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삼성과 언론, 길은 있는가? (김동민)
[언론포커스] '또 하나의 약속' 관련 언론보도의 문제점
삼성과 언론, 길은 있는가?
김동민(민언련 정책위원)
황상기씨가 올 1월 27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이다. “저는 유미가 백혈병에 걸린 이유를 찾고자 여기저기 방문했지만 가는 곳마다 거절당했습니다. 나를 좀 도와 달라고 정당, 언론사, 사회단체, 노동단체를 찾아 다녔지만 모두들 삼성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기자는 저널리스트로서 뉴스로서의 가치가 있으면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이지 그걸 왜 싸운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삼성을 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사고방식일 것이다. 삼성에 대해 진실을 보도하면 적이 되는 대한민국. 그것이 두려워 진실에 눈을 감고 귀를 막는 소위 기자와 언론사.
미국의 CNN이나 BBC World에 필적할만한 뉴스 전문채널을 지향하며 2006년 개국한 프랑스24TV는 작년 12월 11일 보도한 7분 가량의 '산업재해, 메이드인 삼성?' 이라는 제목의 리포트에서, 삼성이 취재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보도자료로써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려 했고, 언론은 이 보도자료를 충실하게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의 본분을 망각한 이런 태도 또한 영화에서 확인한 바다.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은 언론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삼성의 태도를 비판하고 언론보도의 문제를 지적하면 될까? 지금까지 다들 그래왔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그것만 가지고는 삼성이고 언론이고 절대 바뀌지 않는다. 그저 양심을 속이지 못해 용감하게(?) 발언했다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여기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불이익 당할 것도 없으니 용감하달 것도 없다. 먼저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행동해야 한다. 삼성이 시장권력으로서 사실을 은폐하고 언론이 광고 때문에 이를 감싸고 있다는 인식은 피상적이다.
삼성과 언론은 가족이다. 부모형제 이상으로 애정이 넘치는 아주 끈끈한 가족이다. 이는 한국에만 있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유럽은 다를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평소에는 언론이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것 같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본색을 드러낸다.
CNN이나 BBC와 마찬가지로 프랑스24TV도 마치 한국의 언론이 보도하지 못하는 사안을 보도하는 모범적인 방송처럼 보이지만, 프랑스의 국익과 관련되는 사안이 발생하면 편파적이 된다. ‘국익’이라는 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특정 기업이 아닌 자기 나라 자본 일반의 이익에 대해서는 편파적이 되는 것이다. 왜냐면 그들도 가족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침략의 시기로부터 최근의 잦은 국제분쟁에 이르기까지 이 매체들이 보여준 태도들이 증명해준다. 독점자본의 이익을 국익과 애국심으로 포장하는 독점자본의 대변인인 것이다. 따라서 어설픈 비판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민들이 달라져야 한다. 정치가 국민들의 수준을 반영하듯이 기업이나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이건희 회장이 정치를 삼류라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삼성이 일류인 것은 아니다. 기업실적은 일류일지라도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삼류인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삼성을 흠모해마지 않는다. 2년 전 잡코리아가 대학생 1천명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장 존경하는 CEO로 삼성전자의 최지성 부회장을 꼽았다. 국민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을 꼽으라면 늘 이건희다. 무얼 존경한다는 것일까? 맹자는 “사람은 누구나 모두 남에게 모질게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서 위험에 처한 사람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자기 회사에서 산재를 당해 죽음에 이른 노동자를 측은하게 대하지 않고 개인적 질병이라며 모질게 해치는 기업과 기업인, CEO. 그리고 그들을 존경한다고 하고, 그리고 또 그런 기업의 대변인 역할을 자임하는 신문과 방송을 언론이라 칭하며 구독하고 시청하는 국민들.
발상의 전환이 필요
그러나 아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독점자본과 가족관계인 기존의 언론을 생각하면 희망이 보이지 않지만, 대안언론의 가능성을 들여다보면 희망이 보인다. <또 하나의 약속>과 같은 영화도 대안언론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삼성을 흠모하지만, 그런 반면에 적지 않은 사람들의 참여와 헌신으로 국가기관과 거대언론도 피하는 삼성과 싸우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삼성의 가족이 된 사이비언론이 외면한 진실을 알리는 훌륭한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화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언론운동도 본질을 직시하지 않으면서 기존 언론을 개혁할 수 있다고 믿고 늘 하던 방식대로 해서는 희망을 만들 수 없다. 갤럭시폰 안 쓰기 운동도 해야 한다.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이 된 언론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언론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교체의 대상일 뿐이다. 언론권력이 교체되어야 국민들의 사고방식이 바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