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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방송사 구성원의 의지가 필요하다 (이완기)
등록 2014.06.2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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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공영방송, 길은 있는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방송사 구성원의 의지가 필요하다

 

이완기(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길환영 KBS사장의 해임을 계기로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 논의가 활발하다. 이름하여 ‘길환영 방지법’이다. 공영방송의 불공정과 정치편향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길환영 씨 개인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슬픔과 한이 분노와 저항으로 이어졌기에 가능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는 ‘소중한 생명의 희생’에 대한 고뇌와 성찰의 장이 되어야 한다. 


본질적으로 여야 정치권이든, 이사회든, 노동조합이든, 시민사회든, 방송학계든, 거기에 속한 어느 개인이나 집단도 나름의 정치적 의견과 주장을 갖는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방송저널리즘과 얼마나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분별력 있게 행사되느냐에 따라 방송의 ‘정치적 독립’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물론 공영방송의 균형적 역할이 정치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 외에도 자본과 노동, 빈자와 부자, 도시와 농촌, 중앙과 지역의 문제를 포함해 장애인이나 동성애자 등 소수자 문제와 보편적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정치적 독립’을 유독 강조하는 것은 정치가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 있으며, 공영방송의 정치종속이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잡은 정치집단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사장으로 앉히고 방송사 내부의 인사, 편성, 제작 등에 직·간접으로 사사건건 개입하는 등 방송저널리즘을 완전히 거세해 버린 채 방송을 그들의 홍보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법과 제도 측면에서 해결책이 마련된 지는 오래다. 그 동안 정치권, 노조, 시민사회, 언론학계 등 여러 채널의 논의과정을 통해 구체적인 법과 제도적 대안들이 나와 있으며 실천의 문제만 남았다. 덧붙인다면 방송사 내 구성원들의 저널리즘에 대한 치열한 의식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특별히 강조되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 사장추천위원회, 편성위원회 등 제도적 장치 필요 


법과 제도의 차원에서 우선되어야 할 것은 정치적으로 기울어져 있는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국민의 마음을 사서 정치적 자산인 국회의 의석을 늘리고 집권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메커니즘이라면, 그것을 가장 평화적이고 효과적으로 공정하게 실행하는 것은 언론의 몫이다. 따라서 언론, 특히 공영방송의 정치적 균형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의석수가 많거나 집권당이라고 해서 공론장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권한은 없다. 의석수나 집권 여부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회의 구성비가 정해지는 것은 결과적으로 공정한 정치적 경쟁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것이며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역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KBS와 MBC의 사장을 선임하는 KBS이사회(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이사 구성비가 현재와 같은 7:4 또는 6:3으로 되어 있는 구조는 하루 빨리 청산되어야 하며 여야 동수로 정치적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다만 여야가 의사결정에서 평행선을 달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야 합의로 정치적 중간 지대의 인물을 선정하는 기술적 장치는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사장을 선임하는 이사회와 방문진의 정치적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완충장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이사회와 방문진 산하에 사장추천위원회를 두고 그로 하여금 방송에 대한 철학과 경륜을 갖춘 인사를 추천하여 이사회와 방문진이 최종 결정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사장추천위원회는 오로지 사장을 추천하는 일에 한정하고 역할을 끝내게 함으로써 이런저런 이권에 개입할 여지가 없도록 해야 하며 가급적 다양한 분야의 많은 의견들을 수렴할 수 있도록 구성하여 정치적 개입이 어렵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화와 환경이 다르긴 하지만 독일 ZDF의 경우 무려 77명의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로 구성된 사장추천위원회를 두고 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방송제작 현장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확립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보도, 토론, 시사 등 정치적 사안을 다루는 분야에 노사 동수로 편성위원회를 구성하여 방송저널리즘에 대한 공론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또한 사장의 추천으로 구성되는 현재의 시청자위원회 구성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꿔 다양한 분야의 시청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며 편성위원회에서 노사 의견이 팽팽히 맞서 의사결정이 어려운 경우 시청자위원회가 결정토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 구성원의 의지와 의식의 중요성


제도적 장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제도의 운영과 내부 구성원들의 의지와 치열한 의식의 문제이다.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그 운영이 잘못되었을 때 좋은 제도가 흉기로 변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장을 포함한 내부 구성원들은 제도에 배어 있는 정신을 정확하게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건강한 사회에 필요한 높은 수준의 상상력과 방송저널리즘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하며 이를 위해 구성원들은 활발한 연구와 토론이 있는 성숙한 조직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자사 방송의 부끄러운 부분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중징계하는 천박하고 독선적인 경영진과 이를 용인하고 있는 조직문화는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한다. 


최근 사장이 없는 KBS의 뉴스와 시사프로가 좋아진 것은 간섭이 사라진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프로그램에 활력을 불어넣고 창의력을 높이는 보약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억압과 통제는 자율과 독립의 창의력을 결코 이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