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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들은 밀양 ‘할매ㆍ할배’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 (김언경)
등록 2014.06.1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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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견]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관련 방송모니터 보고서

방송사들은 밀양 ‘할매배’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지난 11일, 경찰과 밀양시청 공무원들이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행정대집행을 감행했다. 집행 과정에서 농성 중에 있던 사람들이 강제로 끌려가고 다치는 등 인권침해와 폭력적인 경찰력 사용의 문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언론들은 그러한 문제는 무시한 채 “9년 간 이어지던 한전과 주민들의 갈등이 ‘마무리’되었다”는 식으로 정부와 한전의 바람만을 전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바람일 뿐 11일 행정대집행으로 밀양 송전탑 싸움은 밀양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전국으로 확산되고 생존권과 건강권 싸움에서 반핵과 평화를 위한 싸움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밀양의 싸움이 더 많은 보상금을 타내기 위한 것이라거나 지역의 님비 현상일 뿐이라는 주장들은 밀양 주민들을 폄훼하고 밀양 싸움의 가치를 깎아내리기 위한 여론조작이지 결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폭력적 집행에 맞서 끝까지 현장을 고수했던 밀양 주민들의 요구는 간명하다. 그들의 주거지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것이다. 금전적 보상이 아닌 자신의 땅에서 편안하게 여생을 살게 해달라는 것이며 자손들에게 아름다운 밀양 그대로를 물려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정부와 한전과 이기적인 기득권 여론에 맞서 싸우면서 밀양 ‘할매와 할배들’은 정권과 자본의 야만적 속살을 알게 되었고, 그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어르신 두 분이 자살을 선택할 정도로 9년간 이어온 투쟁은 힘겹고 지난했다. 그들은 움막을 지키고 자신들의 뜻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으로 자신의 일상적 삶을 포기한 채 지내왔다. 그야말로 9년 동안 처절하게 지켜온 파란만장했던 송전탑 반대 투쟁의 현장이 2,500명 경찰의 11시간 강제 집행으로 쉽게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사안을 방송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방송, ‘허탕 친 금수원’만 부각시키며, ‘폭력적인 밀양 행정대집행’은 축소보도 

대부분의 방송사들은 11일 밀양 행정대집행 당일 관련 소식을 한 꼭지로, 그것도 후반부에 배치해 보도했다. 11일 2꼭지를 보도한 방송사는 KBS와 TV조선뿐이었다. 12일에는 그나마 KBS가 한 꼭지를 보도한 것 외에 관련내용이 전혀 없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같은 날 진행된 금수원 검찰 수색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양의 기사를 쏟아냈다. 물론 세월호 참사의 책임규명이라는 차원에서 유병언 일가의 수사가 국민적 관심사임은 불문가지이다. 그러나 현재 유병언 씨와 검찰 수사에 대한 언론의 보도량은 상식을 초월할 정도이다.


특히 TV조선은 금수원 보도가 12꼭지, 채널A는 17꼭지로 거의 도배하다시피 했지만 밀양은 2꼭지, 1꼭지에 불과하다. 보도 내용도 확실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이 부산한 금수원 수색을 보여주거나 이런 저런 추측을 나열한 것뿐이었다. 11일 TV조선 <뉴스쇼판> 보도 제목만 보면 <금수원 재진입…“피라미만 잡았다”>, <일사불란한 금수원 진입…군사작전 방불>, <금수원서 6명 체포…누구 잡았나?>, <금수원에 가보니…불법 건축물 천지>, <“세월호 진실 규명하겠다” 궤변 일관 구원파>, <흔적조차 없는 유병언, 도대체 어디에…>, <육·해군 동원해 유병언 밀항 차단>, <검찰, 대통령 질책에 놀라 금수원 진입?>, <성과 없는 검찰…수사팀 개편하나>, <檢, '억대 횡령' 혐의 해운조합 전 이사장 소환..>, <유병언 영농조합 2천억 원 농지…강제처분 들어..> 등 한마디로 시시콜콜한 ‘카더라’ 소식을 나열한 수준이다.


지상파 방송사 중에서 MBC의 보도쏠림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금수원은 8꼭지나 보도한데 비해, 송전탑은 1꼭지로 그것도 후반부에 배치해 보도했다.  



△ 방송사 메인뉴스 금수원 검거작전,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보도량 비교(6월 11일~12일)



밀양 행정대집행과 금수원 수색이 같은 날 이루어진 상황에서 언론은 최소한 양쪽의 상황을 그 뉴스가치에 걸맞게 적절히 배분해 보도했어야 한다. 금수원 수색에만 보도의 비중이 쏠림으로써 상대적으로 심각한 사안이었던 밀양 행정대집행의 참담한 상황과 그 문제점이 제대로 국민에게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사안에 대한 한 날의 공권력 집행이 이런 언론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기획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의구심을 확인시켜준 밀양 관련 방송보도는 참으로 실망스럽다. 


MBC․SBS․YTN, 남의 나라 스포츠 중계보다 더 무미건조하게 상황을 전달   

대부분의 보도가 공통적으로 집행현장의 참혹한 분위기를 전하지 못했다. 특히 MBC, SBS, YTN은 농성장 철거 상황을 남의 나라 스포츠 중계하듯 무덤덤하게 단순 전달만 했다. 이들 방송사 보도들은 마치 이 사안에 대해 어떤 가치판단도 하지 않겠다는 인상을 준다. 그나마 SBS가 앵커멘트를 통해서 “건강의 위해성과 재산권 침해를 걱정한 주민 반발이 끊이지 않았”음을 전달했고, YTN은 “고압 볼트가 지나고 간다며 당신들 그렇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요!”라는 수녀의 울분 섞인 절규를 실어줬을 뿐이다. 



△ 방송사 메인뉴스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보도 목록 (6월 11일~12일)



TV조선, 신고리 3호기 때문에 송전탑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거짓 주장 담아

송전탑 건설현장 행정대집행 관련 보도 중에서 가장 심각한 왜곡보도는 TV조선의 <송전탑 없으면 원전 무용지물>(6/11, 장용욱 기자) 보도이다. 보도에서 앵커는 ‘공사가 계속 지체되면 피해가 더 커’지고 '올해까지 송전탑을 완공하지 못하면 내년부터 가동되는 신고리 3호기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면서 공권력 투입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했다. 송전탑 건설 지연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이유로 송전탑 공사가 반드시 진행돼야 한다는 한전 측 입장만 전달했을 뿐 환경훼손이나 주민들의 건강권, 재산권 침해 등은 완전히 무시했다. 



△TV조선 6월11일 보도 화면 갈무리


 

무엇보다 TV조선이 주장하는 ‘올해까지 송전탑을 완공하지 못하면 내년부터 가동되는 신고리 3호기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애초 신고리 3호기는 작년 가을에 준공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2013년 5월 위조부품 사용 등 대규모 원전 비리가 드러났을 때, 신고리 3․4호기에 설치된 케이블 시험 성적서도 위조되었음이 드러났다. 한전은 문제가 되는 케이블을 교체하겠다고 했고, 지난 4월 조석 한수원 사장 간담회에서 “늦어도 2015년 9월 이전엔 3호기 준공 승인이 떨어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5월에 다시 취수구 배관공사에 들어갈 품질서류가 위조되었다는 원전 비리가 터졌다.  부산지검동부지청은 5월 신고리 3․4호기에 건설현장을 압수수색했고 취수구 배관의 품질서류를 위조한 협의로 한수원 협력사 직원을 긴급체포했다. 이로써 신고리 3․4호기 건설은 또 다시 지연될 상황에 처했다. 2015년 9월 완공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서 추가 공사가 완료되더라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운영허가가 나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신고리 원전 3호기 준공은 아무리 빨라도 2015년 말이나 가능할 전망이고 허가절차를 따지면 실제 전력공급은 2016년 이후로 더 미뤄질 것이라 예측되고 있다.


‘길환영 없는 KBS'와 JTBC, 송전탑 관련 보도 방송사 중 가장 잘 해

 KBS는 11일 관련 보도를 두 꼭지 보도했는데, 특히 10번째 보도인 <9년간 계속된 갈등…쟁점은?>(6/11, 진정은 기자)에서 밀양 송전탑 건설을 두고 오랜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를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 특히 한전이 제대로 문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해 갈등이 계속되는 동안 사회적 갈등 비용과 행정력 낭비가 컸다는 점을 지적했고, 밀양 주민들이 건강과 재산권을 맞바꿔야 하는 보상금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문제도 언급했다. 



△KBS 6월11일 보도 화면 갈무리



 KBS는 행정대집행 다음날 유일하게 후속보도를 했다. <철거 후 공사 재개…주민․한전 갈등 여전>(6/12, 차주하 기자)에서 전날 모든 상황이 종료된 것처럼 보도했던 것과 달리 주민들의 반발과 인권침해에 대한 법적 대응 등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는 “경찰 공무원은 행정대집행의 주체가 될 수 없는데도 마치 주체인 양 직접 철거를 해 버렸기 때문에 가장 큰 문제”라는 민변 정상규 변호사의 인터뷰를 담고, 기자가 “강제 철거가 위법했고 주민과 수녀 등 19명이 부상당하는 인권 침해가 있었다며 법적 대응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서는 한전이 “올해 말 안에 밀양 구간 송전탑 69기를 모두 완공할 예정이지만 준공 이후에는 보상금도 줄 수 없다며 반대 주민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송전탑 관련 갈등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JTBC는 <밀양 강제철거 충돌…실신․부상 잇따라>(6/11, 구석찬 기자)에서 전력난 해소를 위해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는 한전의 입장을 전했다. 비록 한 꼭지였지만 타사에서 언급하지 않은 구체적 내용들을 전했다. 특히 신고리 원전 3호기가 품질서류 위조와 성능시험 불합격 탓에 준공이 내년 하반기로 연기됐으므로 한전이나 정부가 시간을 두고 주민들과 좀 더 대화에 나섰어야 한다는 비판을 담았다. 또 “지난해 한전 고위관계자가 아랍에미리트 원전수출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선 수출용 모델인 신고리 원전 3호기를 빨리 가동시켜야 한다고 밝힌 적이 있어 단지 전력난 해소 때문이라는 한전 측 설명을 믿기 어렵다”는 기자의 비판적 지적도 있었다.


 13일 국제앰네스티는 밀양 송전탑 경찰 진압이 국제기준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평화 시위의 자유에 대한 권리 제한은 공익 또는 다른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허용된다”고 강조하고 “공권력의 사용은 반드시 적법한 법집행 목적에 따라 이뤄져야 하며 경찰은 가능한 공권력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제 인권단체의 따끔한 지적은 어느 방송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두 분의 노인이 목숨을 버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삶을 내던지며 9년이라는 긴 세월을 싸웠지만 방송은 이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이제 한동안 밀양 송전탑 소식을 접하는 것조차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밀양 송전탑 현장 인근 양식장에서 은어 5만 마리가 집단 폐사해 1억 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양어장 측은 11일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한전 송전탑 공사 헬기와 부상자를 후송하는 소방헬기가 저공으로 운항하면서 소음, 진동 영향으로 집단 폐사됐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동물과 먹거리’를 좋아하는 지상파 방송사,  MBC가 혹시 이 소식에 반응해 한번이라도 밀양의 소식을 더 들을 수 있을까 기대해야 하는 한국의 방송 현실이 참으로 참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