기자클럽의 ‘보도상’, 한국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 등 언론단체가 수여하는 상을 모두 휩쓸면서 호평을 받았다. 이인호 씨는 KBS 이사장이 된 지금도 과연 이 보도가 잘못된 보도라고 생각하는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난 6월의 언행에 대해 어떻게 성찰하고 있는지 등을 밝혀야 한다. 또한 2008년 당시 신문칼럼을 통해 틀린 사실을 근거로 KBS <한국사傳>을 마구 비방한 것에 대해 어떻게 성찰하고 있는지를 밝혀야 마땅하다. 이 정도의 성찰은 “제 정신인 사람”, “비이성적”이지 않은 사람, 또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당연히 요구되는 기본적 태도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문창극 전 총리후보가 이미 낙마한 상태인 지금 이 순간까지, 이인호 이사장은 왜 아직도 이 나라를 떠나지 않고 있는지 등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솔직”하게 밝힐 것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