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홍보만 있고 검증은 없는 반기문 보도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 나선 '반파라치' 방송사들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조기 대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방송사들도 일찌감치 대선 구도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여론조사 지지율 1, 2위를 유지하고 있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에 보도가 쏠리고 있다. 문제는 반 전 총장 관련 보도가 정상적인 대선 보도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다. 반 전 총장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모든 발언과 행동을 받아쓰고, 심지어 미화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정상적인 선거 보도가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선거 보도에서는 후보 간 정책 비교와 사회적 쟁점별 비전, 후보 및 정당 검증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물론 대결 국면도 보도해야 한다. 선거 전략 분석과 선거 운동의 양상, 여론조사 결과도 모두 국민이 알아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이중 대결국면에만, 그것도 철저히 여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았고 정책 보도는 멸종위기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지난 20대 총선 기간, 민언련의 분석에 따르면 3월 24일부터 4월 2일까지 지상파 3사와 종편 4사의 선거보도 중 공약 보도의 비중은 5.6%에 그친 반면, 공천과 정당 내부 갈등 보도는 23.5%에 달했다. 비율만으로 보면 무려 4배에 이르는 차이다.
반기문 귀국과 함께 시작된 종편의 ‘반파라치’ 보도
1월 12일 반기문 전 총장 귀국을 기점으로 시작된 방송사들의 보도를 보면 앞으로도 20대 총선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방송사들은 반 전 총장을 대선후보로 전제하면서도 검증 대신 찬양만 늘어놓는 모양새다. 특히 TV조선・채널A・MBN은 심각한 수준이다. 13일부터 15일까지, MBN은 반 전 총장 행보만 16건을 보도했는데, 같은 기간 최대 화두로 꼽힌 이재용 부회장 특검 조사 관련 보도는 단 5건이었다. 채널A도 이 차이는 11건, 5건으로 큰 편이고 TV조선 역시 11.5건, 8건으로 반 전 총장에 더 큰 비중을 뒀다. 지상파 3사와 JTBC는 두 사안 보도량이 비슷했다.
MBN의 경우 <효심과 민생 행보 ‘강행군’>(1/14)와 같이 민망할 정도의 ‘찬양 보도’를 쏟아냈다. 주요 포털에서 ‘반기문 턱받이’가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반 전 총장의 ‘친서민 코스프레’가 논란이 됐지만 MBN은 “앞치마를 두르고, 죽도 직접 떠서 먹여드렸다”는 미화에 골몰했다. 물론 이런 경향은 MBN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JTBC를 제외한 6개 방송사 모두 ‘기차표와 생수를 직접 구매한 반기문’ ‘귀국 시 경호와 의전을 거부한 반기문’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한 반기문’ 등 찬사를 늘어놓았다. 심지어 ‘진보적 보수주의자’라는 정체불명의 비전까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썼다.
뇌물수수 의혹에 동생 사기 혐의 기소까지, 방송사들은 왜 검증을 안 할까?
반 전 총장에게 검증할 의혹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12월 24일, 시사저널이 보도한 ‘23만달러 뇌물수수 의혹’은 아무 것도 해명된 게 없다. 방송사들은 사실이 아니라며 법적대응을 예고한 반 전 총장 측 입장을 1건씩 보도하고 넘어가 버렸다. 심지어 TV조선은 <창과 방패… 막 오른 '네거티브 전쟁'>(12/25)라는 보도에서 해당 의혹을 ‘네거티브 공세’로 규정해버렸다.
1월 11일에는 반 전 총장의 동생인 반기상 씨 부자가 미국에서 사기 및 뇌물, 돈세탁 혐의로 기소됐다. 방송사들은 ‘나와는 무관하다’는 반 전 총장 입장을 1건 보도하고는 이후 보도를 내지 않았다. JTBC만이 11일, 4건의 보도를 통해 ‘반기상 부자가 처음부터 반기문 전 총장의 배경을 강조했다’ ‘반기문 전 총장이 반기상 부자의 사기 행각이 벌어지던 시점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만났다’는 의혹을 타진했다.
또 문재인만 ‘동네북’, 오보에 자기모순까지 선보인 TV조선
경쟁자인 문재인 전 대표 관련 보도는 어떨까? TV조선을 보면 대략 앞으로 펼쳐질 대선 보도의 방향을 읽을 수 있다. TV조선은 <‘혁명’ 97번 외친 문재인>(12/28)에서 문 전 대표가 ‘혁명’ 97번 말했고 ‘투쟁’ ‘대청산’이라는 용어도 자주 썼다며 열을 올렸다. ‘언론’을 90번 말했다는 이유로 ‘언론 편 나누기, 언론에 불신・적대감 표출’했다고 비판한 대목은 그 논리적 비약이 놀라울 따름이다. <창과 방패… 막 오른 '네거티브 전쟁'>(12/25)는 문 전 대표가 ‘네거티브 대응팀’을 꾸렸다면서 ‘문재인 최측근 3철’을 거론했는데 이는 오보였다. <“정치 교체는 박근혜 정권 연장”>(1/13)에서는 문 전 대표가 반 전 총장의 ‘정치교체론’을 ‘박근혜 정부 연장’이라며 반박하자 ‘반 전 총장을 보수정권 후계자로 낙인찍으려 한 것’이라 비난했다. 정작 같은 날 <반기문 ‘확실한 대권주자’?>(1/13)에서는 TV조선 스스로도 ‘빅데이터 분석 결과 대중은 반 전 총장 성향을 진보보다는 보수에 가깝다고 여긴다’고 보도해 자가당착에 빠졌다. 문재인 전 대표의 발언 하나하나를 비판하려다 오보와 자가당착까지 저지른 것이다.
반저널리즘 행태 팽배해…언론 개혁 절실
당연히 문 전 대표를 철저히 검증하고 비판할 점은 비판해야 한다. TV조선이 검증 보도가 아닌 ‘마타도어’에 몰두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지 오보를 내고 자기모순에 빠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반기문 전 총장만 이런 열성적인 검증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점이 문제다. 이는 정치적 선호의 문제가 아니다. 객관성과 공정성이라는 언론의 기본적 덕목에서 어긋난 반민주적, 반저널리즘적 행태가 만연해 있다는 점이 본질이다. 다가올 대선에서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박근혜-최순실 국정파탄’ 사태를 일부 방송사들이 이끌어냈다고 하지만 여전히 방송 언론을 정상화하기 위한 개혁이 절실한 이유이다.
이봉우(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