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문창극의 자진사퇴로 물거품이 된 보수언론들의 ‘헛발질’[참견] KBS 문창극 보도에 대한 보수언론의 ‘왜곡보도’라는 억지
문창극의 자진 사퇴로 물거품이 된 보수언론들의 '헛발질'
민주언론시민연합
사퇴 기자회견과 함께 ‘문창극 사태’라는 막장 드라마는 막을 내렸지만 우리는 거기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온갖 망언으로 얼룩진 극우언론인을 국무총리로 지명할 만큼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이 지극히 수구적이며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현재 정권과 보수언론은 ‘문창극 사태’의 원인을 오로지 KBS의 ‘왜곡 보도’로 치부하며, 문창극 낙마로 국민들 볼 낯이 없어진 박근혜 정권을 구하려고 이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1일, KBS <뉴스9>는 문창극 씨의 교회 강연을 발췌 보도했다. “조선 민족은 게으르다”, “남북분단은 하느님의 뜻”, “제주 4·3은 공산주의자들의 폭동” 등등 문 씨의 적나라한 망언들이 방송되자 여론은 급격히 싸늘해졌고 심지어 새누리당의 일부 의원들까지 문 씨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문 씨의 총리 지명에 ‘좀 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며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동안 중앙일보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역사관과 민족관은 청문회에서 가려야 한다’며 자사 주필 출신인 문 씨를 두둔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6월 14일 <사설/문 총리후보자의 역사관 논란, 청문회 통해 가려야>에서 “(문 씨의) 검증작업이 당사자의 책임 있고 충분한 해명 없이 부정확한 정보나 왜곡된 보도를 근거로 한 일방적인 매도나 폭로로 흘러서는 곤란하다”, “일부 언론의 편향된 보도만으로 총리의 자질을 예단하거나,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에 나서는 것은 국민이 부여한 국회의 총리 인사청문권과 인준권을 훼손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펼치며 KBS를 간접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 MBC, 6월 20일 <긴급대담 문창극 총리 후보자 논란> 화면 갈무리
MBC, 긴급토론회로 ‘문창극 구하기’에 적극 나서다
이후 MBC는 6월 20일 긴급토론회 <긴급대담 문창극 총리 후보자 논란>을 예능 프로그램까지 결방시키며 밤 9시 50분부터 12시 20분까지 갑작스럽게 편성했다. 150분이라는 분량에서 문 씨의 강연 동영상은 40여 분을 차지했다. 사회를 맡은 김상운 MBC 논설실장은 “언론에 보도된 것은 일부 발췌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말로 토론회를 시작했다. 겉으로는 문 씨의 총리 후보자 자격 논란을 다루는 토론회였지만 인터넷에 공개돼 누구나 볼 수 있는 강연 동영상을 긴 시간을 할애해 보여준 것일 뿐이었다. 더욱이 토론회는 문 씨의 교회 강연 영상을 중심으로 진행됐을 뿐 문 씨가 중앙일보 주필 시절에 쓴 극우적이고 호전적인 칼럼들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MBC가 긴급토론회로 포문을 열자 중앙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이 일제히 치고 나왔다. 중앙일보는 6월 21일 <“강연 내용 거두절미 편파·왜곡…보도 책임자 문책해야”>에서 원로 언론인 모임인 ‘대한언론인회’가 20일 발표한 성명서를 인용하며 “(KBS의) 보도가 전체 문맥을 고의적으로 거두절미한 심각한 편파 왜곡 기사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언급했다. 기사 말미엔 “KBS는 현재 사장이 공석인 리더십의 혼돈 상태다”라는 악의적인 왜곡도 덧붙였다.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혼돈’ 상태인 KBS의 ‘편파 왜곡 보도’ 때문에 문 씨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종편과 조중동, 문창극 감싸려 ‘KBS 흔들기’ 총력
종편에서도 비슷한 보도가 흘러나왔다. 6월 21일 TV조선 <주말뉴스 토> 대담에 출연한 홍성걸 국민대학교 교수는 “지금 사태는 이명박 정부 초기 광우병 사태와 대단히 유사하다”며 문 씨 총리 후보자 자격 논란과 2008년의 촛불집회를 싸잡아 공격했다. ‘광우병 사태’의 원인이 MBC
6월 23일과 24일, 그동안 문 씨에 대해 소극적인 보도로 일관하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도 중앙일보와 함께 ‘문창극 감싸기’와 ‘KBS 흔들기’에 나섰다. 동아일보는 23일 <김순덕 칼럼/‘광우병 선동’ 뺨치는 KBS 보도>에서 21일 홍 교수가 TV조선에 출연해 펼친 주장을 똑같이 되풀이하며 “정연주 사장 시절 뿌려놓은 씨가 ‘점령군’으로 되살아나 ‘부역자’ 거세 중이라는 웅성거림이 KBS 안에서 나오고 있다”는 근거 없는 막말까지 퍼부었다. 조선일보도 24일 <“문창극 청문회 반드시 열어야” 보수인사 1만여 명 온라인 서명>에서 이인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말을 빌려 “(KBS가) 왜곡 보도로 국민을 흥분시켜 멀쩡한 사람한테 뭘 씌워놓고 해명할 기회도 안 주고 떨어뜨리려 한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24일 <“KBS 발췌편집…SNS 친일몰이…野는 ‘반민족’ 규정”>에서 “파문의 시발점이 된 KBS의 보도가 언론이 지켜야 할 공정성 · 객관성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 “KBS가 사전에 거두절미해 자기들이 보도하고 싶어 하는 내용을 보도했다” 등 보수적인 언론학자들의 의견들만을 집중적으로 인용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23일자 6면 <문 후보 교회 강연 43분 방송 뒤 “청문회 열자” 확산>에서 KBS의 “거두절미 보도” 때문에 여론이 청문회를 개최하자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는 보도를 하며 그 근거로 “각종 인터넷 게시판”의 “댓글”을 언급했다. 같은 날짜 7면 <“KBS 왜곡보도로 중요 사안 잘못 결정해서는 안 된다”>에서는 각계 원로 인사 482명이 22일 발표한 ‘청문회 촉구’ 성명서의 내용 중 “청문회도 열리지 않고 (문 씨가) 낙마한다면 이는 왜곡보도와 마녀사냥식 여론몰이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하는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 될 것”이라는 부분을 그대로 인용해 보도했다. 24일자 <월주 스님 “문 후보의 생각, 청문회서 듣고 싶다”>는 전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 스님의 ‘청문회 촉구’ 발언을 부각하고 있는데 조선일보와 뜻이 통했는지 같은 날짜 조선일보 <월주 스님 “청문회 통해 문 후보 진의 들어봐야”>에서도 월주 스님의 발언을 다루고 있다. 중앙일보의 ‘분노’는 같은 날짜 사설
보수언론들의 ‘문창극 감싸기’는 24일 오전 10시 문 씨의 사퇴 기자회견과 함께 전부 ‘헛발질’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망언 제조기’ 문 씨를 옹호함으로써 청문회까지 끌고 가겠다는 의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보수언론과 수구세력들은 ‘편파·왜곡 보도 프레임’으로 ‘정상화’를 꾀하고 있는 KBS를 물고 늘어질 것이다. 게다가 문창극과 비슷하게 친일 독재 찬양 경력이 있는 박효종 씨가 방심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이 상황에서 KBS를 흔들려는 방심위의 ‘초강력 정치심의’가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KBS의 문 씨 보도는 편파도 왜곡도 아니다. 교회 강연 동영상이 아니었어도 문 씨는 화려한 ‘망언’들과 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오물’에 가까운 과거 칼럼들 때문에 낙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보수언론들은 ‘언론의 자유’, ‘종교적 특수성’ 운운하며 KBS가 악마의 편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문 씨는 언론의 자유를 누릴 언론인도, 종교적 특수성으로 보호받을 장로로 비판받은 것이 아니다. 그는 나라의 살림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었고, 그런 그의 발언은 국민적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