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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에 꽃을 꽂으려면 총구에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강선일)
등록 2014.07.3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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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견] ‘총보다 꽃’ 평화 콘서트에 가다

총에 꽃을 꽂으려면 총구에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강선일(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





어느덧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1년째다. 전쟁을 일시적으로 멈춘 상태인 정전협정.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도 남북 관계 개선은 멀고도 어려워 보인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외쳐야 할 시점인데도 사람들은 점점 분단 상황에 익숙해져 가는 건 아닌가 싶다. 


그런 고민을 갖고 있던 중, 운 좋게도 7월 25일 제3회 ‘정전협정과 작별하기 평화콘서트’ <총보다 꽃> 공연 표를 얻었다. 민언련 전 이사장 성유보 선생님이 이사장으로 계신 ‘희망래일’이라는 단체에서 주최한 공연이었다. 총보다 꽃. 참 좋은 제목이다. 총이 상징하는 ‘대결과 적대의 시대’를 벗어나, 꽃이 대표하는 ‘희망과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자는 의지가 담긴 제목인 듯했다. 그 제목의 의미를 여러모로 생각해 보며 공연장으로 향했다. 여기서 공연의 모든 내용을 소개하긴 힘들고,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 위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성공회대 교수들이 뭉쳐 만든 3인조 밴드 ‘더숲트리오’. 그들이 부른 노래 중 <비둘기야 높이 날아라>란 노래가 우선 기억에 남는다. 이 노래는 북한 노래다. 미국의 캐스팅 크라운즈(the Casting Crowns)라는 가스펠 그룹이 2007년 4월 평양에서 한국어와 영어로 불러 더욱 잘 알려진 노래다. 가사 중 “비둘기야 비둘기야 더 높이 날아라. 내 조국의 푸른 하늘 흐리지 못하게”란 부분이 인상 깊었다.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높이 날아 이 땅 한반도에 전쟁의 암운이 드리우지 않길 바라는 것일까 하는, ‘불온한 상상’도 해봤다. 


공연 후반부에도 북한 노래가 나왔다. 재일 동포 가수 이정미 씨는 <임진강>을 불렀다. <비둘기야 높이 날아라>가 평화에 초점을 맞춘 곡이라면, 이 노래는 ‘통일’에 더 초점이 간 곡이다. 이정미 씨는 예전엔 이 노래를 부르기 싫었다고 했다. 특히 일본인들이 이 노래를 번안해서 부를 때, 분단의 아픔이 담긴 가사를 아무 감정 없이 부르는 듯하는 게 속상했다고 한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물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이정미 씨는 이 노래를 부르고 난 뒤, 현재 일본의 상황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했다. 일본은 특정비밀보호법(일본의 안보 문제에 있어 기밀을 누출한 이들에 대해 처벌하는 법안) 등의 법률을 통과시켜 재일 조선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이 같은 인권 탄압 정책을 펼치고, 대외적으론 집단적 자위권을 통과시켜 다시금 패권 국가의 길을 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정미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런 야심의 발로인지, 일본 자위대는 지난 7월 22일 한국, 미국 해군과 함께 제주 남해상에서 합동군사훈련을 벌였다.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한미일 삼각동맹’이 점차 구체화되는 건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상상’을 하게 된다. 


민중가수 이지상 씨는 <탄타오와 문정현>이란 노래를 불렀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저지른 ‘밀라이 학살’의 생존자 중 한 명인 탄타오라는 베트남 평화시인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실참여 종교인인 문정현 신부를 함께 노래하는 곡이다. 이지상 씨는 이 노래에서 “밀라이 학살과 구럼비 학살이 뭐가 다르냐”고 일갈한다. 군사적 목적을 이유로 평화롭게 살던 사람과 환경을 파괴한다는 측면에서 둘 다 ‘학살’이란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탄타오와 문정현 신부 모두 ‘평화를 해치는 세력’에 맞서 지금도 싸우고 있는 이들임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총에 대항하는 가장 큰 무기는 꽃이란 걸 알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총에 꽃을 꽂으려면 총구에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 머리가 얼얼했다. 왜 난 총보다 꽃이 좋다는 건 알고, 꽃이 총에 대항하는 무기란 건 알면서, 정작 꽃을 총에 꽂으려면 총구멍 가까이로 가야 함을 잊고 있었을까. 말로만 평화를 외치는 건 쉽지만, 정작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 싸우는 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날 나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평화는 오지 않는다. 


혼자 총구멍 앞에 다가가면 무섭다. 혼자 꽃을 들고 행진할 용기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함께 그 길을 걷는 사람이 두 명, 세 명, 수십, 수백, 수백만이 되면 결코 무섭지 않다. 함께 총구멍에 꽃을 꽂으러 가자. 모두 함께 총구멍에 꽃을 꽂으러 감으로써, 이 땅에서 전쟁과 대결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는,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