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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제 심의기구 정신마저 저버린 방송소위 운영, 문제다 (엄주웅)
등록 2014.07.3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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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진단한다.

합의제 심의기구 정신마저 저버린 방송소위 운영, 문제다



 엄주웅(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상임위원) 



세월호 참사, 지방선거 등으로 인해 구성이 지연되었던 제3기 방송통신심의원회(이하 ‘방심위’)가 7월 들어서야 사실상 업무를 시작했다. 그간 특히 방송심의에 있어서 정부 비판 프로그램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로 ‘정치심의’, ‘편파심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전의 방심위에 비해 얼마나 개선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6월 17일 3기 방송통신심의위원 취임식이 열렸다


재난보도 기본도 지키지 못한 세월호 보도에 솜방망이 처벌만 내려


이런 가운데 방심위는 7월초부터 방송사들의 세월호 관련 보도에 대해 심의에 착수, 방송심의소위원회(이하 ‘방송소위’)를 통해 승객 전원구조 오보를 낸 9개 방송사에 대해 행정지도 조치인 ‘권고’를 결정했다. 여기에 민원이 없었고 안건으로도 상정되지 않은 JTBC까지 끼워 넣었다. 그리고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조급증이 민간잠수사의 죽음을 불렀다는 MBC 뉴스데스크 보도에 대해서도 서면 의견진술을 받고서 ‘권고’를 결정했다. 


7월 17일 전체회의에서는 엉켜있는 시신 다수가 확인됐다는 KBS 보도에 대해 법정 제재인 ‘주의’가 내려졌다. 21일 방송소위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진도체육관 방문 시 실종자 가족의 항의 목소리를 다루지 않은 KBS 보도에 대해 역시 ‘권고’를 내렸다. 선내 진입 실패 브리핑이 있는 날 선내 진입한 것처럼 보도한 KBS에 대해서는 전체회의에 회부하기로 해서 법정제재가 예정되어있다.


개별 사안들을 따져 어떤 내용이 법정 제재에 해당하고 어떤 것은 권고 이하의 행정지도에 준하는 것인지를 여기서 깊이 파고들 여지는 없다. 그 기준은 어찌 보면 심의위원들의 합의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엄청난 재난을 다루는 언론사의 무책임한 보도가 ‘기레기’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사회 전체의 질타를 받는 요즘의 상황에 비추어 ‘솜방망이 제재’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불합리한 결정 과정도 문제


어떤 결정이 내려졌느냐는 것보다도 그에 이르는 과정에 하자가 있다면 이는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본적으로 방송소위는 위원들의 합의로 운영하도록 되어 있다. 방심위 전체도 합의제 기구의 성격을 띠지만 소위에 그보다 더 엄격한 합의가 요구되는 까닭은 법규도 법규려니와 단순한 산술에서도 나온다.


법률상 방심위는 9인의 위원으로 구성하며 재석위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회의를 열어 의결하는 일은 방송의 경우 방송법 제100조 제재조치 등에 관한 결정이고 여기에는 주의‧경고 등 법정 제재는 물론이고 권고·의견제시 등의 행정지도도 포함됨은 물론이다. 이런 일을 일부 분담하여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방심위는 법령에 의해 소위원회를 둘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소위원회에 실질적인 의결 기능까지 위임된다면, 현행 5인으로 구성된 소위원회에서는 다수이지만 전체 위원회로 볼 때는 절대적 소수(최대 3인)의 의견이 방심위의 결정을 대신한다는 불합리가 발생한다. 


이 점 때문에 방심위는 소위에게는 경미한 사항, 즉 법정 제재가 아닌 ‘권고, 의견제시, 문제없음’에 해당되는 사안만을 의결하도록 위임하고 있으며, 소위는 가급적 다수결이 아니라 합의로 결정하도록 운영해 왔다. 그간 소위에서도 법정제재 여부가 아닌 행정지도의 수위를 놓고서는 위원들 간의 합의가 쉽게 이루어졌다. 


위원장 동의 없이는 전체 회의에 상정도 불가?


문제는 이번처럼 소위에서 다수가 권고 등 행정지도를 주장하고 해당사안이 법정제재에 해당한다는 의견이 소수일 경우 다수결로 의결할 수 있느냐이다. 만일 그렇게 결정된다면 앞서 말한 산술의 문제가 발생한다. 즉, 전체 위원 3분의 1에 해당하는 소수의 의견이 결정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민원이 제기된 경우라면 전체위원회의 논의나 의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심의결과를 받아들여야 하고, 해당 소위에 소속되지 않은 위원들(4인)의 심의, 의결 참여 기회도 침해되는 것이다. 


과거 방심위(특히 1기)는 법정제재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릴 경우 전체회의에 상정하기로 합의하고 실제 그렇게 운영해 왔다. 이 경우 편의를 위해 위원장이 위원 2인 이상의 동의를 얻어 안건을 상정하도록 소위규칙에 규정해 두었다. (2인으로 정한 것은 당시 3인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 규칙을 원용할 것도 없이 소위에서 어떤 안건을 전체회의 상정으로 의결하면 전체회의 소집요건인 위원 3분의 1이상의 동의는 자동 충족되는 것이다. 그러던 것을 위원장의 동의 없이는 전체 회의에 상정할 수 없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입법 취지를 벗어난 자의적 해석이 되는 것이다.


공정한 심의를 위해서는 운영과정 공정성부터 지켜야


방심위는 전체 위원들의 숙의를 바탕으로 한 합의제 심의기구이다. 명확한 법률조항이 아닌 다소 애매한 심의규정에도 불구하고 전체회의에서의 심도 있는 논의가 있어야 그 결과를 방송제작자나 시청자가 수긍할 수 있다. 효율을 앞세워 소위에서의 다수결을 밀어붙이는 것은 기구 자체의 존립근거와 취지를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 극도의 이념 편향적 인사가 포함된 6대3이라는 정치적 구성에도 불구하고 방심위가 그나마 운영과정에서의 공정을 기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