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간첩사건 증거조작 vs 언론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조작”
[참견]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위조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비평
간첩사건 증거조작 vs 언론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조작”
민주언론시민연합
지난해 1월, 국정원이 ‘간첩’으로 지목한 유우성 씨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1심에서 핵심 증거로 제출됐던 여동생의 ‘증언’이 국정원의 폭력과 협박에 의한 ‘허위진술’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곧바로 ‘항소’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지난 15일 유우성씨와 변호인단이 검찰 제출 문서가 '위조'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기자회견
하는 모습. 출처는 연합뉴스
그런데 지난 14일, 항소심에서 국정원과 검찰이 유 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한다며 재판부에 제출한 문서가 ‘위조문서’라는 것이 밝혀졌다. 중국 화룡시 공안국에서 발행한 것으로 나와 있는 유 씨의 ‘북한-중국 출입경 기록’ 공문서가 ‘위조’라는 것이다. 중국 대사관은 재판부에 공식적으로 관련 사실을 통보했으며, 자국 공문서 위조에 대한 자체 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혀 외교문제로 비화될 조짐이다.
당초 1심에서도 검찰과 국정원은 유 씨가 북한에서 아이폰으로 찍었다는 사진을 증거로 제출했으나 아이폰 위치정보를 조회한 결과 해당 사진은 중국 옌지에서 찍은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인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진 정보를 검찰이 몰랐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알고서도 증거를 조작한 것이면 가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가 이번 항소심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과 검찰의 ‘무리수’와 ‘무능’, 혹은 ‘조작 의혹’이 드러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좀 더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사건이 발생된 시기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유 씨가 구속된 지난해 1월은 2012년 대선이 끝난 직후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붙었던 시기이다. 국정원 직원이 오피스텔에서 선거 관련 댓글 등을 퍼 나르며 여권 후보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여론 조작을 벌이던 정황이 드러나 ‘진상규명’과 ‘철저한 조사’에 대한 여론이 높아졌다. ‘국가정보기관의 최정예 요원들이 댓글을 달고 있다’는 국정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 때 국정원에서 갑작스럽게 발표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공교롭게도 ▲폭력과 협박에 의한 거짓 진술 강요 ▲사진 증거 조작 ▲공문서 위조 등 끊임없는 ‘증거 조작’ 논란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국정원과 검찰이 ‘국면전환’을 위해 ‘무리한 조작사건’을 만든 것이 아닌가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권력 감시 기능이다.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과 ‘국가정보기관’이 수사 증거를 조작했을지 모르는 상황에 대해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자칫, 정권과 검찰 등의 이해관계에 의해 국민 개개인의 권리침해는 물론이요,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8일 민언련이 발표한 ‘서울시 간첩사건 증거 위조 관련 신문 방송 모니터 보고서(바로가기)’를 보면, 언론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는커녕, 오히려 사건의 본질을 가리는 데 급급한 언론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민언련 보고서에 따르면, MBC와 조선일보는 중국 대사관이 재판부에 ‘위조문서’라고 통보한 날 관련 보도를 내지 않고 침묵한 뒤, 이틀이 지나 검찰의 공식입장이 나온 이후에야 관련 보도를 내놨다. 특히 MBC는 중국 대사관의 입장조차도 ‘민변의 주장’으로 왜곡하며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전하지 않는 행태를 보였다.
조중동은 사설을 통해 ‘검찰의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현재 국정원과 검찰은 ‘증거조작’을 한 주범 혹은 공범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태이다. 그런 검찰에게 ‘진상규명’을 하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주장만을 내놓고 있으며, 법사위 야당의원들이 제시한 ‘조작 증거’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보도태도는 왜곡과 은폐를 기반으로 한 ‘또 하나의 조작’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보도에서도 언론의 ‘조작’은 그대로 드러났다. 어떻게 해야 할까.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에 국가기관이 개입하고, 국가기관에 의한 온갖 조작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정권의 하수인을 넘어 적극적인 ‘공범’이 되기를 선택한 언론들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