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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 도를 넘어선 민경욱의 순간이동 (김고은)
등록 2014.02.1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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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민경욱 대변인 선정과 정치권에 진출한 언론인 비판적 점검

강호의 도를 넘어선 민경욱의 순간이동

               

 

 김고은(기자협회보 기자)

 


지난 5일 언론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있었다. 민경욱 전 KBS 앵커의 청와대 대변인 내정. 100여일 전까지만 해도 KBS 9시 뉴스의 간판 앵커였던 현직 문화부장의 청와대 직행 소식이 던진 충격파는 컸다. KBS 기자들은 일제히 ‘멘붕’에 빠졌고, 타사 기자들도 ‘강호의 도가 떨어졌다 한들 이럴 수가 있나’라며 혀를 내둘렀다. 청와대가 연출하고 민경욱이 주연을 맡아 열연한 이 촌극은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한편의 블랙코미디였다.

 

 

 

 

                          KBS 전 앵커 출신 민경욱 기자가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된 후 소감을 말하고 있는 모습. 출처는 연합뉴스.

 

 

 

언론인의 정치권 진출이 이제는 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인데, 민 씨의 행보는 해도 너무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알려진 대로 민 씨는 청와대의 대변인 내정 발표가 있던 당일 아침 보도국 편집회의에 참석했고, 단신 기사 승인까지 냈다. 그리고 한두 시간 만에 청와대로 ‘순간이동’해 신임 대변인으로 기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의 손에는 국민의 ‘소중한 수신료’로 지급된 스마트폰이 들려져 있었다고 한다.

 

더 황당한 것은 KBS의 태도였다. 민 씨에 대해 뉴스 앵커와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등의 정치활동을 제한한 KBS 윤리강령 위반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KBS는 “청와대 대변인은 선출직이 아닌 공직으로 윤리강령 위반 사항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민 씨는 물론 미래에 청와대행을 꿈꿀 제2, 제3의 ‘민경욱들’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다. KBS는 또 5일 민 씨를 의원면직 처리하면서 대변인 임명 하루 전인 4일자로 ‘소급’ 적용을 하는 ‘관용’을 베풀었다. 이미 면직된 사람이 그날 9시 뉴스에 나와 데스크분석을 하고 다음날 편집회의까지 참석했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해명조차 하지 않았다.

 

백번 양보해 민 씨에게도 나름의 말 못할 사정이 있었을지 모른다. 청와대에서 철저히 보안을 요구했을 테고, 공식 발표가 나기 직전까지 확답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는 ‘순간이동’에 대한 세간의 비난을 무릅쓸 각오를 하면서까지 청와대의 낙점만을 애타게 기다린 꼴이 된다. 그런 점에서 지난 3일자 9시 뉴스는 ‘전파의 사유화’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KBS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의 국내 관광 활성화 방안을 지상파 3사 가운데 유일하게 톱뉴스로, 게다가 두 꼭지로 보도했다. 보통 대통령 기사는 청와대 출입기자가 맡는데, 특이하게도 이날 리포트는 문화부가 맡았다. 당시 문화부장을 맡고 있던 그가 대변인 임명을 이틀 앞두고 청와대에 ‘충성’을 보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바로 이 같은 의혹이나 우려의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윤리강령을 만들어 앵커나 뉴스 제작자 등의 정치활동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직업윤리를 기대하기에 작금의 언론 상황이 정치의 영역과 너무 많이 혼재되어 있다. 정권이 언론에 간섭하고, 언론인이 정치를 하는 일이 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정권의 ‘주구’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아온 공영방송 KBS의 앵커 출신이 권력의 ‘입’을 자처하며 청와대행을 택한 것은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어제까지 기자였던 이가 오늘 정치인으로 돌변하는 사례를 열거하자면 입 아플 정도다. 선거 때마다 정당별 공천경쟁에 뛰어들고, 대선 때는 선거 캠프에서 ‘특보’란 이름으로 활약하는 ‘폴리널리스트’들이 넘쳐난다. 4년 임기가 보장되는 의원 배지 대신 청와대행을 택하는 언론인도 많다. 가장 두드러졌던 시기가 이명박 정부 때였다. 이명박 정부는 ‘프레스 프렌들리’ 기조를 내세워 언론인 출신을 대거 요직에 기용했다.

 

이동관 전 동아일보 정치부장(홍보수석), 김두우 전 중앙일보 정치부장(홍보수석), 유성식 전 한국일보 정치부장(선임 행정관), MBC 앵커 출신 김은혜 기자(대변인) 등이 그들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또 한편으론 ‘방송장악’ 시나리오에 따라 선거특보 출신인 김인규 씨를 KBS 사장에 임명하고 김재철 사장을 MBC에 내려 보냈다. 청와대나 여의도로 간 언론인들은 잠깐 비판 목소리를 감수하면 그 뿐이었고, ‘낙하산’ 사장들 역시 안팎의 비난 여론에도 건재했다. 그들이 어떤 법적·도덕적 심판도 받지 않은 까닭에 ‘언론장악’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재앙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민 씨의 청와대행에 대해 KBS 기자들과 언론노동자들이 그토록 분노하고 절규했음에도 불구하고 TV 뉴스와 신문은 그가 전하는 브리핑을 아무 거리낌 없이 타전한다. 그를 앞서간 많은 ‘민경욱들’에게 눈감아줬기에 지금의 민경욱이 있고, 앞으로도 또 다른 ‘민경욱들’이 나올 것이다. 그 책임은 물론 피해는 모든 언론인과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해법은 물론 언론인 자신에게 있다. 공자님 말씀 같지만 감시와 견제라는 언론 스스로의 본령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해법이자 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