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KBS의 인적청산 없는 수신료 인상은 독버섯에 거름주기다 (최성민)[언론포커스] KBS 수신료 인상에 부쳐
KBS의 인적청산 없는 수신료 인상은 독버섯에 거름주기다
최성민(방송독립포럼 공동대표. 전 KBS 기자,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현재 KBS 수신료 인상 불가의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되는 것은 공정방송 장치 마련과 국민 여론 청취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기 KBS 이사회가 인상안을 만들 때는 형식적이나마 전국 공청회 등 국민여론 수렴 시늉을 한 바 있다. 그 인상안도 ‘민주당 도청’ 혐의로 좌절되었다. 그러나 이번 이사회에서는 안팎의 강한 요구해도 불구하고 공정방송 장치 마련은커녕 국민여론 수렴과 관련해 형식적인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사회와 경영진,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새누리당쪽 ‘파견자’들이 모종의 전략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윗선의 ‘불통’과 ‘밀어붙이기’ 행태를 코스프레 하는데 자신있고 뻔뻔해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나는 KBS에 근무했던 사람으로서 수신료 인상은 KBS 내부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반 국민적 악질 인적요소에 대한 청산이 선행되지 않는 한 ‘정권 해바라기’들에게 거름(영양소)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독버섯에 독물을 주입하여 독성을 강화시키는 일과 같은 것이다. 그 강화된 독성은 바로 국민의 정치적 의식수준을 더욱 마비시키는 등 국민의 인간다운 가치관과 인성을 죽이는 독소로 작용할 것이다.
12월 10일 언론시민단체들이 KBS 여당추천 이사들의 수신료인상 의결 움직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돌이켜보자면, KBS 수신료 인상은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시절에도 번번히 좌절되었다. 여야가 입장이 바뀌어 이사회의 인상안 결의 과정이나 국회에서 반대한 탓이다. 매번 반대의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지만 내심 정권 홍보방송이 될 것임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KBS 내부가 역사적으로 정권 해바라기들에 의해 분탕질 당해왔음을 말해준다.
KBS 내부의 ‘정권 해바라기들’이란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떤 성격을 갖는 자들인가? 이는 한국의 반 민주 정권의 역사와 KBS의 역사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그 구조와 성향이 훤히 드러난다. KBS는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와 더불어 문공부 산하 기관으로 출발했다. 애초에 독재정권의 홍보도구로 발을 내딛으면서 문공부에서 파견한 공무원들이 KBS를 점거함으로써 ‘정권 홍보’ 사명(?)의 씨앗이 굳건히 발아돼 뿌리내렸다. 이후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 및 유신정권, 그것에 이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의 쿠데타 정권 및 위장 문민정권의 공화당-민정당-한나라당과 오늘날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에 이르기까지, KBS의 겉 껍질이 정부 산하에서 독립된 공사가 된 이후에도 KBS 내부의 ‘권력 해바가기’ 족속들은 계속 이어지는 풍성한 영양밭에서 새끼치기, 교육, 세습을 통해 뿌리깊은 ‘토착세력’으로 강화돼 왔다.
예전에 KBS 노조가 내부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KBS 인력구조를 조사한 바 있다. 조사결과 다수의 공화당 당료, 국회의관 보좌관 출신(이른바 ‘공화당 가방모찌’), 중앙정보부 출신, 공무원 및 국가기관 출신들이 독재정권의 낙하산을 타고 KBS에 투하돼 왔음이 밝혀졌다. 이들 중엔 학력위조자들도 적잖게 들어 있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엔 더욱 가관으로 ‘학도호국단’ 출신들이 ‘정권호위병’으로 KBS 본사와 각 지역국에 투입되었다. 정규적 제도화를 통해서였다. 정권 홍보와 호위를 위해 정권의 낙하산을 타고 들어온 자들의 지역 성향 또한 정권의 지역 성향과 어떤 보색을 이루어 왔는지는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KBS 내부의 정권 해바라기 성향과 특정지역 지향성은 이러한 악질적인 KBS 인력구조의 틀에 판박이 되고 구워지는 ‘교육’을 통해 ‘세습’되고 강화돼 왔다는 데에 오늘날 KBS 뿐만 아니라 국민적 역사적 비극의 뿌리가 있다. 역대 사장 이래 보도국의 경우 핵심 부서인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는 정치지향성 해바라기들이 일종의 세습적 배타적 ‘라인’을 형성하여 지배권을 휘둘러왔다. 이들은 정치권과 더불어 호흡하며 인맥을 형성하고 드디어는 정권의 후원을 받아 국회의원, 정부의 요직, 정부 산하기관장으로 진출한다. 그동안 KBS 앵커 출신이나 기자 출신들이 한나당과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된 숫자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더 심각한 것은 KBS 이사장과 사장은 물론, 방송통신위원회 및 그 산하 기관 핵심 요직을 이들이 도맡아 실로 광범위한 유기적 인맥 카르텔로써 KBS의 정권 홍보 방송, 나아가서는 수신료 인상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 한때 인적청산의 기회가 있었으나 외부에서 단기필마로 들어가 이런 KBS 인력구조에 매몰당해 문제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사장으로서는 역부족이었다. 또 KBS 내부에 이런 ‘정권 해바라기’들에 대비되는 양질의 인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나, 정권 해바라기들이 깊은 뿌리로써 ‘교육과 세습’ 체제를 통해 정권(정부, 국회, 방통위 등 방송관련 기관)과의 공생관계를 확장 대물림하는 추세를 이겨낼 수 없었다. 80년 전두환 정권의 ‘언론 대학살’에서 KBS에서 언론자유운동 기자들을 가장 많이 강제해직 시킨 사례, KBS 새노조 파업시 간부들이 떼로 나서서 각개격파하고 평소에도 새노조원들을 방송 참여에 철저히 배제시키고 인사불이익을 주는 행태, 어용 구사대 괴물노조를 만들어 새 노조와 사내의 공정방송 움직임을 집요하게 방해하고 괴물노조 출신들을 방송내용을 다루는 주요 기구와 각 부분의 핵심 간부로 중용하여 ‘정권 해바라기’성 아부문화를 계속 배태시키고 있는 작태가 이를 증명한다.
KBS에서는 국민 앞에 수신료 인상안을 던져놓은 지금도 기존의 정권 해바라기성 아부문화 강화를 위한 기도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내부 통신망인 코비스(KOBIS)에서 공정방송을 주장하고 경영진을 비판하는 글을 막기 위한 내부 언론통제를 실시중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 코비스는 KBS의 ‘정권 해바라기’ 문화 전파의 도구가 돼왔다. 낙하산 사장 옹립시나 수신료 인상안을 밀어붙일 때마다 코비스는 사장과 경영진에 아부하는 글과 새노조를 비롯한 사내 양심세력의 공정방송 노력을 훼방하는 글을 올리는 창구가 되어 왔다. 그리고 그런 글을 올린 자들은 대부분 중용돼 왔다.
과거 자유당 정권 이래 한 번도 개선의 여지없이 계속 교육-세습-강화돼 온 KBS의 정권(권력) 해바라기 문화, 그것에 절은 자들을 이사장, 사장, 이사진, 방통위 간부, 한나라(새누리)당 국회의원으로 배출해 온 KBS. 이 독특하고 괴기스런 조직에서 사장과 경영진을 비판하거나 반기를 드는 것은 정권에 대한 ‘불순자’이고 곧바로 인사 불이익으로 되갚음당한다는 인식이 KBS 내부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반 역사적 반 국민적 ‘정권 지향성’ 해바라기 문화를 주도하는 KBS 내부의 악성 인자들을 청산하지 않고 수신료를 인상해 주는 것은 국민의 선량한 혈세로 독버섯을 키우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