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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농락한 책임 누가 질 건가 (안건모)
등록 2014.03.04 13:56
조회 1128

 

[시시비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보도한 언론의 문제점

시민 농락한 책임 누가 질 건가  

 

 

 안건모(작은책 발행인)

 

 

지난해 2013년 1월 21일 동아일보는 현직 서울시 공무원이 간첩 혐의로 구속됐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탈북자 1만 명 정보 통째로 북에 넘긴 정황>이라는 제목이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유 모씨가 2004년 탈북 후 북을 드나들고 2011년에 서울시 계약직 취업 탈북자 출신 공무원이 간첩 협의로 처음 구속됐다고 했다. 그 옆면엔 ‘위장 탈북으로 남한에 들어온 간첩들’이라는 표를 만들어 원정화, 김명호 등 대여섯 명의 구속자 명단을 보여 주었다. 마치 우리나라가 간첩들이 판을 치는 나라처럼 보였다.

 

 

                                               2013년 1월 21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 캡쳐 사진 

 

 

조선‧동아를 보면 우리나라는 간첩이 판치는 나라
동아일보는 그 다음 날 1월 22일자 1면엔 <간첩 정체는 ‘탈북자 행세한 화교>였다”고 못을 박는다. 3면엔 “주민번호 2차례 바꾼 유씨, 제대로 조회도 않고 공무원 임용”이라면서 탈북자 때문에 사회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도 마찬가지다. 2013년 1월 22일 <서울시 ‘탈북 공무원’이 간첩 활동>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다. 그 기사를 읽어 보면 국가 정보원 입을 빌려 위장 탈북한 것으로 보고 공안당국에서 수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수사 중인 내용인데 제목은, ‘논란의 여지없이 간첩’이라는 기사다. 이런 신문들을 보고 있으면 이 사회가 온통 간첩이 나대고 있는 위험천만한 사회로 보인다. ‘서울시가 간첩도 거르지 못하고 공무원을 임명했다’며 여론은 들끓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으로 비난받던 국정원은 다시 ‘국가 안보의 기둥’으로 우뚝 섰다.


그런데 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재판에서 지난해 2월 26일 유 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오빠가 간첩이라고 실토했다’던 동생이 “국정원의 회유·압박으로 거짓 진술한 것”이라며 증언을 뒤집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해 진술한 유 씨의 동생과 유씨 변호인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동생의 자백은 사실상 국정원 수사관의 고문에 가까운 압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검찰이 기소한 내용은 보수 신문에 나온 대로 ‘탈북자 1만명 정보 통째로 북에’ 넘긴 게 아니라 200명이란다. 그것조차 증거도 없었다. 국정원은 또, 압수한 유 씨의 노트북에서 앨범 사진을 발견한 뒤 유 씨가 지난해 1월 23일 북한에서 찍은 사진이라며 재판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북한이 아닌 중국 옌벤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국정원이 사용한 프로그램으로 복구했으니 국정원도 알고 있었다는 건데 왜 그렇게 거짓 증거를 내놓았을까.

 

간첩을 만드는 검찰의 무리수
그쯤에서 검찰은 잘못을 뉘우치고 손을 놓으면 좋으련만 유씨를 기어이 간첩을 만들려고 무리를 한다. 검찰은 곧바로 항소하면서 유씨가 간첩이라는 새로운 증거를 제출했다. 재판부에 새로 내놓은 증거는 유씨가 북한을 오고갔다는 ‘중국-북한 출입국 기록’이었다. 검찰이 제출한 출입국 기록을 보면, 유우성 씨는 2006년 5월 27일 오전 10시 24분 북에서 나와 오전 11시 16분께 다시 북으로 들어간 것으로 돼 있다. 이 기록이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유씨가 직접 발급받은 ‘북한-중국 출입기록’에는 2006년 5월23일 오후2시 54분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고, 2006년 5월27일 오전 10시24분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온 것으로 돼 있다.(유우성 씨는 어머니 장례를 치르러 이때 북한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왔다. 유씨도 이 사실은 시인하고 국정원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다시 북으로 들어간 기록이 없었다.


다급한 검찰은 점점 시궁창 속으로 빠지는 짓을 한다. 조작 논란이 벌어지자 검찰은 ‘유씨의 출입국 기록은 중국이 발급해 준 진짜 서류’라면서 허룽시 공안국이 2013년 11월 27일 보내 온 공문을 제출했다. 공문을 보면, ‘허룽시 공안국은 유우성의 출입국 기록 조회 결과를 틀림없이 발급하였음을 확인해 드리는 바입니다.’라고 써있다.


한겨레 기자 허재현 씨가 그 공문서가 너무 조잡한 게 의심스러워 중국으로 직접 가서 확인했다. 그에 따르면 허룽시 공안국은 “발급한 적 없다. 심양시 한국 영사관에서 전화는 왔었지만 무시했다.”고 설명했다. 직인 이름도 달랐다. ‘허룽시 공안국 출입국관리과’가 아니라 ‘허룽시 공안국 출입국관리대대’였다. 또 동일 문서인데 팩스번호는 두 개였고 같은 문서에 찍힌 도장 위치도 달랐다. 또한 허룽시 공안국의 도장까지 위조했다는 의혹까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무려 일곱 군데나 있었다.


중국 영사부는 2014년 2월 13일 국가정보원이 검찰을 통해 법원에 제출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관련 중국 공문서가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중국 영사부는 회신서에서 “한국 검찰 쪽이 제출한 위조 공문은 중국 기관의 공문과 도장을 위조한 형사범죄의 혐의를 받게 되며, 이에 대해 중국은 법에 따라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하면서 “범죄 피의자에 대한 형사 책임을 규명하고자 하니 위조 문서의 상세한 출처를 영사부에 제공해 줄 것을 협조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왜곡보도로 일관하는 수구언론들
이쯤 되면 조선, 중앙, 동아일보도 그동안 잘못 보도한 데 대해 사과하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수구 신문들은 끝까지 왜곡 보도하고 변명하고 문제의 핵심을 돌리려고 한다. 지난 2월 25일 프리미엄 조선일보는, (중화인민공화국은) “위조 경위에 대해 수사에 착수해 최근 허룽(和龍)시 공안국과 허룽시 싼허(三合) 변방검사참(출입국관리소) 관계자를 상대로 대규모 조사를 벌인 것으로 24일 알려졌다”고 하면서, “이번 조사로 허룽시 출입국관리소장 격인 변방검사참 대대장이 최근 우리 정보 당국과 접촉한 혐의로 보직 해임돼 대기 발령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그걸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출자 수사 나섰다는 건 증거 위조·조작이 아니라는 뜻이란다. 어이없다. 공식적인 한국 정부가 아닌 국정원과 접촉했기 때문에 처벌받았다는 건 상식 아닌가?


또한 조선일보는 은근히 사건의 핵심을 어지럽히고 관심을 다른 쪽으로 쏠리게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재판부에도 회신을 보냈는데, 조선일보는 ‘이 회신을 민변에 먼저 유출한 배경에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억지를 쓰고 있다. 또 조선일보는 중국 소식통이라는 취재원이 "김일성대학을 졸업하고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일했던 친북 성향의 한 영사가 자국민 보호를 위해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고 했다. 문서를 조작한 자가 누구인가 찾고 있는데 웬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걸까? 그리고 그런 의혹을 던지는 중국 소식통은 누굴까? 혹시 조선일보 기자 아닐까?


조선일보는 또, “전 세계 대부분 국가는 해외에 '화이트(백색)'나 '블랙(흑색)'이라고 불리는 정보원을 보내 정보 전쟁을 벌인다.”면서 “이번 사건으로 우리 정보 당국이 중국 동북 3성(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에 구축해 놓은 정보망이 훼손되고,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고 주제 넘는 걱정을 한다. 덧붙여 "중국 정부의 색출 작업으로 중국 내 우리 측 정보원들이 피신에 나서는 등 공황 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걱정되는 건 알겠는데, 중국에서 법을 위반했으면 처벌받아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국정원과 검찰이 나라 망신을 시켜도 유분수인데 보수 신문들까지 합세한다.


방송까지도 나라 망신시키려고 안달을 한다. 지난 20일 밤 텔레비전에서는 한 종편 프로그램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정리한다며 유씨가 서울시에서 탈북자를 관리했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유씨는 서울시에서 근무할 때 탈북자가 아니고 기초생활수급자를 관리하는 일을 했다고! 왜 이런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 보도하는지 내 머리로는 도저히 모르겠다. 이 나라에서는 간첩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걸까?


동아일보는 지난해 1월 22일 “위장 탈북 간첩에 농락당한 책임 누가 질 건가” 하고 큰소리를 쳤다. 나도 한마디 하자. “무고한 사람을 간첩이라고 했던 신문 기사에 농락당한 책임 누가 질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