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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해직 언론인 복직 소송과  진화하는 사법부 (김종철)
등록 2014.02.0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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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해직 언론인 복직 등 MBC파업에 대한 법원의 판결

부당해직 언론인 복직 소송과  진화하는 사법부

 


    김종철(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자유롭고 공정한 매체를 이루기 위해 권력과 맞서 싸우다 해직당한 언론인들에게 2014년 새해가 밝자마자 기쁜 소식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소식은 1월 8일 부산고법 제1민사부(부장판사 문형배)에서 나왔다. 이정호 전 부산일보 편집국장이 회사를 상대로 낸 대기처분 무효 확인소송 2심에서 1심처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었다. 


1월 17일 서울남부지법 제13민사부(부장판사 박인식)는 한국 언론사와 사법사에 굵은 글씨로 기록될 판결을 했다. 2012년 MBC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정영하 전 노조 본부장 등 4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징계 무효 확인소송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파업은 공정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경영진에 대해 공정성을 보장받기 위한 것으로 목적의 정당성 인정이 가능하다”면서 “징계 처분은 모두 무효”라고 판결한 것이었다.



                     2012년 MBC 노조 총파업 당시 거리 시위 모습이다. 출처는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바로 같은 날 서울고등법원 제10행정부(부장판사 조영철)는 조상운 전 국민일보 노조위원장에 대한 회사 측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원심 판결을 확인했다. 국민일보 노조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 일가’라는 거대한 교회권력이 신문을 사유물처럼 움직이는 데 저항해서 외롭고 긴 투쟁을 벌인바 있다.


그 두 판결이 나온 지 엿새 뒤인 1월 23일 서울남부지법 제15민사부(유승룡 판사)는 2012년 파업을 이유로 MBC 경영진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천문학적 액수(195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방송의 자유는 주관적인 자유권으로서의 특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와 견해의 교환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객관적 질서”이므로 “경영진이 인사권과 경영권을 남용해서 편집, 송출, 제작을 통제한다면 단체협약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회사가 융단폭격처럼 퍼부어댄 가택 압류 소송 등 피를 말리는 극한조치에 시달려온 노조원들에게 1심이 일단 ‘파업으로 인한 회사 측의 피해에 대한 책임 없음’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판결을 보고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궁지에 몰린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는 손배소는 사법살인의 민영화 같다”고 논평했다.


2014년이 오기 전인 2013년 말에도 사법부에서는 부당하게 해직당한 언론인들을 원상회복시키라는 판결이 나왔다. 11월 28일 서울중앙지법 제41민사부가 김종욱 전 YTN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정직처분 무효 확인소송에 대해 ‘무효’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 자유언론과 공정방송을 위한 투쟁에 앞장섰다가 해직당한 언론인은 모두 17명이었다. 아직 2심 또는 대법원의 판결이 남아 있지만, MBC와 부산일보, 국민일보의 해직언론인들은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했다. 이제 남은 사람들은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과 조승호·현덕수 기자이다. 그들은 2011년 11월 13일 1심 마지막 공판에서 동료 3명과 함께 ‘복직’ 판결을 받았으나 2심에서 “해고는 정당하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당했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아 YTN의 6명은 아직도 ‘해직 상태’이다.


박정희의 유신독재 이래 사법부는 자유언론을 위해 싸우다가 현직에서 쫓겨난 언론인들이 제기한 복직소송에 대해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판결을 내리는 데 급급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4년 10월부터 ‘자유언론실천운동’을 시작해서 유신독재에 큰 타격을 가한 동아일보사의 언론인 113명을 1975년 3월에 해직한 사건이다. 그들은 박정희 생시에 “정권이 동아일보사 경영진에게 압력을 가해 부당한 해고를 자행하게 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냈으나 1심부터 3심까지 “이유 없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2008년 10월 정부기구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국가가 중앙정보부 등 공권력을 이용하여 광고 탄압을 자행, 동아일보사가 이에 굴복하여 113명의 언론인을 해임하였으므로 국가와 동아일보사는 해임된 언론인들에게 사과하고 피해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동아일보사 해직언론인들의 조직인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 1백여 명은 그 결정을 근거로 2009년 12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2011년 1월 14일 선고 공판에서 “시효가 소멸되었다”는 이유로 패소 판결을 받았다. 2012년 3월 23일의 2심 선고 공판에서도 똑같은 판결이 나왔다. 동아투위 위원들은 곧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2년이 가까워지도록 아직 재판 날짜도 통보하지 않고 있다. 부당하게 해직당한 지 39년인 데도 그들은 복직과 명예회복을 이루지 못한 상태이다.


이제 사법부 일각에서 2014년을 맞아 헌법에 보장된 언론인의 권리를 되찾아 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자유롭고 공정한 언론이 되살아나도록 법적으로 확실한 근거를 마련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날이 갈수록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박근혜 정권의 언론 탄압에 대한 경고라는 의미를 갖는다. 

 2014년은 ‘말의 해’이다. 사법부에 ‘이성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는 법관들이 갈수록 늘어 말처럼 힘차게 솟아오르면서, 해직의 고통을 안고 사는 언론인들을 그 멍에에서 풀어줄 뿐 아니라,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을 비롯해서 권력과 대자본의 압제와 수탈에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자유와 희망의 빛을 주기를 간절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