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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방송 ‘최고 빌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등록 2024.03.1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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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설정과 무리한 전개를 거듭하면 ‘막장드라마’가 된다. 과장된 캐릭터, 비약과 궤변, 황당한 결말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개연성 없는 막장드라마’라며 손가락질한다. 자극적이고 퇴폐적인 막장드라마의 단 하나 장점을 꼽는다면 그래도 결말은 권선징악이란 점이다.

 

그런데 2024년 현재, 서울시 목동 방송회관에서 매주 라이브로 펼쳐지는 장면들은 그 단 하나의 장점조차 갖추지 못했다.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구성된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이하 선방위)는 1997년 선방위가 법정기구로 제도화된 이후 가장 역대급 막장드라마가 아닐까 싶을 만큼 그 내용이 파격적이고 황당무계하다. ‘개연성 없는 막장드라마’는 욕하고 채널을 돌릴 수라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이 ‘선방위 시리즈’는 우리 앞에 엄존하는 현실이다. 채널을 돌릴 수도 없다. 이런 초현실적인 파행이 어디까지 계속될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막장드라마 뺨치는 선방위 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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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2월 11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 위촉식이 열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번 선방위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예비후보자 등록 신청 개시 전날인 2023년 12월 11일 출범해 선거일 30일 뒤인 2024년 5월 10일까지 6개월간 운영된다. 선방위가 법정기구로 처음 제도화된 것은 1997년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에 8조2항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 관한 조항이 신설된 때부터이다. 이후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은 ‘공직선거법’으로 명칭이 바뀌고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도 몇 차례 개정되었으나 설치 목적은 1997년 이후 지금까지 자구수정 없이 동일하다.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위하여’ 운영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선방위가 이번 총선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해치는 최고 빌런으로 등장하고 있다. 사냥개가 주인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드는 격이다.

 

3월 14일까지 선방위가 10차례 회의를 여는 동안 법정제재 건수가 벌써 12건이다. 앞으로 5월까지 활동기한이 더 남은 점을 감안하면 역대 최다 법정제재 건수를 기록하는 선방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법정제재를 받으면 방송사 재허가, 재승인 심사 때 감점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악의 경우 방송사가 문을 닫거나 팔려나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중징계 건수뿐만 아니라 징계대상의 편파성과 집중성에 있어서도 가히 최고 기록이라 할 만하다. 지금까지 MBC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만 법정제재가 7건,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2건이 내려졌고,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울산MBC <뉴스데스크 울산>이 각 1건씩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3월 15일 성명을 통해 “2008년 이후 선방위가 ‘관계자 징계’를 내린 것은 단 두 차례에 불과했지만, 이번 선방위는 출범한 지 채 석 달도 되지 않았음에도 MBC에만 ‘관계자 징계’를 다섯 차례나 내린 것”이라며 “선방위 등의 벌점 테러는 MBC를 무너뜨리려는 정권 차원의 계산된 움직임이며, 살고 싶으면 입 다물고 권력에 충성하라는 공개 협박”이라고 주장했다.

 

미세먼지 농도1, 이태원참사특별법 모두 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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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3월 14일 “아무도 책임진 사람이 없다”는 발언에 법정 제재를 의결한 선거방송심의위원회를 향해 “이태원 참사와 선거가 무슨 관계가 있냐”며 편파심의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실제로 선방위는 3월 14일 MBC <뉴스데스크>가 일기예보를 하면서 미세먼지 농도 1을 파란색 숫자로 그래픽 처리한 것이 특정 정당을 위한 불법선거운동이라며 법정제재를 전제로 한 의견진술을 의결했다. 해당 안건이 상정될 때부터 ‘황당한 코미디 같다’며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정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의견조차 가볍게 무시했다. 공정선거를 위해 운영되는 선방위가 중앙선관위조차 패싱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란 말인가?

 

급기야 선방위는 법적으로 규정된 권한 범위를 무한대로 확장하고 자의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정부여당에 조금이라도 불리하다 싶으면 그것이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며 제재대상으로 삼는다. 3월 7일에는 이태원참사특별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비판적 논조로 다뤘다는 이유로 가톨릭평화방송(cpbc) 프로그램에 법정제재 전 단계인 의견진술을 결정했다.

 

1월 30일 방영된 cpbc라디오 ‘김혜영의 뉴스공감’에서 진행자가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만 떠밀리듯이 재판에 넘겨진 상황이고 아무도 책임을 진 사람은 없는 상태”라고 말하고, 김준일 평론가가 “정치적 책임을 아무도 지지 않은 것에 대해 국민들이나 유가족들이 분노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이런 발언이 문제라는 것이다. 선방위 권재홍 위원(공정언론국민연대 추천)은 “이태원참사로 23명이 기소되고 6명이 구속되었는데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며 분개했고, 최철호 위원(국민의힘 추천)은 해당 방송이 ‘정치적 목적’의 ‘가짜뉴스, 왜곡뉴스’라고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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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3월 15일 용산구청 ‘청렴 라디오’ 첫 일일DJ로 나서 진행을 맡고 있다. ©용산구청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혐의 처분되고, 윤희근 경찰청장은 입건 전 내사 종결로 처리되고 잠시 구속되었던 박희영 용산구청장마저 보석으로 나와 여전히 구청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박희영 구청장에 관해 검색해 보니 가장 최근 뉴스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용산구청에서 운영하는 <청렴 라디오> 첫 방송에 일일DJ로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며 그의 활짝 웃는 얼굴이 담긴 기사이다. 이태원참사의 진짜 책임자들과 윗선은 거의 다 빠져나가고 일선 실무 부서장급만 재판받는 게 문제라는 점을 언론이 지적했는데 대체 무엇이 가짜이고 왜곡인가? 선거가 끝날 때까지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무슨 잘못을 하든 눈 감고 입 막고 좋은 말만 골라 하는 게 공정한 방송인가?

 

친정부언론은 심의에서 열외

 

선방위의 심의 기준과 잣대는 시민의 상식으론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만큼 편향적이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손톱만큼이라도 불리하다 싶으면 선거와 관련된 방송인지 아닌지 따지지 않고 전천후로 응징을 가하면서, 정부 여당에 아부하고 옹호적인 방송에 대해선 관대하기 짝이 없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뇌물수수 의혹을 ‘외국 회사의 조그마한 백’으로 인한 해프닝 정도로 애써 축소하며 대통령 홍보방송을 내보낸 KBS 대통령 대담에 대해 선방위는 안건으로 다루지도 않았다.

 

TV조선 <시사쇼 정치다>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국민의힘 유세현장을 3월 7일과 8일 생중계했고, 진행자는 “시장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한동훈 위원장에게 환호를 보내주면서 굉장히 분위기 좋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코멘트했다. TV조선은 다른 정당의 유세현장을 생중계로 보도한 적이 없다. 한 눈에 보이는 이런 공정성과 형평성의 문제에 대해 선방위는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종편방송은 철저하다. (MBC, CBS와 달리) 패널 구성에 엄격하다”(최철호 위원)며 대놓고 두둔하는 발언까지 내놨다.

 

채널A <뉴스 TOP10>도 3월 5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청주 유세 소식을 전하며, 한동훈의 어린 시절 사진을 게재하고 ‘본이 청주, 청주 한씨’라고 소개하는 등 낯뜨거운 홍보성 방송을 내보냈지만 선방위의 제재 대상이 되지 않았다.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대해 ‘조선제일검 한동훈’ ‘한동훈의 시간’과 같은 자막을 올리며 반복적으로 국민의힘 편향적인 방송을 해 온 채널A에 대해 민원이 제기되었지만, 선방위는 ‘여권 출연자와 야권 출연자 비율을 잘 맞췄다’며 문제없다는 의견으로 마무리한 바 있다.

 

막장드라마의 결말은?

 

휘어진 거울로 세상을 보면 모든 사물이 왜곡된다. 굽은 것은 곧은 것으로, 곧은 것은 굽은 것으로 비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류희림 위원장(대통령 추천)과 황성욱 상임위원(국민의힘 추천) 2인의 합의만으로 위원을 인선하고, 야권추천 위원들이 퇴장한 채 여권추천 위원 4명의 의결로 결정된 선방위는 그 태동부터 휘어진 거울로 만들어진 채 출범했다.

 

과거 권언유착과 노조탄압에 앞장섰다가 해임된 적폐 언론인이거나 권력 친화적 강경보수로 이름난 인사들이 대부분인 선방위가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위해’ 작동할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려웠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까지일 거라고 짐작한 사람은 많지 않았겠지만…. 총선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선방위의 정권 보위를 위한 표적심사와 벌점테러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막장드라마의 끝판왕이다.

 

이런 부조리를 방치할 수는 없다. 유신시대, 막걸리보안법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국가에 의한 방송심의 자체를 폐지하자는 강경론부터, 정치적 공정성에 대해서는 법정 제재가 아닌 행정지도만 가능하게 하자는 온건론까지 정책 대안을 두고 시민사회와 언론계, 학계에서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충분한 숙의과정을 통해 대안을 만들어야 하고 이번 선방위가 내린 헌법파괴적이고 몰상식한 결정을 전면 취소하는 한편 부당한 권력남용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선방위의 파행을 막기 위해 22대 국회는 새로운 대안을 내놔야 할 것이다. 진영을 넘어서서 민주주의를 복원하기 위한 시민들의 지혜와 언론인들의 용기가 절실한 때이다.

 

민언련 총선 특별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맞아 선거 전후 언론보도와 사회 의제를 짚어보는 총선 특별칼럼을 마련했습니다. 시민이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를 얻어 현명한 주권자로서 선거에 참여하길 바라며, 일곱 번째로 이진순 민언련 상임공동대표・성공회대 겸임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해당 칼럼은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 주