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박근혜 정권과 언론 현실 그리고 독재 2.0 (정연우)
[언론포커스] 박근혜 정권 1년과 한국언론의 현실
박근혜 정권과 언론 현실 그리고 독재 2.0
정연우(민언련 정책위원)
얼마전 독재 1.9라는 동영상이 큰 주목을 끌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와 미국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게 된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더 심각하다는 내용이다. 현 정권은 물리적 수단을 앞세운 독재보다 진화된 형태의 '독재 2.0'으로 가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쌓아온 민주적 토대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있어 아직 완성되기 전의 단계인 '독재 1.9'라고 진단했다. 이런 상태가 조금만 진전되면 독재2.0 체제가 완성된다고 경고한다.
박근혜대통령과 종편채널들이다.
다가오는 독재2.0 체제
독재의 완성여부는 언론에 달려있다. 형식적인 선거가 치러진다 할지라도 국민들의 판단과 의사결정의 근거가 되는 공정한 보도가 없으면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여론이 형성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언론보도는 언론장악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명박 정권 때보다도 더 심각하다. 당시에는 그나마 의식 있는 언론인들의 치열한 저항이 있었다. 권력을 비판‧감시 하려는 조직적인 노력들이 있었고 언론인 징계와 프로그램의 불방, 일부 제작진과 출연진의 교체 등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을 만들어 냈다. 시민들은 공영방송의 독립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였다. 해직을 비롯한 온갖 탄압에도 언론인들은 노동조합이나 언론단체를 중심으로 꿋꿋이 맞섰고 시민들은 깊은 신뢰와 지지를 보냈다. 4대강 사업이나 한미 FTA, 쇠고기 협상 등의 문제들을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마침내 전파를 타기도 했다. 권력의 충실한 하수인들로 구성된 방송사 경영진들의 탄압에도 비판적 의제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재집권으로 방송독립의 기대가 무너지자 내부의 비판적 목소리가 잦아들고 위축되었다. 보도와 프로그램을 통한 민주적 여론 형성의 의지마저 약해진 듯 보였다. 민주주의의 후퇴, 국가 공권력에 의한 국기 문란과 선거부정 조차 제대로 사회적 의제로 부각되지 못한다. 저널리즘의 붕괴, 편향보도에 대한 분노는 식어버리고 권력에 휘두르는 칼날에 주눅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언론사 내부의 저항은 미약해지고 사회적 주목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이명박 정권에서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탄생시킨 종편은 이제 무서운 흉기가 되어 민주주의를 압살한다. 방송 첫해에는 형편없는 시청률로 조롱거리가 되더니 점점 괴물로 성장하여 우리들의 의식과 가치판단의 암덩어리가 되었다. 몇몇 신문과 뉴스타파 등 대안 언론들이 있지만 저들이 뿜어내는 독소에 맞서기에는 너무 미약하다. 도무지 의제를 이끌어갈 힘이 부친다. 여전히 지상파 방송과 종편의 여론 지배력은 너무나 확고하다. NLL 포기 논란, 종북 몰이,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 등으로 사회적 의제를 장악해버렸다. 국가 기관의 대선 개입, 검찰 총장 찍어 내기,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비롯한 대선 공약 파기, 언론 장악 등은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찍이 밀어냈다.
참담한 언론환경과 취약해진 민주주의
이러한 언론의 무기력은 야당과 비판세력의 무기력으로 바로 전이된다. 집권 여당에 유리한 의제가 만들어 내는 여론 지형 때문에 야당에 대한 신뢰는 날로 추락하고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는 높기만 하다.
비판적 언론인들을 대거 쫒아내고 언론을 손아귀에 넣은 전두환 군사 정권 초기와 흡사해 보이지만 어떤 점에서 더욱 비관적이다. 당시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신념으로 목숨을 걸고서라도 독재정권에 맞서던 학생들과 민주세력들의 조직적인 힘이 있었다. 잔혹한 고문과 투옥에도 용감하게 맞서며 강고한 독재정권에 파열구를 만들어 냈다. 현재는 그러한 집단적 세력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시민들의 의식은 높아졌다지만 독재에 길들여지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종편의 편향적 보도로 오히려 지상파 방송이 공정해보이기까지 하는 착시현상을 불러왔다. 종편의 터무니없는 저질 왜곡 편향 보도 탓에 KBS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질 지경이다. 민주적 여론 형성의 기반인 언론 환경은 훨씬 참담해졌고 그만큼 민주주의는 취약해졌다.
수 십년에 걸쳐 쌓아온 민주주의의 토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마저 허물어지면 언제 이를 회복할지 요원하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마지막 가쁜 숨을 쉬고 있다. 동영상에 나오는 장 자크 루소의 말대로 ‘시민이 탐욕, 나태, 소심해서 자유보다는 평온함을 선호할 때는 ... 주권은 마침내 소멸한다’.
이런데도 당장의 선거에 다급하다고 종편에 투항하는 정치세력에게는 미래가 없다. 독재 2.0 완성을 돕는 부역자가 될 뿐이다. 종편 편향성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꼴이고 자신을 겨누는 독화살로 돌아올게 분명하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눈이 어두운 정치세력과 언론인들을 견인해야하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다. 또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서 시민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조직화하는 것이 언론이다. 시민들과 언론인들의 연대와 신뢰 없이 독재의 완성을 막아낼 길은 보이지 않는다. 머뭇거릴 시간이 우리에게는 별로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