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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만 못한 ‘입주민 X맨’의 불편함 (김수정)
등록 2014.09.0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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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KBS 추적60분 <수상한 이웃, 아파트 X맨의 진실>의 보도비평

모르는 것만 못한 ‘입주민 X맨’의 불편함



김수정(민언련 웹진기획위원)

    

수학에서 이탤릭체로 쓰는 X는 ‘미지수’ 혹은 ‘변수’라고 부른다. 방정식을 풀면 X의 값이 분명하게 밝혀진다. 그런데 X를 파일이나 사람 이름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 UFO와 외계인, 그리고 비밀스런 정부의 음모를 다뤘던 미국 드라마 중에 <엑스파일(X파일)>이 있고, 2007년 ‘연예인 X-파일’은 소문으로 떠돌던 연예인들의 스캔들을 요약 정리해 점수까지 매긴 신상정보 보고서로 쓰였다. 사람에게 X를 붙이는 경우도 있는데, <엑스맨>이라는 영화는 초능력을 가진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한때 큰 인기가 있던 SBS의 <엑스맨을 찾아라>는 제작진이 미리 지목해서 비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특정 출연진(X맨)을 가려내는 지능게임 형식이었다. 공통적으로 ‘엑스’는 아무도 모르게 특정 능력을 가지거나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 혹은 보고서를 가리키는 의미로 쓰인다. 





아파트 입주민모임에도 있는 엑스(X)맨


KBS 추적 60분에서 8월23일 방영한 <수상한 이웃, 아파트 X맨의 진실>편은 아파트 입주민모임에 있다는 ‘입주민 X맨’의 실체에 대해 파헤쳤다. 재건축 혹은 분양 아파트의 경우엔  몇 백 세대 이상의 입주민들을 한꺼번에 건설사가 상대를 해줘야 한다. 건설사 입장에서 가장 골치 아픈 일은 입주민들이 공동대응을 조직화해 요구를 밀어붙이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건설사들은 입주민들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입주민들의 단결을 막기 위해 그들 사이에 ‘입주민 엑스맨’을 심어둔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추적 60분 제작팀은 이를 실제로 추적하는 탐사보도를 내보냈다. 


실제 입주민이기도 한 ‘입주민 X맨’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선의로 봉사한 사람을 의심할 수 있기 때문에 분명한 정황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실제로 방송용으로 제작하기 어려운 내용이기도 했다. 추적 60분 제작팀이 이번 방송을 준비할 수 있었던 계기는 실제 건설사가 작성한 것으로 확인된 내부문건이 확보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키맨(key man)을 관리하는 ‘입주민 엑스맨’의 정황이 내부문건에 표시되어 있었고, 건설사로부터 입주민 엑스맨의 역할을 의뢰받은 적이 있었다는 주민의 인터뷰가 가능했으며, 입주시기가 무한정 늦어져 일상생활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일반 입주민들의 원성과 하소연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을 파헤칠 수 있었다.


‘입주민 엑스맨’의 구체적인 역할은 키맨(key man)을 포섭하는 것. 키맨은 아파트 입주민모임에서 입주민을 대표하는 중대한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 실제 입주민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힘쓰는 사람을 의미한다. ‘입주민 엑스맨’의 경우 키맨을 포섭하지 못하면 아예 키맨이 되는 방법도 쓰기 때문에 누가 엑스맨인가를 가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이 아파트 입주자모임의 대표가 되는 사례도 빈번하다는 얘기다. 쉽게 말하면 아파트에 문제가 발생했을 시에 입주자모임에서 건설사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협상해야 할 중요 인물에 대해 건설사가 관리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입주민들의 단체 행동이 예상될 때에 입주자들 사이에서 단합이 이뤄지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건설사에 유리한 결정이 입주민들에게 유리하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이들은 건설사로부터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평범한 입주민이었다가도 ‘입주민 엑스맨’이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형 건설사 임원들은 추적 60분의 제작진이 묻는 ‘입주민 엑스맨’의 실체에 대해 “논의한 적은 있지만 적용하지는 않았다”는 모호한 답변을 했다. 건설사에게 입주민 대표들에게 대한 정보 보고를 하면 정기적인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제의를 들은 입주민과의 인터뷰 장면을 보여줘도 한마디로 그런 적이 있는지 모른다는 식의 대답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작진의 질문은 건설사가 ‘입주민 엑스맨’을 실제로 적용했는가 여부를 밝히는데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단지 건설사가 ‘입주민 엑스맨’을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한 바 있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는 데 의미를 두고 있었다. ‘입주민 엑스맨’의 방영 이후에 있을 수 있는 입주민모임 곳곳의 의심과 혼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이 이러한 건설사의 계략에 대해 일반 입주민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제안을 내놓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선의로 일하고 있을 입주자모임의 대표들이라면 자신을 ‘입주자 엑스맨’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주민들의 시선이 매우 불편할 것이다. 입주민들 간에 의견을 모으고 단체행동이 필요한 경우임에도 필요 이상의 무의미한 분쟁이 커질 수도 있다. 게임이라면 잘못한 의심에 대해 나중에라도 용서를 구할 수 있겠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이다. 결국엔 ‘나’가 아닌 ‘우리’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을 판단하는 몫은 진정한 대표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 우리에게 있음을 생각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