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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블랙리스트 그 ‘검은 줄’에 세워진 우리

리스트 국정운영의 부끄러움은 왜 국민의 몫인가?
등록 2017.01.1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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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고 지시받은 적도 없고, 지시한 적도, 본 적도 없다고 말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입장을 바꿨다. 지난 9일 오후 청문회에 출석한 조 장관은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 배제와 연관한 ‘문건’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이 된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1만여 명 중에 770명은 지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블랙리스트(지원 배제 명단)’로 볼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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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미만 “지원했다” 그러니 블랙리스트는 “작동 안 했다”는 이상한 셈법


문체부의 블랙리스트는 9,473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수로 최초 공개됐다.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한 문화인 594명,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문학인 754명,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한 예술인 6,517명,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한 1,608명이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정부에 비판적인 부류와 정치적으로 현 정권의 반대파에 속한 문화예술인이라는 두 부류로 구분이 가능해 보인다. 간단히 말해 반정부적인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사찰하고 검열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리스트의 최초 실물이었다. 

 

지난해 12월 26일 SBS는 소문으로만 떠돌던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직접 입수해 단독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SBS <문체부 블랙리스트 실물 입수>(12/26)는 블랙리스트 실물 문건을 보여주면서 “교수나 시인, 안무가 등 예술계 인사 48명과 영화사나 극단 등 43개 단체 등 91개의 이름”이 “야당 정치인 지지 선언에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로 명단에 올랐다고 전했다. 또한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사와 단체가 예산 삭감으로 불이익을 받았다고 폭로했고 27일에는 “민족시인 고은”도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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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가 블랙리스트 실물을 최초로 공개했지만 블랙리스트 문건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단서는 지난해 10월, 한겨레 <‘예술계 블랙리스트’ 정부 회의록서 확인>(10/11)이 최초로 제시했다. 한겨레는 당시 보도에서 “(기금 지원) 책임심의위원을 선정해놓고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 중에 지원해줄 수 없도록 판단되는 리스트가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을 안 진다는 겁니다”라는 예술위원장 발언이 담긴 예술위원회 2015년 5월 회의록을 공개해 ‘블랙리스트 추적’의 단초를 제공했다.

 

이어 올해 1월 8일 SBS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국가정보원이 관여한 사실이 문서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검증 후 통보’…국정원도 블랙리스트 작성 동원> 톱보도). 2016년 1월과 2월 두 달 사이 추가된 블랙리스트 명단에서 정부 문화사업 지원에서 배제할 이유가 적힌 란을 보면 국정원을 뜻하는 K라는 표시와 청와대를 뜻하는 B라는 표시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4일 KBS가 두 쪽짜리 대외비 문건에서 문체부 블랙리스트 작성에 국정원이 개입한 정황이 보인다고 보도한 이후 정부의 지원 기준이 정치적 잣대였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지는 보도라고 할 수 있다(<‘블랙리스트’ 국정원 개입 정황 문건 확보> 톱보도)

 

적군·블루·경찰인사 리스트도 등장했다


‘적군 리스트’가 있다는 사실도 등장했다(한겨레 1월 9일 자 1·3면, <김기춘, 박 대통령에 ‘블랙리스트’ 보고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정적인 발언을 하거나 박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단체에 속하는 인사나 단체를 가리는 리스트가 있다는 언급이 나왔다. 내 편을 뜻하는 아군이 아니면 네 편이라는 의미를 가진 적군 리스트는 여당 인사라도 박 대통령이나 정부 정책을 문제 삼았으면 모두 리스트에 포함시켜 관리했다고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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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블랙리스트처럼 청와대가 교육계 인사를 좌지우지한다는 ‘블루리스트’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1/4)에 출연한 김사열 교수는 박근혜 정부 3년 동안 15개 대학에서 총장 임명과 관련해 불상사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도 1순위 후보였던 자신을 2년 동안 임명제청을 거부했다가 2순위 후보를 제청한 교육부의 태도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내놨다. 

 

SBS의 1월 7일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는 ‘엘리트의 민낯-우병우 전 수석과 청와대 비밀노트’ 편에서는 경찰 인사 리스트를 공개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표창원 의원은 “정유라 부정입학사건 이상이다. 합격이나 불합격이 노트에 적혀 있는 대로 됐다면 사상 초유의 인사범죄”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알 측은 청와대 권력이 경찰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며, 민정수석실이 동참하거나 묵인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권과 종편의 ‘흑색 하모니’


TV조선 <최희준의 왜?>(12/26)에 출연했던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두고 “그 리스트는 반드시 필요한 리스트”라고 옹호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좌파 정권 또는 진보 정권 10년 동안 문화예술계에 반국가적인 영화나 예술활동이 많이 번져 이를 바로잡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문서로 본다고 답했다. 반국가적이고 친북적인 예술활동을 누가 판단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예술가와 그의 작품을 좌우 진영갈등으로 진단하고 블랙리스트와 같은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보는 그의 답변에 비춰볼 때 현 정권의 문화융성이 얼마나 편협하게 이뤄졌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블랙리스트는 청와대 등이 최순실 씨의 각종 이권을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공무원 인사까지 전횡하게 한 결정적 증거이다. 말하자면 문화예술단체를 지원하는 문체부에서 각종 예산과 이권 등을 따내려 했던 최 씨가 이권을 챙기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문체부 실·국장 6명이 사표를 내도록 종용했고, 실제로 3명은 사표가 수리됐다는 의혹이 있다. 

 

국정농단을 일으킨 최순실을 전혀 모른다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무능과 770명은 예산 지원을 받았으니 블랙리스트라고 볼 수 없다는 조 장관의 셈법을 보고 있자니, 왜 항상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부끄러움과 수치심은 국민의 몫이어야 하는가 한숨이 절로 나온다.

 

김수정(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