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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왜곡과 보수 공론장 이용자들 (송경재)여론 왜곡과 보수 공론장 이용자들
송경재 (경희대학교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어느덧 2013년도 저물어 가고 있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겠지만 2013년도 다사다난했다. 희망찬 새해를 준비하는 세밑임에도 여전히 우리사회는 혼란과 어둠이 가득하다. 특히 사회정치적으로 우리 사회는 혼돈의 시간을 보냈다. 연초부터 개성공단 폐쇄와 가동재개,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문에 인사 난맥상, 밀양송전탑 논란. 그리고 다시 북한의 장성택 실각과 처형, 최근에는 코레일 파업까지 그야말로 숨 가쁘게 지나온 날들이었다.
미디어 환경만을 보자면 2013년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숙제를 남겨 두고 있다. 지난 정부부터 여전히 해직 언론인은 양산되고 있고, 종합편성채널의 편파보도와 공영방송의 공적 기능은 심각히 훼손되고 있다. 신문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일보 사태가 있었고 지역신문은 여전히 경영상의 난맥상이 남아있다. 인터넷 언론사들의 입장도 다를 바 없고 포털과 신문사들 간의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이라는 큰 사건
하지만 2013년을 관통했던 중요한 사건이 있다. 그것이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한 대선개입 사건이다. 2012년 대선기간동안 일어났던 사건이 1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를 둘러싼 대선불복 논란과 특검을 도입하자는 정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언론운동단체를 비롯해 광범위한 시민사회에서도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방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은 놀라운 사건이다. 특히 한국은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부정선거 트라우마(trauma)가 내재해 있는 사회이다. 1960년의 3.15부정선거는 4.19라는 사상 초유의 학생혁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1970년대 유신시대와 1980년대 권위주의시대를 관통했던 것이 바로 관권, 금권선거였다. 아마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헌법기구로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헌법기관으로 존재하는 이유도 이러한 부정선거의 트라우마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은 각 주정부 소관으로 그리고 일본도 총무성에서 선거업무를 담당한다.
선관위가 독립기구로서 출범한 이후 한국의 선거제도는 투명성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대선에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이 드러나면서 1년 동안 국가적 쟁점이 되었던 것이다.
보수 언론의 다양한 채널을 이용한 사각동맹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에 대한 정부여당의 안일한 인식이다. 국가기관의 직원이 선거중립성을 위반하고 선거에 관여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사건임에도 개인의 일탈이나 일부 공무원들의 개인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보기관에서 진행되었다면 단지 조직적이지 않았다는 변명은 의미가 없다. 이는 아직 사건의 엄중함을 잘 인식하고 있지 못하거나 정치적인 계산에 의해서 이번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을 보고 있다는 안일함의 반영일 것이다.
그런데 사건의 진상이 검찰 수사와 일부 언론의 보도에 의해 드러나면서 우리는 충격적인 현상을 발견한다. 이른바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에 작동하는 보수언론의 사각 스캔들이 형성되었고 이를 국가기관에서 선거 개입으로 이용했다는 정황이 발견되었다.
ⓒ오마이뉴스, 봉주영
그 전모는 이렇다. 이번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은 트위터 등의 SNS 계정을 만들어서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정황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언론보도마다 차이는 있지만, 수 만 건에서 수백만 건에 이르는 글들이 유포되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검찰이 조사하고 당사자들도 인정한 것도 수 만 건이나 된다. 그런데 이 글들이 유포되는 경로를 보면 유사한 패턴이 발견된다. 먼저, 일부 언론이나 종합편성채널에서 친정부적인 스핀닥터들의 추측성 발언 내지는 사견이 보도된다. 특히 종편의 경우 자극적이고 편향적인 시각을 가진 인사들이 참여하여 토론 내지는 좌담회를 실시한다. 그 내용이 인터넷 게시판에서 확산되고, SNS에서 이 글들이 퍼져나간다. 그리고 다시 언론에서는 인터넷 여론이란 명목으로 다시 이 글들이 재유통된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른바 보수 논객이라 불리는 SNS의 빅마우스(big mouth)들이 SNS에 글을 게시한다. 개인적인 정치관련 글이거나 특정 후보를 찬성, 반대하는 글이다. 이 글은 SNS에서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이들에 의해 유통된다(물론 일반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럼 이것이 트위터나 인터넷 여론으로 인용되어 다시 일부 보수신문사와 종편의 뉴스가 된다. 그리고 한번 보도된 뉴스는 다시 SNS와 인터넷에서 리트윗되면서 유통된다.
이런 과정은 기존의 보수 언론사와 종편, SNS 논객 그리고 이를 확산한 이들까지 4개의 축이 잘 맞물리면서 만든 공동작품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간에 인터넷과 SNS 상에서 왜곡된 여론이 형성될 수가 있다. 여기서 글을 확산하고 유통하는데 국가기관의 공무원과 군무원이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여론의 왜곡, 심각한 위기
인터넷은 2002년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바와 같이 참여지향적인 매체이다. 과거 전문가 중심의 뉴스 공급자와 수용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을 무너뜨리고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뉴스의 공급자, 유통자, 수용자 역할이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인터넷은 등장 초기에서부터 몇 가지 우려는 있었다. 너무 많은 다수가 참여하다보니 그 정보의 진실성이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여전히 뉴스의 공신력은 언론사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상의 정보를 이용해 취재를 하지만 사실 검증을 통해 진실과 허위를 구분하여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조직적인 여론왜곡의 가능성은 한국 인터넷 공론장의 심각한 위기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미 한국 인터넷 공론장은 과잉 이념화되어 극단적인 대립과 파편화가 진행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공론장에 조직적으로 의도를 가진 집단 또는 개인이 개입을 할 경우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기도 하고 중요한 정보가 묻혀버리기도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기존의 보수언론사들의 시각에 따라서 재구성될 수도 있다고 본다면 심각한 문제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사건은 단순한 정치적인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질서를 구축하고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에 대한 처벌, 그리고 책임자 문책 등이 따라야 한다. 그리고 언론 차원에서도 이러한 왜곡된 인터넷 공론장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짚어 봐야 한다. 그리고 바람직하고 건강한 비판적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시민사회의 감시와 노력도 더욱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