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2023)_
공영방송 어찌 할 것인가? (고승우)공영방송 어찌 할 것인가?
고승우(언론사회학 박사)
공영방송의 뉴스 보도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추락해 그 위상이 크게 일그러져 우려와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사장 투하와 미디어 악법 날치기 통과에 이은 종편 채널 무더기 허가, 공정방송 쟁취 파업 투쟁과 대량 징계파동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공영방송은 정상적 보도의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 버렸다.
특히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 불거진 국정원의 대선 불법 개입 사건과 관련해 공영방송이 보여준 보도태도는 사회의 목탁이라는 위상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민주주의의 첫 단계인 선거가 국가기관에 의해 유린당한 것은 시민사회의 사활적 이해관계와 직결된 헌법과 민주주의가 파괴, 유린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국정원 사태에 대해 공영방송은 21세기 한국형 보도지침에 휘둘리는 딱하고 추한 모습을 반복했다.
공영방송은 국정원을 규탄하는 시민사회의 시국선언, 촛불 집회가 발생한 초기에 그에 대한 보도를 철저히 외면했고 마지못해 보도할 경우 뉴스 시간 뒷부분에 끼워 넣어 비중을 약화시켰다. 또한 보수, 진보 단체의 맞불 집회라는 틀에 가두고 검찰 등에 의해 새로운 범죄 혐의가 들어날 경우 여야의 정쟁 대상이라는 기사 형식으로 초점을 흐리는 일을 반복했다. 국정원이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것이 분명한 공안 사건에 대해서는 청와대나 국정원의 나팔수와 같은 역할에 열을 올렸다.
공영방송은 천주교 시국 미사의 ‘박 대통령 사퇴 촉구’ 요구를 종북으로 몰아가는데 앞장서면서 대선 부정선거에 대한 종교계의 규탄 움직임도 종교계 내부의 갈등이라는 틀 속에 가두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공영방송은 국가기관의 국헌 문란 범죄 행각에 대해 탐사보도는 거의 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송두리 채 위협하는 선거 부정 사건이라고, 외압에 시달리던 검찰 특별수사팀이 증거를 들이댔지만 공영방송은 자율적인 사회적 파수견의 역할을 전혀 하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사이버 쿠데타와 유사한 행위에 의해 짓밟히는데도 공영방송은 언론 고유의 기능을 통한 진상 규명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단지 거울처럼 사태와 관련된 정당이나 청와대 등의 움직임을 비춰서 단순 전달하는 정도의 작업만을 반복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공영방송의 국정원 사태나 공안 사건 보도 등이 심각한 것은 ‘심리전’과 ‘선전, 홍보’ 차원의 정보가 난무한다는 사실이다. 심리전은 적에게 승리하기 위해 거짓 정보를 당연히 유포시킨다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적을 기만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심리전의 정보를 언론이 뉴스의 형식으로 보도하는 데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즉 보도에 앞서 심리전을 수행하는 정부 기구 등이 내어놓은 정보에 대해 그 진위를 반드시 검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에 지배당하는 언론은 그런 작업을 거의 하지 않는다. 비정상적인 정보 환경에 마비된 언론은 심리전 자료를 그 진위 여부에 관심조차 없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국정원이 건네주는 자료를 로봇처럼 중계방송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에 따라 심리전 차원의 정보를 청와대, 행정부, 국정원 등은 아무 제약 없이 일상적으로 언론을 통해 유포시키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선전, 홍보’ 차원의 정보는 일반 상품이나 정부 정책 선전, 홍보에서 보듯 일부분만 진실인 정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것을 보도할 경우 가려진 진실을 찾아서 시청자나 독자에게 서비스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심리전’과 ‘선전, 홍보’ 차원의 기사들이 공영방송의 보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 신뢰도에 적신호가 켜지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공영방송의 신뢰 추락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종편 채널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공영방송의 추락은 종편 채널에게 관심도를 높여줄 수 있는 공간이 확보로 연결된다. 한 종편은 최근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 등에 대한 날선 보도를 하면서 방송 심의기구의 공격 대상이 되고 그에 따라 전체 종편의 위상 강화에 기여하는 묘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대자본이 주주인 그 종편이 구조적으로 공익적 방송을 장기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란 어설픈 추정이 나오는 것은 심각한 착시현상의 하나다. 종편의 부상 속에 심화되는 공영방송의 신뢰 추락이 강행, 방치되는 것은 음모적 시각에서 볼 때, 권력 모처가 주도하는 종편 살리기 작전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여의도 KBS 본관 부근에서 거의 매일 수신료 납부 거부 1인 시위가 벌어지면서 시민사회의 공영방송에 대한 우려와 질타가 가해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해당 방송사 내부에서는 정상화를 위한 이렇다 할 몸부림이나 투쟁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언론이 사회적 제4부의 책무를 다하는 것은 언론 조직 구성원에게 지워진 무한 책임이다. 공영방송이 처한 오늘의 사태는 정치적 상황이나 법적 제재 등이 큰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언론 당사자들이 시청자에게 알려야 할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회적 공기의 담당자로써 무거운 책임 의식과 현상 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 또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공영방송 사태의 원인이 방송 안팎에 있다 해도, 부적절한 보도 행위에 대한 책임은 궁극적으로 언론이 면키 어렵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체제의 언론이 지닌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언론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이 생략되거나 외면당할 경우 언론은 물론 그 언론이 속해있는 사회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부정과 부패에 언론이 눈감을 경우 그 언론이 존재하는 전체 사회가 부패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정상적인 보도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것은 언론이 정상적인 사회의 존속과 그 사회 구성원의 행복을 크게 하기 위해서 시장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책무와 직결되어 있다.
21세기 언론의 위상에 대해 어느 학자는 큰 틀에서 정치권력, 자본 권력과 공생 관계를 이루고 있지만 정치와 자본의 선전, 홍보 공세에 휘둘리는 경향이 강해지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과거 독재 시절의 언론이 정치권력의 총칼에 휘둘리는 것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공영방송을 포함한 오늘 한국의 언론 현실의 타개책은 무엇일까? 그것은 현실에 대한 철저한 분석에서 찾아진다.
박정희, 전두환의 총칼에 의한 언론 탄압과 통제는 사라졌지만 21세기 민주공간에 아직 남아있는 구체제의 제도와 악행, 악습이 정상적인 언론의 목을 조르고 있다. 언론 내부에서 경영권과 인사권을 장악한 정치 지향적 언론 권력이 청와대와 국정원의 하수인 역할을 하면서 언론 영역을 파괴하고 있다. 방송의 공공성, 공익성을 주장하던 양심적 언론인들이 부당한 처우 속에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하에서 부당하게 해직 당한 언론인 수십 명, 부당 징계를 당한 수백 명의 언론인이 아직 원상회복을 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은 정치권의 언론에 대한 책무는 외면하면서 국가기관 대선 개입 사태의 위기를 언론 보도를 통해 물타기 하려 시도하고 있다. 공영방송에 대해 방송심의기구는 21세기 정보사회와 전혀 걸맞지 않는 공정성, 기계적 균형 기준 등을 앞세워 공익보도, 진실 보도를 저지할 보도지침을 만들어내면서 방송 구성원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핀 것처럼 공영방송이 대내외적으로 처한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이런 참혹한 현실 속에서 생산되는 공영방송의 부적절한 보도에 대해 시민사회단체 등이 방송사 밖에서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갖는 영향력은 결정적이지 못하다. 법원조차 부적절한 보도를 지원하는 광고에 대한 불매운동을 불법이라고 판결한 상황에서 시민사회의 언론에 대한 영향력 행사는 매우 제한적이다.
국회에서 법으로 방송을 정상화시키라고 요구하는 것도 먹히지 않는다. 꽉 막힌 이 현실을 어찌할 것인가? 역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방송의 구성원, 양심적 구성원들이 일어서야 한다. 방송인 자신을 위해서, 또한 방송이라는 사회적 조직의 책무를 다 하기 위해서 할 말을 하고 할 행동을 해야 한다. 우선 심리전과 선전, 홍보 차원의 정보를 기사화하기 전에 그 진위를 검색하고 그리고 사회적 중대 사안에 대해 언론의 자율적 기능인 탐사보도 등을 통해 진실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위한 확실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