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여는글] 억지, 궤변, 물타기, 버티기, 마침내 공안몰이 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통하기 때문인가?억지, 궤변, 물타기, 버티기, 마침내 공안몰이
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통하기 때문인가?
김은규_ 편집위원장 l kimegy@woosuk.ac.kr
올 여름은 유난히 사람을 지치게 했다. 기후 변화 탓인지 좁은 국토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기후가 달랐다. 중부지방은 무려 50일이 넘는 장마가, 남부지방에서는 장마가 무색하게끔 무더위가 지속됐다. 날씨도 날씨였지만, 국민을 더욱 지치고 힘들게 만든 것은 궤변, 물타기, 버티기로 일관된 국정원 정국이었다.
국정원 정국의 본질은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경찰의 축소·은폐 수사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괴물같은 국정원을 개혁하자는 것이다. 사실 진실은 이미 다 드러나 있다. 셀프감금 했던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흔적은 서울경찰청 디지털분석팀이 찾아냈고, 이는 ‘유일한 언론’이라는 CCTV가 증명하고 있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지시에 의해 댓글 현장인 오피스텔에 대한 압수수색이 저지당했고, 그가 모종의 모임을 가진 후 12월 16일 마지막 대선토론 직후인 심야시간에 댓글 흔적이 없다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 사실도 확인됐다. 또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 조직을 동원해 ‘종북몰이’를 주도했고, 대선뿐만 아니라 총선, 지방선거 등 각종 선거에 개입했다는 사실도 검찰이 이미 밝혀냈다.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됐다면 이 지점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마무리지어졌어야 한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실체가 보다 철저하게 밝혀지고,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 및 국정원 개혁에 대한 프로세스가 진행됐어야 했다.
그러나 국가권력을 움켜쥔 한국의 보수들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전 국민들에게 내면화된 ‘안보 프레임’이었다. 새누리당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을 포기발언을 했다는 공세 속에서 정국의 이슈전환을 시도했고, 국정원은 대화록 공개를 통해 자신들을 방어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화록 유출 및 대선 활용이라는 또 다른 국기문란의 문제가 불거졌다. 궤변과 물타기를 통해 국면전환을 시도했지만 자충수가 돼버린 것이다. 그러나 여야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열람 및 공개 합의’라는 해법은 ‘사초 실종’이라는 절묘한(?) 결과 속에서 표류한다. 이 과정에서 엄중히 따져야 할 대화록 유출이라는 또 하나의 국기문란 사건은 사초 실종과 함께 실종됐다.
장마와 무더위 속에서 진행된 국정조사는 궤변, 버티기, 물타기, 모르쇠의 종합판이었다. 새누리당은 ‘귀태’ 발언, 셀프감금에 연루됐다는 민주당 국조특위 의원 사퇴, 국정원 기관보고 비공개 등을 구실로 국정조사를 무력화했고, 심지어는 날씨가 덥다며 국정조사 일정을 미루기도 했다. 겨우겨우 진행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원세훈과 김용판 두 핵심 증인은 증인선서를 거부하고 시종일관 “답변하지 않겠다”와 “사실무근”이라고 응답하며 국정조사를 우롱했다. 그리고 국정원 요원들은 가림막 뒤에서 준비된 자료를 읽어가며 응답했다. 새누리당 의원에 의한 지역감정 조장 질문 역시 빠지지 않았다. 결국, 국정조사는 끝났지만 결과보고서는 채택되지 않았다.
그리곤 마침내 국정원은 ‘내란음모’ 사건이라는 또 하나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내부 제보자에 의한 녹취록 하나를 가지고 마구잡이식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플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속내는 국민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가운데 국정원 개혁 요구를 벗어나려는 시도라는 것을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이처럼 국정원 정국을 복기해 보면 결국 억지, 궤변, 물타기, 버티기, 그리고 공안몰이라는 키워드들이 남는다. 여기서 하나의 물음이 생긴다. 도대체 이러한 것들이 통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전자라면 한국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아 서글픔이 앞선다. 후자라면 국민의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기에 분노가 치민다. 이 와중에 또 다른 괴물들인 종편의 생명 연장이 진행되고 있고, 뉴라이트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 도대체 통하기 때문인가, 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